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우리 나무의
세계 1

음나무

다른 표기 언어 Castor Aralia , 刺桐 , ハリギリ刺桐
요약 테이블
분류 두릅나무과
학명 Kalopanax septemlobus

음나무는 이른 봄날 유난히 굵고 큰 새싹을 내민다. 음나무의 꿈과 희망이 모두 들어 있는 귀중한 새싹이지만 불행히도 쌉쌀하고 달콤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맛 때문에 사람은 물론이고 초식동물들은 모두 숨넘어가게 좋아한다. 그대로 있다가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뭔가 특별한 보호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날카롭고 험상궂게 생긴 가시가 새 가지를 촘촘하게 완전히 둘러싸도록 유전자 설계를 해두었다. 감히 범접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현상은 이런 가시는 어릴 때만 갖는다는 것이다. 나무가 자라 굵기가 굵어지면 가시는 차츰 없어진다. 큰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오는 초식동물은 음나무가 자라는 온대지방에는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낸 것이다.

아무리 방비가 튼튼해도 사람의 손은 피할 수 없다. 봄이면 사람들의 손에 의해 잘려져 계절의 별미로 식탁에 오른다. 두릅보다 쌉쌀하고 감칠맛이 좋아 식도락가들에게는 더 인기다. 못된 인간들이 손에 닿는 대로 음나무 새싹뿐만 아니라 굵은 나무까지 베어 눕히고 몽땅 다 따가 버리는 현장을 등산길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초식동물은 따돌렸지만 사람들 등살에 우리 산의 음나무는 두릅나무와 함께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기로에 서 있다.

옛사람들은 음나무를 대문 옆에 심어두거나, 가시 많은 가지를 특별히 골라 문설주나 대문 위에 가로로 걸쳐 두어 잡귀를 쫓아내고자 했다. 험상궂은 가시가 돋아 있는 음나무 가지는 시각적으로 귀신이 싫어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저승사자가 검은 도포자락을 펄럭이고 다니듯이, 잡귀도 도포를 입고 다닌다고 상상한 것 같다. 음나무 가시는 도포를 입은 귀신에게는 신경 쓰이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도포자락을 걷어 올려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터다.

음나무가 이렇게 ‘벽사(辟邪) 나무’로 인식된 탓에 경남 창원시 신방리의 천연기념물 제164호로 지정된 음나무를 비롯하여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받는 곳이 50여 군데나 된다. 경기도 민속자료 제8호인 일산 호수공원 부근의 ‘밤가시 초가’의 대문 위에는 가시가 촘촘한 음나무 가지가 가로로 얹혀 있다.

음나무는 엄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의보감》, 《역어유해》, 《물명고》 등 옛 문헌에는 ‘엄나모’라고 기록되어 있고, 옥편과 국어사전에는 엄나무라고 표기한다. 가시가 엄(嚴)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엄나무가 모양새의 특징을 더 잘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식물표준목록에는 음나무가 올바른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음나무는 물갈퀴가 달린 오리발처럼 생긴 커다란 잎이 특징이다. 옛사람들은 오동나무 잎과 비슷한데 가시가 있다는 뜻으로 자동(刺桐)이라 했다. 다른 이름인 해동목(海桐木) 역시 오동나무 잎을 비유한 이름이다. 키 20미터, 줄기둘레가 두세 아름에 이를 수 있으며 자람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음나무 껍질은 해동피(海桐皮)라고 알려진 약재다. 《동의보감》에는 “허리나 다리를 쓰지 못하는 것과 마비되고 아픈 것을 낫게 한다. 적백이질, 중악과 곽란, 감닉, 옴, 버짐, 치통 및 눈에 피가 진 것 등을 낫게 하며 풍증을 없앤다”라고 했다.

더위가 한창인 여름날 가지 끝마다 한 뼘이나 되는 커다란 꽃차례에 손톱 크기의 연노랑 꽃이 무리를 이루어 핀다. 《홍재전서》를 비롯한 옛 문헌에서 ‘음나무꽃(刺桐花)’의 아름다움을 읊조린 시가를 가끔 읽을 수 있다. 열매는 콩알 굵기로 까맣게 익으며 말랑거리는 과육 안에 씨앗이 들어 있다. 새들이 먹고 위장을 통과하는 동안 두꺼운 씨앗 껍질이 얇아져서 배설되는 과정을 밟아 자손을 퍼뜨린다.

음나무 목재는 나이테에 굵은 물관이 한 줄만 있는 독특한 세포 구조를 가지고 있다. 황갈색의 아름다운 무늬와 목질이 가볍고 연하여 가공하기 쉬워 가구나 악기 등 여러 생활용구로 널리 쓰인다. 특히 ‘금슬이 좋다’고 할 때의 슬(瑟)이란 악기는 앞판은 오동나무, 뒤판은 음나무나 밤나무로 만들어 25줄을 매어서 탄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박상진 집필자 소개

평생 나무를 연구한 학자,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무령왕릉 나무 관 등 나무로 만든 문화..펼쳐보기

출처

우리 나무의 세계 1
우리 나무의 세계 1 | 저자박상진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나무의 생태학적인 접근을 넘어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재조명한다. 우리 민족의 삶이 담긴 역사서 속에서 나무 문화재 대한 향기로운 이야기와 비밀을 알아본다.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나무

나무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멀티미디어 더보기 6건의 연관 멀티미디어 음나무
다른 백과사전

나무 종류

추천항목


[Daum백과] 음나무우리 나무의 세계 1, 박상진, 김영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