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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폭약으로 심장병을 치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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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아마도 100년 후에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적어도 150세는 넘으리라고 예측된다.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병에 걸리지 않게 예방하고, 또 노화 현상에 대한 이해가 커짐으로써 노화를 느리게 하거나 방지하여 평균 수명을 두 배까지 늘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의학의 발달은 약학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며, 약학의 발달은 화학의 기초 없이는 불가능하다. 흔히 니트로글리세린이라고 짧게 부르는 트리니트로글리세린의 경우가 이를 뒷받침하는 예에 해당한다. 니트로글리세린은 1847년 이탈리아 화학자 아스카니오 소브레로가 처음으로 합성했다. 진한 질산과 진한 황산 혼합액을 차갑게 한 후 여기에 글리세린을 섞으면 올리브기름 같은 화합물이 얻어진다. 이 액체를 잘 관찰하기 위해 들여다보던 소브레로는 관자놀이부터 시작되는 두통을 느끼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더구나 이 기름 한 방울을 비커에 넣고 가열하는 순간 비커가 즉시 폭발하면서 산산조각 나버리자 그는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두 가지 관찰이 인류에게 끼칠 엄청난 영향을 그 순간 그는 몰랐을 것이다.

니트로글리세린은 심근의 근육층을 지나는 비교적 큰 동맥을 확장해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는 부분에 피가 잘 흐르도록 해주는 효과로, 이후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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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소브레로는 자기가 경험한 내용을 프랑스 과학잡지에 발표하여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를 본 미국의 한 의과대학 교수 콘스탄틴 헤링은 니트로글리세린을 의약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잘 알던 화학자가 합성한 니트로글리세린 한 방울을 자기 혀끝에 묻혀보았다. 역시 관자놀이가 심하게 떨리더니 강한 두통이 엄습했다. 여러 가지 시도 끝에 헤링은 한 방울의 300~500분의 1 정도 되는 양을 설탕과 섞어 혀 밑에 투여하는 복용법을 실험하여 니트로글리세린을 심부전증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세계의 중심과는 거리가 멀었던 미국에서 수행된 실험이라 이 결과는 세계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한편 니트로글리세린의 폭발성을 이용해 폭약 제조 공장을 세웠던 스웨덴의 임마누엘 노벨의 이야기는 이와 매우 대조적이다. 그는 니트로글리세린 공장을 세우고 가동을 시작한 후 며칠도 되지 않아 폭발사고로 공장이 파괴되고 아들마저 잃는 불운을 겪었다. 워낙 폭발성이 강한 니트로글리세린은 용기를 흔들기만 해도 터져버릴 정도여서 운반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그러던 중 그의 아들 알프레드 노벨을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위험한 약제를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용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톱밥이나 규조토를 사용했는데, 쇠통 속에서 새어나온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가 모두 흡수해 상자 밖으로 전혀 새어나오지 않게 되었다. 작업자로부터 이에 대한 보고를 받은 알프레드 노벨은 이 현상을 이용하여 규조토에 니트로글리세린을 흡수시킴으로써 운송뿐 아니라 사용까지 편리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

다시 니트로글리세린을 의약용으로 사용하는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헤링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니트로글리세린의 약효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니트로글리세린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상반된 견해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니트로글리세린 몇 방울로 심부전증에 효과를 보았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200방울을 섭취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효과가 달랐을까. 답은 간단했다. 복용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니트로글리세린을 마시면 소장에서 흡수된 후 간에서 분해되어버리기 때문에 아무런 약효가 없으나 혀 밑에 투여하면 곧바로 혈액 속에 들어가 심장으로 운반되어 효과를 낸다.

1879년 영국 의사 윌리엄스 뮐러는 니트로글리세린은 복용법에 따라 약효가 다르며, 혀 밑에 투여하면 협심증 환자에게 극적인 치료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협심증 치료약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논문을 의학잡지에 발표했다. 영국에서 발표된 이 논문은 헤링의 보고와는 달리 곧 세계적 이목을 끌었다.

니트로글리세린은 심근의 근육층을 지나는 비교적 큰 동맥을 확장해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는 부분에 피가 잘 흐르도록 해주는 효과로, 이후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 폭약과 심장약,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이 두 가지를 니트로글리세린의 화학이 단단히 묶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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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일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69년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고분자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5년간 미국 스타우퍼케미컬사 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한 후 1974년부터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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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밖 화학 이야기
교실밖 화학 이야기 | 저자진정일 | cp명궁리 도서 소개

일상 속 화학 이야기와 친해지는 시간! 방사선 처리 식품의 안전, 현대인의 생활을 점령한 카페인, 페트병으로 만든 등산용 재킷 등 일상생활 속에 화학이 얼마나 깊이 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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