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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다른 표기 언어 Chocolate 동의어 모두가 사랑하는 신의 열매
누구나 좋아하는 초콜릿

초콜릿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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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이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첫째는 초콜릿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에 따른 심적 반응일 테고, 둘째는 초콜릿에 포함되어 있는 성분으로 인한 육체적 반응일 것이다.

초콜릿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상명사는 ‘Love’, 즉 사랑이다.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 느끼는 감정은 초콜릿처럼 달콤하다. 하지만 그 달콤한 사랑이 끝을 맺을 때는 씁쓸한 마음에 휩싸이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처럼 초콜릿은 달콤함과 씁쓸함이라는 상반된 맛을 동시에 갖고 있다. 사랑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는 달콤함 그 자체이지만, 사랑이 식고 나면 씁쓸한 추억만 남는 것처럼 초콜릿도 달고 쓰기를 반복하며 미각을 유혹하고 자극한다. 그래서 우리가 초콜릿의 매력을 쉽사리 뿌리칠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육체적 반응은 무엇일까? 먼저 기분이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단것, 특히 초콜릿을 찾게 되는데, 그것은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콩의 고형분 안에 있는 테오브로민(theobromine)과 페네티라민(phenethylamine)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이 성분은 카페인과 흡사한 흥분성 알칼로이드로, 뇌를 자극해 몸에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인 엔도르핀 분비를 활성화하며, 각성 효과가 있어 집중력을 높이는 동시에 졸음을 잠시나마 막아준다.

게다가 차나 커피만큼 강하지 않으므로 노인이나 어린이에게도 적당하다. 하지만 초콜릿에 민감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는데, 보통의 증상은 피부에 생기는 반점이나 빠른 심장박동이다. 심장이 빨리 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초콜릿을 멀리하지 못하는 이들이 꽤 많다. 무리한 증세가 나타나거나 건강을 해치는 정도가 아닌 이상 신비한 초콜릿을 끊기는 힘들다는 주장이다.

세계 5대 도시의 정취를 초콜릿에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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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은 기호식품이면서 동시에 음식이자 음료이기도 하다. 초콜릿을 사랑하는 마니아들이 세계 도처에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식품이기 때문에 초코홀릭(chocoholic)이라는 단어도 파생되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자 초콜릿 생산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고 연구가 늘어나서 요즘에는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이 등장하고 있다. 원료인 카카오 성분에 가까운 진한 초콜릿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단맛보다는 카카오 성분이 많은 쓴맛 위주의 초콜릿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 정통성은 마치 다시 예전 중남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다.

카카오는 초콜릿 원료로 카카오나무 열매 안의 씨에서 추출하는데 카카오나무 한 그루엔 25~57개의 열매가 열리고 적도 근방의 고온다습한 기후 조건에서 주로 자란다. 크레올레 빈, 포레스테로 빈, 트리니타리오 빈 세 종류로 품종이 나뉘는데 빈은 열매를 뜻한다.

우리가 먹는 초콜릿의 제조 공정은 꽤 복잡한 편이다. 먼저 선별한 카카오 빈을 열풍으로 볶아서 외피를 분리하고 과실(카카오니브각주1) )을 으깨어 반죽처럼 만든다. 이것을 카카오 매스라고 하는데, 여기에 설탕·우유·카카오 버터를 섞어 혼합기에 넣고 계속 반죽해 고온으로 일주일 이상 정련한 다음 적당한 온도로 조정해 원료 초콜릿을 만든다. 이것을 여러 가지 틀에 붓고 진동을 가해 기포를 제거하고 냉각한 뒤 틀에서 꺼낸다. 이것을 보통 밀크초콜릿 또는 스위트초콜릿이라 한다.

