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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서 꼭
봐야 ... 귀도 레니
〈성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
저작자 |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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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1604~1605년 |
볼로냐에서 유명한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난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는 하프시코드 연주자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과 달리 화가의 길을 고집했다. 그의 아버지는 귀도 레니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화가로서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다시 음악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미술 수업을 받도록 허락해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그가 스무 살이 되기 딱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귀도 레니는 그 즈음 어느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그림 실력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었다.
귀도 레니는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 1592~1605 재위)가 볼로냐를 방문했을 때 그의 눈에 띄어 교황청의 초대를 받게 되었고, 알도브란디니 추기경(Cardinal Pietro Aldobrandini, 1571~1621)으로부터 〈성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을 주문받게 되었다. 그림은 격정적으로 빛과 어둠을 대비시키는 카라바조 풍이다. 특히 그는 카라바조가 산타마리아델포폴로 성당에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을 많이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카라바조는 귀도 레니의 그림을 본 뒤 한 번만 더 그가 자신을 따라 하면 죽이겠노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카라바조가 십자가를 비스듬한 사선으로 두어 화면의 역동성을 강조했다면, 귀도 레니는 이를 정중앙에 위치시키고 그 양쪽에 인물들을 배치함으로써 좌우대칭의 고전적 전통을 이어나갔다. 또한 카라바조의 인물들에게서는 과장된 동작과 격정적인 표정이 압도적이지만, 귀도 레니의 인물들은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귀도 레니는 성인의 얼굴을 관람자가 볼 수 없는 시점으로 그려 그의 인간적인 고통이나 분노 등을 알 수 없게 하였다. 귀도 레니 역시 바로크 시대의 화가로, 신도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심리적 압박을 선사하는 화풍을 구사했지만, 우아함과 질서, 균형, 침착함 등의 특징은 르네상스적인 고전주의에 더 가까웠다.
어부였던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예수의 제자가 되었고, 이후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예수의 말을 평생 좇았다. 예수의 죽음 이후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그를 부정하는 인간적 약점도 보였지만, 예수로부터 열쇠를 받음으로써 사도들의 우두머리로 인정받았고 훗날 예수가 승천한 뒤 교회를 조직하여 신의 대리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네로 황제 통치 기간에 박해를 받아 십자가 처형으로 순교했는데, 예수와 같은 방식으로 죽을 수 없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일설에는 역사적으로 네로의 통치 시절에는 거꾸로 매다는 십자가 처형이 일반적이었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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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에는 피나코테카를 비롯해 키아라몬티와 브라치오누오보 미술관, 에트루리아와 이집트 미술관 등 총 24개의 미술관과 기념관이 있다. 바티칸 미술관에서 놓치지 말..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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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성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 – 바티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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