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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옷이 날개’라며 남에게 잘 보이려면 옷차림을 제대로 갖추어 입기를 권하는 데 반해 서양은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속담이 말해주듯 먹는 일을 더 중요시하는 모양이다. 범죄 수사에도 무엇을 어디서 먹었는지를 단서로 범인의 족적을 찾는다. 지방마다 영양생물 속에 들어 있는 ¹³C, ¹⁵N, ³⁴S 등의 동위원소 함량과 함량비가 다르기 때문에 어디서 범인이 오랫동안 숨어 있었는지 그 장소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들의 함량 차이가 크지 않아 신뢰성 문제가 있어왔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 유타대 생물학과 제임스 에를링어 등은 머리털 중 ²H와 ¹⁸O 동위원소 함량비의 신뢰성이 더 크다는 결과를 미국학술원 학술지(PNAS, 2008, 105, 2788-2793)에 발표하였다. 법의화학에 크게 기여할 내용이다. 이들은 미국 전역의 65개 지역(인구가 10만 이하인 도시와 마을)의 이발소에서 머리털과 그 고장 사람들이 마시는 수돗물을 함께 모아 동위원소비 질량분석기(isotope ratio mass spectrometer)로 분석하였다. 시료를 열분해시켜 얻은 기체 시료를 질량분석기에 주입하여 분석했다. 이 연구팀은 전에 코카인 같은 마약이 어디서 생산되었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토양과 물에서 코카식물이 흡수한 동위원소의 비로부터 판단하는 방법이었다.

음용수 속의 동위원소는 인체에서 아미노산에 포함되어 머리털 단백질의 구성 성분이 된다. 강우량, 강우빈도, 기온 등에 따라 이 동위원소비에 차이가 있어 ¹H 과 ²H, ¹⁶O와 ¹⁸O의 비를 구해 분포 지도를 만들면 머리털 주인의 행방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불행히 이 분석법으로 머리털 주인공이 어느 도시나 마을에 있었는지 족집게 식으로 알아낼 수 있을 정도의 신뢰도는 아직 갖지 못하지만, 훨씬 더 많은 시료분석을 행하면 정확도가 더 높아지리라 믿는다. 또한 에를링어 교수는 머리털 분석이 음식물 중독, 옛사람들이 먹던 음식물의 고고학적 연구 등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생화학적으로 중요한 의문점이 한 가지 있다. 아미노산과 단백질 합성 단계 및 그 후 ²H와 ¹⁸O이 여러 단계에서 계속 동위원소 교환반응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실험 결과는 동위원소 교환에 참여하지 않는 화학 구조 부분, 예컨대 C-H 결합 등의 분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돗물 음용수의 수소와 산소 동위원소비가 머리털 내의 수소, 산소 동위원소비와 훌륭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동위원소 질량분석법이 수사화학 및 법의과학에 크게 기여할 것이 예상된다.

싱가포르의 이펜디 위자야 연구진은 손톱의 라만 스펙트럼으로 남녀 성 구분이 가능하다는 결과를 《Analyst》(2008, 133, 493-498)에 발표하였다. 이들은 남녀 각각 40명 씩으로부터 손톱을 공급받아 400~1800cm^-1 범위에서 라만 이동을 조사해 50개의 주요 피이크를 비교하였다. 25~50세의 참가자들로부터 각자 손톱시료를 2개씩 공급하게 하였으며, 시료는 아세톤으로 세척한 후 사용하였다. 이 중 시스테인, 페닐알라닌과 티로신 등 아미노산과 관계되는 스펙트럼의 차이로부터 남녀 성을 구별할 수 있었다. 물론 남녀 간 스펙트럼 차이가 매우 근소하기 때문에 실험 데이터를 특수방법(SVM classification)으로 처리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남성을 맞출 정확도는 87.5%였으며 여성의 경우는 좀더 높아 93.3% 였다. 현재로는 수사과학에서 남녀 구분은 DNA 분석에 의존한다. DNA 분석이 여기서 얘기한 라만 스펙트럼 분석보다 남녀구별 정확도가 높지만, 실험법이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며, 비용이 많이 든다. 이에 비해 라만 스펙트럼에 의한 구별은 매우 간단하다.

머리털과 손톱 분석은 인종, 식생활, 환경 등과 상관관계를 분석함으로써 간편하게 고고학적 분석과 범죄 수사에 매우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그 확산이 예상된다. 우리나라 법의화학에 분석화학자들의 공헌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