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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서 꼭
봐야 ...
보르고 화재의 방
율리오 2세가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들의 접견 장소로 사용하다 레오 10세 시절부터 식당으로 용도가 바뀐 이 방은 1514년부터 1517년까지 라파엘로가 제자들과 함께 벽화 장식을 담당했다.
교황청의 신임이 두터워질수록 작업 이외에 이런저런 요구가 많아졌고, 그로 인해 라파엘로는 주문된 작업조차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놓였다. 결국 라파엘로는 밑그림 제작부터 채색에 이르기까지 작업의 상당 부분에 제자들을 참여시키곤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방을 장식하던 중 브라만테가 사망하자 교황은 그가 맡았던 성당 재건축 일을 라파엘로에게 수행하도록 했다. 〈보르고 화재〉는 그나마 라파엘로가 제자들의 도움 없이 완성한 것으로 이 방의 벽화들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이로 인해 방의 이름 역시 ‘보르고 화재의 방’으로 불리게 되었다.
라파엘로에 대한 교황들의 총애는 지극해서 소위 라파엘로의 방이라 불리는 네 개의 방에 이미 다른 화가가 그린 모든 벽화를 다 부수도록 명령할 정도였다. 라파엘로는 이 보르고 화재의 방 천장화 만큼은 보존해달라고 간청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스승인 페루지노가 그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교황 레오 10세의 명에 따라 교황과 같은 이름의 레오 3세(Leo III, 795~816)와 레오 4세(Leo IV, 847~855)의 기적적인 주요 업적을 주제로 삼았고, 그들의 얼굴마저 레오 10세를 모델로 하여 그렸다.
출입문 가까이에는 〈카롤루스의 대관식〉 장면이, 마주하는 벽에는 이슬람과의 해상 전투 장면을 담은 〈오스티아 전투〉가 그리고 나머지 벽에는 〈보르고 화재〉와 〈레오 3세의 선서〉가 그려져 있다.
속된 말로 죽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빴던 라파엘로는 보르고 화재의 방 작업을 끝내자마자 콘스탄티누스의 방 장식에 착수했지만, 스케치와 구상만 해둔 상태에서 병으로 급사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화재의 방이야말로 라파엘로의 교황궁 장식 마지막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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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출처
바티칸 시국에는 피나코테카를 비롯해 키아라몬티와 브라치오누오보 미술관, 에트루리아와 이집트 미술관 등 총 24개의 미술관과 기념관이 있다. 바티칸 미술관에서 놓치지 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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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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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보르고 화재의 방 – 바티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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