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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음식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숨겨진 역사를 간직한 동서양의 교차로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며 오랜 음식 문화를 자랑하는 터키인이 흉노족의 후예라고 하면 깜짝 놀라는 이들이 꽤 많다. 흔히 야만인으로 알려진 흉노족은 한때 말을 타고 달리며 아시아 뿐만아니라 유럽까지도 세력을 뻗어 지배한 기세당당한 민족이다. 이들 흉노족은 훗날 몽골 유역을 위주로 소아시아와 동부 유럽까지 장악했던 훈족을 낳았고 게르만 민족 대이동이라는 사건의 발단이 되기도 했다. 또한 훈족은 셀주크투르크에 이어 오스만투르크를 탄생시키면서 지금의 터키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민족은 5세기 중반 경에 서쪽으로는 라인 강, 동쪽으로는 카스피 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만들어낼 정도로 지칠 줄 모르는 힘을 과시했다. 오랜 전쟁을 겪으면서 터키인이 고안 해낸 음식들 역시 범상치 않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6세기경부터 중국에서 구전된 시에 영감을 받아 월트 디즈니에서 제작한 〈뮬란(Mulan)〉이라는 만화 영화에는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황실을 위협했던 훈족(또는 돌궐족)이 등장한다. 기원전 220년에 수립된 터키의 테오만 야브구 왕국을 중국인은 ‘흉노’라고도 불렀다. 터키 민족은 중세기에 아랍 지역을 횡단해 서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아랍 문자를 도입해 사용했다. 그러다보니 서북아시아와 아랍권은 물론 그리스나 남부 이탈리아까지 터키의 문화적 영향이 합쳐져 다양한 음식 문화의 양상이 나타난다.

터키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거대한 초원 국가이며 유럽과 중동에서 큰 나라들 가운데 하나다. 예로부터 동서양의 접점이라는 지리상의 이점과 넓은 지형 덕분에 허브와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밀과 쌀 같은 곡류는 물론 양고기와 유제품, 생선과 야채 등 메제(Meze)라 불리는 그들의 상차림에서 볼 수 있듯이 풍부하고 다채로운 음식 재료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오스만투르크 왕조 때는 근처 나라들에 조리법과 요리를 전할 만큼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내가 맛본 음식들 중 기억나는 맛이 식탁에 오른다면 요리사를 죽여버리겠다”라고 공표한 황제가 있을 만큼 식탁은 늘 호사스러웠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궁정문화가 고조에 달했을 때, 터키 요리는 프랑스 요리, 중국 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꼽히기도 했다.

유목생활을 하며 언제 어디서 전쟁을 치러야 할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끼니를 때워야 했던 그들은 이동하면서 사육하기 용이한 양과 염소 같은 가축을 주식량으로 삼았는데, 따라서 조리 방법 역시 복잡하지 않다. 빠르게 익혀 먹어야 했기에 고기를 얇게 잘라 칼과 창에 끼워불을 피워 구워 먹었다. 일명 전투 식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음식이 바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패스트푸드의 하나인 케밥(Kebab)이다.

전쟁 중에 병사들에게 필요한 힘을 길러주기 위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던 케밥은 식사 도중에 적군의 공격을 받아도 쉽게 식사도구인 칼이나 창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전쟁을 오래 겪으면서 자연스레 묻어 나온 그들만의 노하우가 아닐까 싶다. 이들은 이 음식을 전쟁 중에 허기를 달래는 끼니거리로만 여기지 않고 훌륭한 식사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아랍 대부분의 나라와 인도, 파키스탄 등 서아시아에도 전파시켰다.

케밥은 이제 뉴욕, 런던, 파리, 시드니 같은 대도시의 길거리를 비롯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케밥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나라에서 발전한 결과, 종류는 수십 가지에 이르게 되었고, 나라마다 명칭도 달라졌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도네르 케밥(Doner Kebab)과 쉬시 케밥(Shish Kebab)이다.

