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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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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속담에 “시간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은 하루를 사흘로 쓴다”라는 말이 있다. 얼핏 들으면 그저 바쁜 삶을 살아야 한다 말처럼 들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효율적인 삶을 지향하는 문구다. 하루를 보내더라도 일과 가정 그리고 취미 활동과 개인 시간까지 모두 알차게 쓰겠다는 포부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 말처럼 하루하루를 유용하게 보내려면 시간 계획을 잘 짜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인 대부분은 시간관념이 없다.

약속시간을 정할 때나 길을 물을 때, 정확한 시간을 말하기보다는 어림잡아 얘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항상 시간에 여유를 두기 때문에 약속을 잡아놓고 일찍 나와 기다리거나 늦게 온다고 해서 불평하지도 않는다. 길을 묻는 사람에게도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에 여유를 두고 대답해준다. 사람마다 걷는 속도나 걸음의 폭이 다르기 때문에 15분 거리를 10~20분이라 말한다. 아무리 바빠도 여유를 가지려는 삶의 자세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유를 즐기는 것 같으면서도 영국인 나름대로는 규칙이 있다. 같은 시각에 차를 마신다든가, 정해진 요일에 독서를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대부분 특정한 날짜와 시간에 맞춘 스케줄을 규칙적으로 실행한다. 시간관념이 없다고 할 만큼 여유로운 태도와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모습은 그들에게 잠재된 보수성과 진보성처럼 상반되지만, 비교적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여유와 규칙의 경계선에서 시간을 잘 활용하는 그들의 생활방식은 일찍부터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영국과 세계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산업혁명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으로 발달한 산업과 그에 수반된 경제적·정치적 사회 구조의 변혁을 일컫는다. 영국은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인클로저 농업혁명 등 다른 나라보다 먼저 혁명을 겪으면서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안정된 정치적 기반을 갖게 돼 자유로운 농민 계층이 등장하게 되었다. 농촌에서는 이들을 주축으로 농업의 기계화와 더불어 방직공업이 활성화되고, 근대적인 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 무렵에는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이로써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시작하게 되었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리처드 트레비식과 실제로 증기기관차를 철로 위에서 운행하게 만든 조지 스티븐슨의 공헌으로 산업화는 박차를 가하게 된다. 스팀 로코모티브(steam locomotive), 즉 증기기관차는 최초의 철도를 만들면서, 탄광의 석탄을 항구까지 실어 나르거나 리버풀이나 맨체스터 같은 주요 공업 도시 사이에 물품을 운반해 영국 산업혁명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물론이고, 세계의 교통수단에도 새로운 혁명을 가져왔다. 산업혁명은 유럽과 미국 등으로 퍼졌으며,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식민 지배로 노동력과 자본을 보유한 영국은 산업혁명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세계에서 앞서나간 반면, 사회적으로는 극심한 병폐에 시달리게 된다.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공업화로 활성화된 도시로 몰리면서 도시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공해 는 더욱 심해졌으며 치안도 불안해진 것이다. 노동자의 인권 유린 역시 큰 문제로 떠올랐는데,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며 휴식도 철저히 제한했다. 심지어 고아들을 이용해 어린이 노동이라는 몰상식적인 일을 벌이기도 했다.

찰스 디킨스는 그 당시 영국 사회의 이면을 배경으로 빈민층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라는 유명한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식사는 홍차와 소량의 버터만이 곁들여지는 빵과 감자가 전부일 정도로 음식 문화는 열악했다.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의 물결로 자신들만의 고유한 음식 문화를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조리 시간이 긴 전통 음식을 대신할 간편하면서도 빠르게 허기를 채워줄 새로운 형태의 음식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생겨나 발전을 거듭해 현재 영국 음식을 대표하는 두 가지 요리가 등장하게 된다. 하나는 ‘피시 앤 칩스’이고 다른 하나는 ‘풀 블랙퍼스트’다.

피시 앤 칩스는 풍부한 어장을 자랑하는 북해에서 잡히는 대구(cod), 해덕(haddock) 대구, 넙치(plaice) 등의 살만 두껍게 발라내 물과 식초, 약간의 소다를 넣은 밀가루 반죽을 입혀 튀긴 음식이다. 굵직하게 썬 감자도 함께 튀겨 신문지나 포장 용기에 담아 판매하는데, 소금과 식초를 뿌려 가며 먹는다. 절인 양파, 절인 삶은 계란, 때로는 으깬 완두콩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펍(pub)각주1) 이나 레스토랑에서도 피시 앤 칩스를 즐길 수 있지만, 바쁘게 일하는 이들을 위한 길거리 음식으로 고안된 만큼 대부분 포장해간다. 육식 위주의 식단을 즐기는 영국인이 종교적인 이유로 금요일마다 고기 대신 생선을 먹게 되면서 피시 앤 칩스는 더욱 인기를 얻게 되었고, 금요일 오후만 되면 칩 숍(chip shop)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1860년, 런던에 처음으로 피시 앤 칩스 숍이 생기면서 런던과 영국남동부를 중심으로 번져 나갔다. 19세기 후반에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역은 물론, 영연방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캐나다에서도 피시 앤 칩스의 인기가 급속도로 올라갔다. 영양 많은 싱싱한 생선과 허기를 채울 감자를 가장 빠른 조리법인 튀김 방식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시간에 쫓겨 배고픈 워킹 클래스(working class)각주2) 에게 반가운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저렴하고 신속하게 서빙되어 테이크어웨이(take away)각주3) 의 정수를 이루면서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누구나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풀 블랙퍼스트 또는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는 현재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호텔 조식으로 가장 많이 제공되는 풍부한 고단백 아침식사다. 근래 들어서는 브런치(brunch)각주4) 의 유행으로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도 사랑받는 올 데이 메뉴(all day menu)각주5) 가 되었다.