피복초콜릿은 안이 비어 있는 초콜릿 껍데기가 생기므로, 여기에 여러 가지 알맹이를 넣고 다시 초콜릿을 충전해 냉각시켜 틀에서 꺼낸다. 카카오 매스를 짜서 카카오 버터를 분리한 다음 남은 것을 분쇄해 코코아가루를 만든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기계를 이용한 대량 생산이 가능했지만 예전에는 요즘의 홈메이드 초콜릿처럼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초콜릿 또는 카카오 빈을 처음으로 즐긴 사람들은 아즈텍 문명인이다. 중앙아메리카, 즉 현재의 멕시코 중앙 고원에 자리 잡은 아즈텍족은 원래 수렵 생활을 했으나 이곳에 정착하면서 농경과 종교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그들의 농경문화 중 카카오나무는 유난히 인기 있는 작물로 오랫동안 재배되었다. 왕실에서는 카카오 열매를 볶아 그 지역에서 흔히 재배되는 아키오테라는 나무 열매나 옥수수와 함께 빻아 바닐라나 고춧가루 같은 향신료를 물과 함께 개어서 음료수로 만들어 규칙적으로 먹었다. 결혼 예식이나 신성한 종교 예식을 올릴 때도 초콜릿 음료를 바치고 마셨다. 아즈텍 사람들은 카카오 열매에 영양이 많고 최음제 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아즈텍 황제 몬테수마 2세는 여인들을 만나러 가기 전에 코코아를 여러 잔 마셨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아즈텍의 아홉 번째 황제인 몬테수마 2세는 초콜릿이 “저항력을 길러주고 피로를 덜어주는 신성한 음료수로서 이 귀한 음료 한 잔이면 음식을 먹지 않아도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다”라고 했을 만큼 초콜릿을 좋아했다. 신들의 열매로 불리며 황제에게 바쳐진 귀한 초콜릿 음료는 피로회복제 같은 약으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갈색 금’이라는 별명으로 화폐 역할까지 했다. 카카오 열 알로 토끼 한 마리를, 백 알로는 노예 한 명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귀했고, 공물이나 세금으로 사용했을 만큼 인기가 많았다.

아즈텍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초콜릿이 유럽에 전해진 것은 15세기 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로 네 번째 항해를 하던 중 카카오 빈을 포함한 유카탄 반도 연안의 농산물을 가지고 돌아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뒤 16세기 중반에 멕시코를 탐험한 스페인의 페르난도 코르테스가 스페인의 귀족이나 부유층에게 소개해 유행시켰으며, 1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전 유럽에 퍼지게 되었다. 그 당시 스페인과 프랑스 상류층에서 초콜릿은 음료나 음식으로보다는 성적인 흥분을 높이는 최음제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에너지 공급원으로 사용되었는데, 금식기간에 성직자들이 초콜릿 음료를 많이 마시자 이것이 금식의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논쟁이 지속되면서 이 신비한 음료는 오히려 더 빨리 귀족 사회에 퍼져나갔다. 초콜릿을 흥분제로 인식한 프랑스 왕실에서는 초콜릿을 마시지 못하게 금지했지만 왕비를 비롯한 귀족 부인들과 여성들은 그 달콤한 맛에 이끌려 몰래 초콜릿을 찾았다.

17세기 후반에는 초콜릿의 인기와 더불어 오해 또한 극에 달했는데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후작 부인이 피부가 검은 아이를 낳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초콜릿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초콜릿이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피부가 검은 아이를 낳은 후작 부인에게 매일같이 초콜릿 음료를 가져다주던 하인이 잘생긴 흑인이었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이자 작가로 ‘사디즘’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도나티앙 알퐁스 프랑수아 사드 후작은 피부 자극제로 쓰이는 물질인 칸타리스를 넣은 초콜릿으로 젊은 여인들을 매혹시켰다 감옥에 갇힌 일도 있다. 음식인지 기호품인지 또는 약품인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사이 초콜릿은 유럽에 성공적으로 보급되었고 세계 각국에서 카카오나무를 재배하게 됨으로써 설탕과 커피에 이어 세계 제3대 무역상품이 되었다.