도네르 케밥은 커다란 창에 다진 양고기를 붙이고 얇게 저민 고기를 여러 겹 반복해 덮어 큰 원통 모양으로 만든 후 천천히 돌려가며 굽는 음식이다. 익은 겉부분부터 칼로 저미듯이 잘라내 야채, 소스를 함께 넣고 얇은 빵에 감싸서 먹는 간편 음식의 대명사다.

쉬시 케밥은 원래 고기를 칼이나 창에 끼워 구워먹던 음식이었으나 지금은 쇠꼬챙이에 끼워 즐기는 가장 잘 알려진 터키 레스토랑 메뉴다. 우리나라의 꼬치구이와 흡사하게 고기를 썰어 서너 조각씩 끼워 구워내는데, 양반 문화가 중심이 된 우리나라에서는 나무 꼬치를, 10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전쟁을 겪은 터키에서는 쇠꼬치를 이용한다. 이런 점에서 어떤 생활환경이 어떤 음식 문화를 뿌리 내리게 하는지 알게 된다.

터키의 전쟁 역사에서 고안된 또 하나의 대표 음식은 놀랍게도 크루아상이다. 크루아상은 버터를 잔뜩 넣어 부드럽게 결결이 찢어먹는 빵으로 현재는 우리에게도 인기 있는 프랑스 대표 음식 중 하나다. 십 몇 년 전, 음식 문화를 공부하던 나는 왠지 귀족적일 것만 같은 크루아상이 전쟁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크루아상의 뿌리는 16세기, 오스만투르크 군대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했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벽 일찍부터 빵을 만들기 위해 깨어 있던 오스트리아인 제빵사는 땅 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몰래 땅굴을 파서 침공하려는 오스만투르크군의 계획을 군대에 알렸고 오스트리아 군대는 그들의 침략을 막을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오스트리아의 황제는 전쟁에 큰 공헌을 세운 제빵사를 불러 소원을 물었다. 그 제빵사는 기념으로 오스만투르크의 상징이자 아랍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어 팔고 싶다고 했다.

황제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먹던 크루아상은 지금의 것보다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했다. 물론 오스트리아도 제빵 대국이긴 하나 절정에 이른 18세기 초 프랑스식 빵들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럼 어떻게 오스트리아의 빵이 프랑스로 넘어오게 되었을까?

18세기, 어린 나이에 프랑스 황태자에게 시집을 온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 덕이다. 평화와 국력 보강을 위해 한 나라와 다른 나라가 서로 정략결혼을 일삼던 유럽에서는 왕족이나 귀족에 딸린 식솔들에 의해 다른 나라의 음식이나 예법, 패션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도 자연스레 전달되었다. 그로써 엉뚱한 곳에서 문화적 배경의 기원을 찾게 되는 경우가 무수히 많아졌다.

케밥과 크루아상은 역경을 이겨내고 더욱 단단해진 창조성이 만들어낸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세계적인 음식들을 그저 허기를 채우던 전투 식량으로 또는 승리 기념용 빵으로 역사책과 박물관에서나 만나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생 중에 맛본 음식은 뇌리 한 구석에 자리 잡아 추억만으로도 아련하게 마음을 채워주며 평생 잊지 못할 맛으로 기억된다. 그 지울 수 없는 맛을 끌어내 연구하고 개발해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먹거리의 기쁨을 선사한 이들이 있어 음식 역사는 세월의 흐름을 타고 이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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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집필자 소개

파티코디네이터, 식문화 및 와인 강사, 메뉴 플래너, 레스토랑 컨설턴트 및 음식 평론가로 다양한 영역에서 음식 문화와 테이블 매너를 전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저서로는 『나는 서울이 맛있다』 ..펼쳐보기

출처

미식가의 도서관
미식가의 도서관 | 저자강지영 | cp명21세기북스 도서 소개

전 세계 음식 문화와 테이블 매너에 대한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았다. 음식에 숨겨진 갖가지 이야기와 각국의 대표 음식과 종류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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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터키 음식미식가의 도서관, 강지영,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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