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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서 꼭
봐야 ... 미켈란젤로
〈노아의 제사〉 외
저작자 |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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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노아의 제사〉 1509년 제작 〈대홍수〉 1508~1509년 제작 〈만취한 노아〉 1509년 제작 |
노아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세 그림 중 〈노아의 제사〉와 〈대홍수〉 장면은 성서에 기록된 연대기적 순서를 살짝 벗어나 있다. 노아는 홍수가 끝난 뒤 하나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는데, 천장화는 제사 장면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가 열전》의 바사리나 미켈란젤로의 전기를 쓴 아스카니오 콘디비는 이 장면이 아담과 이브의 아들들, ‘카인과 아벨의 제사 장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배경의 방주 등을 들어 노아의 이야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중앙의 노아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화면 아래 누드로 그려진 노아의 세 아들이 각자 숫양을 잡거나 화덕에 불을 붙이고, 또 죽은 숫양을 깔고 앉아 내장을 꺼내는 등 자기 몫의 일을 해내고 있다.
〈대홍수〉는 아홉 개의 창세기 장면 중 가장 많은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그림이다. 화면 왼쪽에는 홍수를 피해 높은 지대로 올라오는 고통 속의 인간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중앙 후경에는 노아가 지은 집 모양의 방주, 오른쪽에는 비를 피하기 위해 쳐놓은 천막이 보인다. 중앙에 죽은 아들을 힘껏 들어 올리는 노인의 모습은 비극 그 자체다. 방주 앞쪽의 배는 이미 가득한 사람들로 뒤집히기 직전인데 죽을힘을 다해 배에 오르려는 한 남자는 미켈란젤로가 1492년에 완성한 〈켄타우로스의 전투〉에 나오는 한 병사와 그 자세가 흡사하다. 몇몇은 배에 오르려는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밀어내고 있다. 방주 안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도끼를 휘두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사다리를 놓아 더 높은 곳으로 피신하려고 한다. 〈대홍수〉는 미켈란젤로가 천장화 중 가장 먼저 그린 작품으로, 프레스코화의 습기 조절에 문제가 생겨 곰팡이까지 생기자 한때 작업을 포기할 정도로 좌절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의 친구이자 건축가인 줄리아노 다 상갈로(Giuliano da Sangallo, 1445~1516)가 율리오 2세의 명을 받고 누수를 비롯한 여러 문제를 해결해주어 작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만취한 노아〉는 두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에는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있는데, 중앙의 큰 통은 바로 이 포도로 만든 포도주로 채워졌을 것이다. 그 아래 있는 노아는 술에 완전히 취해 누워 있다. 그의 모습은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던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1455)의 성 조반니 세례당 청동문 중 〈노아와 홍수〉 부분을 참고로 한 것으로 보인다. 성서에 의하면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만취하자 아들들 중 함은 취한 아버지를 비웃었지만 셈과 야벳은 얼른 벗은 몸을 가려주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포도주는 예수의 피를, 그리고 놀림 받는 노아는 훗날 병사들에게 조롱받는 예수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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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출처
바티칸 시국에는 피나코테카를 비롯해 키아라몬티와 브라치오누오보 미술관, 에트루리아와 이집트 미술관 등 총 24개의 미술관과 기념관이 있다. 바티칸 미술관에서 놓치지 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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