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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준비된 과학자에게만 찾아오는 우연한 행운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화학적 발견, 발명과 우연

아르키메데스의 부력 발견, 아이작 뉴턴의 중력법칙 발견, 월러스 캐러더스의 나일론 발명 등 수많은 새로운 발견과 발명에 얽힌 이야기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의 여신’이 얼마나 큰 선물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1953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사(GE)의 연구소에서 있었던 하나의 커다란 발명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는 현재 비행기의 창, 자동차 범퍼, 호신용 방탄투명창 등 여러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엔지니어링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폴리카보네이트에 관한 이야기다.

1951년 대니얼 폭스 박사는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GE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전선 절연용 재료를 개발하는 연구 과제를 수행하게 되었는데, 특히 고온 및 고습도에서도 잘 견디는 재료 개발이 필요했다. 어떤 플라스틱 재료 개발이 적합할지 연구토론을 하던 중 한 동료가 “가수분해에 잘 견디는 폴리에스테르만 찾으면 될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이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폭스 박사는 과거의 연구 기억을 되살렸다. 특히 그 전해에 과이어콜이라는 페놀류의 탄산에스테르(카보네이트) 에스테르가 가수분해에 매우 잘 견뎠던 실험을 상기했다. 그는 급히 시약 저장 창고로 뛰어가 과이어콜 분자가 두 개 결합한 비스과이어콜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는 비스과이어콜을 탄산에스테르로 만들어 새로운 플라스틱을 합성해보자고 생각했다.

이것이 폭스 박사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비스과이어콜을 찾을 수 없자 폭스 박사는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는 비스페놀-A라는 화합물을 대신 사용하기로 하였다. 비스페놀-A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싼 화합물로, 당시 막 시판이 시작된 에폭시 수지의 제조 원료이기도 했다.

폭스 박사는 탄산알킬과 비스페놀-A를 가열하여 새로운 폴리에스테르를 합성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끈기를 잃지 않고 여러 탄산에스테르를 시험하던 중 그는 탄산디페닐을 사용하게 되었다. 탄산디페닐과 비스페놀-A를 섞고 저어주면서 가열하자 페놀이 증류되어 나오기 시작했고, 반응용기 속의 혼합물 점성도가 크게 증가하여 교반이 힘들어졌다. 점차 온도를 올리고 압력을 낮추어 페놀의 제거를 시도했지만 결국 교반기가 돌지 않을 정도로 용기 내 반응물의 점성도가 커졌다. 용기로부터 반응물을 꺼낼 수 없게 되자 폭스 박사는 하는 수 없이 반응물을 냉각시킨 후 용기를 깨뜨릴 수밖에 없었다. 교반기 끝에는 커다란 덩어리가 붙어 있었고, 반응용기의 유리조각이 그 덩어리 속에 일부 박혀 있었다.

1987년 한 강연에서 폭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덩어리를 시멘트 바닥에 두드리고 던져도 보았지만 도대체 부서지지를 않더군요. 소나무에 못을 박기 위해 망치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한 조각씩 톱으로 잘라냈고, 일부는 섭씨 300도에서 압축하여 필름으로도 만들었지요. ······우리 연구소에는 교육을 잘 받은 고분자화학자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열가소성 고분자의 합성에는 별로 경험이 없었고, 폴리카보네이트처럼 이상한 플라스틱의 상품적 가치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제가 만든 폴리카보네이트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잠시 잊혀져야 했습니다. ······다행히 후에 개발부에서 간부로 일하게 된 페처카스 박사가 지방족 폴리카보네이트에 관한 과거 경험을 살려 제가 만든 폴리카보네이트 개발의 챔피언이 되었지요.”

새로운 플라스틱의 개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결국 GE는 폴리카보네이트 개발에 성공했고 수많은 용도를 찾아냈다. 하지만 미국의 GE만이 아니라 독일의 바이엘사도 방향족 폴리카보네이트를 개발하고 있었다. 사실 폭스 박사의 발견은 재발견에 지나지 않았다. 독일은 이미 1902년에 똑같은 폴리카보네이트를 합성했다. 하지만 그때는 고분자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몰랐고, 더욱이 용도 개발은 꿈도 꾸지 못했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폴리카보네이트는 폭스 박사가 사용한 합성법을 바꾸어 비스페놀-A와 포스겐을 중합시켜 제조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생산되고 있다. 현재 개인 보호용판, 외국대사관 구조물, 은행창구의 유리, 감옥의 창, 아이스하키장 관람자 보호 방패창, 초음속 비행기의 운전석 덮개, 스쿠버 마스크, 특공대 방패 등을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다. 강도와 투명성이 우수하고 증기 살균이 가능한 이 플라스틱은 아기젖병 및 20리터들이 물병에서 보안경 및 헬멧 등의 제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된다. 또한 폴리카보네이트를 다른 폴리에스테르와 섞어 충격 강도를 보완함으로써 자동차 범퍼를 만드는 데도 널리 쓰인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폴리카보네이트는 아기 젖병 및 20리터들이 물병에서 보안경 및 헬멧 등의 제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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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박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연설을 끝맺었다. “교반기 끝에 붙어 있던 그 덩어리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돌이켜보면 그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 개인에게도 커다란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는 우연한 행운의 발견에 관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뜻밖의 발견이 정말 ‘우연적’이었는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약 폭스 박사에게 탄산에스테르(카보네이트)의 안정성에 관한 지식이 없었어도 이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또 그가 처음에 사용했던 지방족 카르본산 에스테르와 비스페놀의 반응이 원만하지 못했을 때 그냥 단념하고, 방향족 카르본산 에스테르인 카르본산 디페닐의 사용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이 발견이 가능했을까? 더 나아가 폭스 박사가 폴리카보네이트 합성에 성공했음에도 GE가 가공 연구나 제품 개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화학, 미생물 및 의학 등에 큰 공헌을 한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는 위대한 발견의 우연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리했다. “관찰의 영역에서 ‘우연’은 그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된 자에게만 찾아온다.”

1974년 노벨상 수상자인 폴 플로리 교수도 미국화학회가 주는 가장 명예스러운 상인 프리스틀리상 수상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요한 발명은 단순히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잘못된 생각은 넓게 퍼져 있고, 과학기술계가 이 잘못된 생각의 퇴치에 앞장서지 않은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물론 우발적 사건이 새로운 발명에 부분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발명에는 하늘에서 우연히 떨어진다는 식의 개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즉 발명의 절대적 요건은 깊이나 넓이 면에서의 많은 지식입니다. 미리 마음속으로 철저히 준비하지 않는 한, 천재의 섬광은 점화시킬 어떠한 대상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위대한 발견과 발명에는 항상 우연성이 눈에 띄지만, 철저하게 행운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과학자만이 값진 결실을 얻을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이면, 폴리카르보네이트 제조에 사용하는 비스페놀-A가 환경 호르몬이라는 주장이 거세지면서 폴리카르보네이트의 사용 분야가 전보다 많이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폴리카르보네이트에서 나오는 비스페놀-A의 양은 워낙 적어 무해하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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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일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69년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고분자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5년간 미국 스타우퍼케미컬사 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한 후 1974년부터 ..펼쳐보기

출처

교실밖 화학 이야기
교실밖 화학 이야기 | 저자진정일 | cp명궁리 도서 소개

일상 속 화학 이야기와 친해지는 시간! 방사선 처리 식품의 안전, 현대인의 생활을 점령한 카페인, 페트병으로 만든 등산용 재킷 등 일상생활 속에 화학이 얼마나 깊이 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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