18세기경에는 지오반니 비앙키라는 프랑스 의사가 발기불능 환자에게 “바닐라나 다른 향신료가 들어간 초콜릿을 자주 마시세요”라는 처방전을 내놓을 정도로 초콜릿은 만병통치약 구실도 했다. 그러나 초콜릿을 향한 사랑만큼 시기와 질투도 있었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초콜릿을 즐겨 먹었는데, 아무리 유명한 음악가라 해도 그의 초콜릿 사랑은 사회의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이처럼 초콜릿은 귀족들의 기호 식품으로 서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계급 음식이기도 했다. 『철도 여행의 역사』 『기호품의 역사』를 저술한 독일의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볼프강 시벨부슈는 음식물을 통한 경제, 사회, 종교적 사회 분열을 논한 책 『환상의 맛(Taste of Paradise)』에서 초콜릿을 남부 가톨릭 귀족층의 음식으로, 커피를 북부 프로테스탄트 중산층의 음식으로 규정했다. 이는 “귀족들은 대부분 초콜릿을 마시며 우아한 아침식사를 즐겼지만 서민들과 상인들은 커피를 마시며 잠을 참아야 했다”라는 글에서 드러난다.

이렇게 부유층과 귀족 계층에게 커다란 인기를 누리며 그들의 사치 기호품이었던 초콜릿은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조금씩 대중에게 다가갈 기회를 갖게 된다. 딱딱하게 굳은 판형 초콜릿의 개발로 대량 생산이 일반화되면서 초콜릿은 대중적인 먹거리가 되었다. 전 세계에 초콜릿 공장이 들어섰고 대중은 손쉽게 초콜릿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고형 초콜릿의 원형은 1828년 네덜란드인 반 호텐이 만들었다. 그는 지방분을 압착해 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냈으며, 초콜릿에 설탕을 넣어 맛 좋은 과자로 변신시켰다. 그 뒤를 이어 스위스인 다니엘 피터는 우유를 첨가해 초콜릿 제조를 산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초콜릿은 가공 성형이 자유로워 어떤 것이라도 초콜릿 안에 넣을 수 있고, 다른 것의 속에도 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신제품은 끊임없이 개발되었다.

미국에서는 이민자들의 작은 마을인 허쉬라는 곳에 초콜릿 공장이 들어서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허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초콜릿의 대명사가 되었다. 초콜릿은 변질이 적고 모양을 잘 유지한다는 장점 덕에 장거리 여행 시 사랑받을 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무역 상품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면서 전 세계인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일반적인 선물로 자리 잡았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생일에도 가장 인기 있는 선물 아이템 중 하나로 각광받는다. 부활절에는 계란 모양 초콜릿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각 나라의 명절에도 초콜릿으로 만든 여러 음식이 전통적으로 이어지면서 더욱더 발전되고 다양한 초콜릿 가공식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신의 열매’라 불린 초콜릿은 고대인에겐 매우 사랑스러운 음식이었다. 발견 초기에는 약용과 화폐로 여겨지다가 중세에는 음란한 사치 기호품으로 한동안 오해를 받고, 요즘에는 가장 인기 있는 간식이자 먹거리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정표로 탈바꿈했다. 카카오라는 열매가 이렇게 대중적인 사랑을 얻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린 셈이다. 소수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온 초콜릿이 이제야 우리에게도 사랑의 음식으로 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의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음식에 대한 사랑만큼 진실한 사랑은 없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혀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음식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언젠가는 진실한 감동을 전달하게 된다. 초콜릿은 어떤 음식보다 그 감동을 가장 잘 전달하는 달콤하고 따뜻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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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집필자 소개

파티코디네이터, 식문화 및 와인 강사, 메뉴 플래너, 레스토랑 컨설턴트 및 음식 평론가로 다양한 영역에서 음식 문화와 테이블 매너를 전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저서로는 『나는 서울이 맛있다』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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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도서관
미식가의 도서관 | 저자강지영 | cp명21세기북스 도서 소개

전 세계 음식 문화와 테이블 매너에 대한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았다. 음식에 숨겨진 갖가지 이야기와 각국의 대표 음식과 종류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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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초콜릿미식가의 도서관, 강지영,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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