하루 종일 나가서 열심히 일하려면 무엇보다도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영국인도 이미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간단한 홍차 한 잔과 빵 한 조각으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고 일에 몰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그들의 아침식사는 코스 요리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푸짐하다.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 지방에 따라 재료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기름을 넣고 튀기거나 지지는 프라이 업(fry-up) 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영국인이 아침식사로 즐겨 먹는 재료는 20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베이컨, 소시지, 계란이 주가 되며 기름에 튀긴 빵이나 감자를 곁들여 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아침식사 메뉴다. 지역에 따라 우리나라의 순대와 흡사한 블랙 푸딩(Black Pudding)이나 구운 콩팥(Kidney), 키퍼(Kipper)라 불리는 훈제 청어를 즐기기도 한다.

영국식 풀 블랙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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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이 군림하던 대영 제국 최고 전성기인 19세기에 귀족들이나 부유 계층은 노동과 관계없는 부류였지만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많아 코스로 이어지는 아침 정찬을 즐겼다. 아침식사에는 오렌지주스와 홍차가 빠지지 않지만 요즘에는 커피나 다른 과일 주스로 대신하기도 한다. 특히 홍차는 영국 차 문화의 대표주자이자 영국인에게 정신적 안정과 평화를 제공하는 음료다.

홍차는 19세기부터 유행처럼 번져 나가, 귀족층뿐만 아니라 서민층에게도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산업혁명으로 일이 늘어나자 능률을 높이기 위해 술보다는 차를 선호했고 추운 날씨에 우유를 넣어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은 영국인의 생활에 깊게 파고들었다. 차 한 잔이라는 뜻의 ‘Cup of Tea’를 간단히 줄여 커파(CUPPA)라 하는데 이는 통상적으로 서민들이 즐긴다.

날씨가 좋은 여름에 열리는 첼시꽃박람회나 아스콧경마대회, 헨리 보트경주대회 같은 행사나 피크닉에서 상류층 사람들은 은으로 된 식기와 다기에 차와 함께 스콘과 케이크, 크림을 잔뜩 뿌린 딸기를 즐겨 먹는다. 아침에 즐기는 블랙퍼스트 티, 오후에 즐기는 애프터눈 티, 상류 계급이 즐기는 오후의 티타임인 하이 티 등 영국의 차 문화는 사교에 중요한 다리를 놓았다.

영국의 풀 블랙퍼스트는 경우에 따라 다양한 코스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래의 8가지 코스를 거친다.

1코스

잠을 깨우기 위한 커피나 홍차 한 잔으로 시작한다.

2코스

포리지(porridge)각주6) 또는 간소하게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는다.

3코스

기름진 음식을 섭취하기 전, 산도가 있는 오렌지주스나 자몽주스를 준비한다.

4코스

메인으로 베이컨과 소시지, 계란과 감자, 토마토와 버섯 등을 기름에 튀긴 요리에 소스를 넣어 조리한 콩을 곁들여 먹는다.

5코스

키퍼, 즉 훈제 청어 혹은 훈제 연어를 피클과 먹거나 전통적인 지역 음식을 먹는다.

6코스

2~3가지 생과일이나 설탕에 절인 과일을 달지 않은 요구르트와 섞어 먹는다.

7코스

잉글리시 머핀이나 토스트에 버터와 잼을 발라 즐기는데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가장 전통 있고 인기 있다. 네 번째 코스에서 기름에 튀긴 빵을 먹은 경우에는 이 코스를 생략하기도 한다.

8코스

다시 커피나 홍차로 마무리한다.

이 정도 식사면 여느 디너 정찬과 맞먹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푸짐하고 다양하다.

영국인은 푸짐한 아침식사를 가장 선호하고 그리워하며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런 전통마저 간소화되고 있다. 핵가족화되고 맞벌이·싱글족이 증가함에 따라 심지어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물론 이 현상이 영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아침식사의 힘으로 큰 발전을 이끌어낸 영국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심지어 영국 경제가 쇠퇴한 이유는 아침식사를 소홀하게 여겼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좀 더 일찍 일어나 식사하는 것은 육체적 건강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올바른 생활 습관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 옛날, 아침식사의 덕을 본 세대들은 지금의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아침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은 일을 열심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힘과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점에만 그치지 않는다. 집밖에서는 채울 수 없는 심적 안정감과 정서적 충만감까지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마땅히 권장될 만하다. 온 가족이 모여 서로 하루 일과를 나누고 밤사이 안녕을 고하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아침식사다. 평온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국가의 힘이 비롯된다는 이론을 영국인은 아침식사를 통해 실천했다.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 그마저도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간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쉬이 누그러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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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집필자 소개

파티코디네이터, 식문화 및 와인 강사, 메뉴 플래너, 레스토랑 컨설턴트 및 음식 평론가로 다양한 영역에서 음식 문화와 테이블 매너를 전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저서로는 『나는 서울이 맛있다』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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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도서관
미식가의 도서관 | 저자강지영 | cp명21세기북스 도서 소개

전 세계 음식 문화와 테이블 매너에 대한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았다. 음식에 숨겨진 갖가지 이야기와 각국의 대표 음식과 종류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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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영국 음식미식가의 도서관, 강지영,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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