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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화학, 재미있는 요술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화학이란?

도대체 ‘화학’을 뜻하는 영어의 chemistry, 독일어의 chemie, 프랑스어의 chimie 등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어떻게 화학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하나의 설에 따르면 chemistry 등의 단어는 이집트어인 chemi(黑術)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젖줄인 나일강 유역은 워낙 비옥하고 흙의 색깔이 까매 흑토라 불렸다. 이 이집트에서 발달한 연금술을 흑술이라 불렀고, 이것이 그리스어인 Khyma를 거쳐 현재 쓰이는 몇 가지 단어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그리스어 Khyma는 유출하는 물질, 혹은 유출하는 유체를 의미하며, 금속을 정련할 때 틀에 용융 금속을 흘려 넣어 만든 덩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한편 그리스어 Khymeia는 합금을 만드는 기술인 연금술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아라비아어에서 정관사로 사용하는 al을 붙이면 alkimia가 된다. 결국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한 고대 화학이 유럽으로 전달되어 alchemy가 되었는데, 이 말을 연금술로 번역한 것은 고도화된 이집트 학문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요술쟁이들의 신기한 기술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 같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 중에서 일본이 화학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하였다. 우다가와 요안이라는 사람이 chemie를 일본말로 ‘舍密’(일본 발음으로 ‘세미’)이라고 음역했고, 1835년에 『사밀개원(舍密開院)』이라는 일본 최초의 화학책을 발간하였다. 그 후 1860년에 가와모토 고민이 『만유화학(万有化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서 출간을 신청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했는데, 이 책에 ‘화학’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온다. 가와모토는 이듬해 유명한 『화학신서』를 출판했으며, 이 책은 교과서로도 널리 쓰였다.

메이지 17년(1884년) 12월 일본화학회는 ‘화학’과 ‘세미’ 중 어느 명칭을 사용할지 논쟁을 벌였다. 다음해 1월 투표에서 회원 73명 중 35명이 세미라는 명칭을 사용하자고 찬성투표를 하였으나 3분의 2에 미치지 못해 결국 화학으로 결정되었다. 대신 일본은 ‘세미’를 사용한 해부터 ‘화학’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계산하였다. 이 결과는 중국과 우리나라에도 화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요술’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chemistry가 지난 150여 년간 이룩한 학문과 기술 발전은 우리의 문명과 생활양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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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국에서는 영국 선교사 조지프 에드킨스가 1854년 번역한 『중학(重學)』에서 화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나 출판이 지연되었다. 그러는 사이 같은 영국 선교사인 알렉산더 와일리가 이 용어를 받아들여, 1857년 자신이 상하이에서 발행하던 월간잡지 『육합총담(六合叢談)』에 화학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아마도 그는 일본에서 사용한 화학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화학이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우리나라 과학사학자에 의하면 1884년 초 《한성순보》의 한 기사에 화학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화학이라는 단어의 시작은 일본보다 50여 년, 중국보다 30여 년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서수가 1870년경 서양의 서적을 번역해 『화학원감』을 출판했는데, 이 책이 조선 말 개화기에 화학을 소개한 중요 문헌이었던 것 같다. 특히 《한성순보》의 과학에 관한 기사가 이 자료에 많이 의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서양 화학을 단편적으로나마 소개한 책으로는 최한기의 『신기천험(身機踐驗)』이 있다. 1866년 출판된 이 책은 서양에서 말하던 원소(당시 56개)와 일부 화합물을 소개하지만 ‘화학’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요술’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chemistry(chemistry of love를 ‘사랑의 화학’이 아니라 ‘사랑의 불가사의’라고 번역해야 옳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화학자가 몇이나 될까!)가 지난 150여 년간 이룩한 학문과 기술 발전은 우리의 문명과 생활양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화학의 化를 옥편에서 찾아 의미를 살펴보면, 陰陽運行(될 화, 화할 화), 萬物生息變化, 上行下敎(본받을 화), 變形(바뀔 화), 死(죽을 화), 妖術(요술 화) 등이 실려 있다. 요술이라는 의미가 빠지지 않는 걸 보면, 화학은 역시 요술처럼 재미있고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는 학문 분야인 모양이다. 그러기에 모든 화학도가 화학을 공부할 수 있음에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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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일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69년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고분자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5년간 미국 스타우퍼케미컬사 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한 후 1974년부터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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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밖 화학 이야기
교실밖 화학 이야기 | 저자진정일 | cp명궁리 도서 소개

일상 속 화학 이야기와 친해지는 시간! 방사선 처리 식품의 안전, 현대인의 생활을 점령한 카페인, 페트병으로 만든 등산용 재킷 등 일상생활 속에 화학이 얼마나 깊이 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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