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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 나무의
세계 1

황벽나무

다른 표기 언어 Amur Cork Tree , , キハダ黃肌
요약 테이블
분류 운향과
학명 Phellodendron amurense

옛날 책의 종이를 보면 종이가 누르스름하다. 전통 한지 만들기에 들어가는 황촉규(黃蜀葵)각주1) 등의 섬유접착제가 산화되면서 약간 누렇게 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황벽나무 껍질 추출물인 ‘황물’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황벽나무의 두꺼운 코르크를 벗겨내면 밑에 샛노란색의 선명한 속껍질이 나온다. 여기에 포함된 여러 성분 중에서 베르베린(berberine)은 황벽나무를 대표한다. 황벽나무 속껍질에는 황색색소가 잔뜩 들어 있어서 옛날에는 명주나 피혁 등의 천연염색제로 널리 쓰였다. 《규합총서(閨閤叢書)》각주2) 에 보면 황벽나무 껍질을 햇빛에 말려두었다가 치자와 마찬가지로 노랑 물을 들이는 염색재료로 이용했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베르베린에 항균방충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경험과학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귀중한 책이 좀먹는 것을 막기 위하여 종이를 만들 때 황벽나무 속껍질에서 추출한 황물로 물을 들였다. 이런 책을 특별히 ‘황권(黃卷)’이라 불렀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한 우리의 옛 책들이 수백 년을 지나 지금까지도 보존될 수 있었던 비밀은 우수한 한지 제조법과 아울러 황물 처리를 한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벌레를 막는 효과가 있으니 당연히 사람 몸에 들어오는 여러 가지 벌레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의보감》에는 황벽나무 껍질과 뿌리를 약으로 쓴다고 했다. 황백(黃栢)이라고 하는 껍질은 “오장과 장위 속에 몰린 열과 황달을 없애고 설사와 이질, 부인병을 낫게 하고 기생충을 죽인다. 옴과 버짐, 눈에 핏발이 서고 아픈 것, 입안이 헌 것 등을 낫게 하며 허약증상을 없앤다”라고 했다. 또 뿌리는 단환(檀桓)이라 하며, “명치 밑에 생긴 모든 병을 낫게 하고,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중국과 우리 이름은 다 같이 황벽(黃蘗)나무, 즉 노란껍질나무란 뜻이고, 황경피나무란 다른 이름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노란살갗나무라고 쓴다. 다만 서양 사람들은 노란 껍질이 아니라 코르크에 방점을 찍었다. 속명 ‘Phellodendron’이나 영명은 모두 ‘코르크나무’란 뜻이다. 황벽나무 껍질은 탄력이 좋아 눌러보면 푹신푹신한 느낌이 드는 두꺼운 코르크가 줄기를 둘러싸고 있다. 속껍질은 원래 나무의 양분을 저장하고 이동시키는 생리기능을 하지만, 역할이 모두 끝나고 죽음을 맞이할 즈음 코르크로 변한다. 황벽나무 코르크는 생산량이 많지 않아 공업적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다른 나무에서 만들어지는 코르크보다 품질이 뛰어나다.

황벽나무는 거의 전국에 걸쳐 자라며, 키 10여 미터 전후가 보통이나 20미터가 넘게 자랄 수 있는 큰 나무다. 코르크는 추운 지방으로 갈수록 더 두꺼워진다고 한다. 잎은 갸름하고 끝이 뾰족한 잎 6~7개가 마주 붙어 겹잎을 이룬다. 암수가 다른 나무이며, 늦봄에서부터 초여름에 걸쳐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황록색의 작은 꽃이 잔뜩 피지만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꽃자리에는 콩알 굵기만 한 동그란 열매가 처음에는 파랗게 열렸다가 점차 갈색으로 변하면서 나중에는 새까맣게 익는다. 기름 성분이 많이 들어 있고, 냄새가 난다. 특히 열매는 양이 많고 다음해 봄까지도 달려 있어서 산새들의 배고픔을 달래준다.

황백색의 목재도 무늬가 아름답고 잘 썩지 않으며 단단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가구 제작뿐만 아니라 각종 기구 만들기는 물론 뽕나무 목재와 비슷하여 그 대용으로도 쓰인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쓰임이 많아 숲속의 황벽나무는 거의 베어가 만나기 어렵다. 이제는 공원에서나 황벽나무를 만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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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집필자 소개

평생 나무를 연구한 학자,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무령왕릉 나무 관 등 나무로 만든 문화..펼쳐보기

출처

우리 나무의 세계 1
우리 나무의 세계 1 | 저자박상진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나무의 생태학적인 접근을 넘어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재조명한다. 우리 민족의 삶이 담긴 역사서 속에서 나무 문화재 대한 향기로운 이야기와 비밀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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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황벽나무우리 나무의 세계 1, 박상진,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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