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2

다중우주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멀티버스로 가는 은하철도
프랑스의 천문학자 카미유 플라마리옹이 1888년에 펴낸 책 『대기권 : 일반기상학』에 실린 목판화

15~16세기에 만들어진 작자 미상의 작품이다. 중세의 선교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하늘의 끝으로 나가고 있다. 오늘날 우주의 끝을 탐구하는 우리가 바로 이런 심정이 아닐까.

ⓒ 위키피디아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림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프랑스 천문학자 카미유 플라마리옹이 1888년 펴낸 책에 실려 있는 삽화다. 『대기권 : 일반기상학』이라는 책으로, 여기에는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목판화 하나가 실려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신학자나 선교사 같아 보이는 남성이 ‘하늘의 끝’을 막 나가고 있는 극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둥근 반원으로 그려진 ‘천구’ 아래는 컴컴한 밤하늘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 무수한 별과 달 그리고 태양이 있다. 땅은 평평하다. 하지만 천구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하늘은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으로 변한다.

우주 시대가 열리기 전인 당시는 그 어떤 인류도 하늘의 끝에 나가본 적이 없다. 따라서 이 목판화에서 하늘 밖의 세상은 전적으로 상상력에 의지해 그려졌다. 구름과 함께 신성한 빛이 가득한 환상적인 모습으로.

지금은 다르다. 오늘날 인류는 하늘 밖이 어떻게 생긴지 안다. 대기권 너머로 인공위성을 쏘아 보낸 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고, 인류는 아예 다른 천체(달)까지 다녀왔다. 성능 좋은 망원경을 짓고 일부는 지구 밖으로 보내 더 넓은 하늘 밖을 탐색했다. 그 결과 지구는 특별할 것 없는 하나의 천체(행성)이고 지구 대기권 너머에 무수한 다른 천체가 있으며, 코페르니쿠스 시대 이후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태양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을 수 있었다. 생명체, 그중에서도 지적 생명체인 인류가 산다는 점에서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던 지구와 태양은 더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1969년 인류는 지구 밖 천체인 달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다. 카미유 플라마리옹의 책에 등장하는 목판화 속 주인공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일까?

ⓒ NASA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인류는 우주의 시작과 경계마저 연구했다. 천체물리학 이론과 각종 천문학 관측 장비를 이용해 우주가 137억 년 전 대폭발로 태어났고, 이후 급격히 팽창하는 ‘인플레이션’ 단계를 거쳐 오늘날과 같이 별과 은하, 빛이 있는 우주가 태어났다는 이론을 세웠다. 우주는 이후로도 계속 커지고 있는데,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어떤 속도로 커지고 있는 지까지 계산할 수 있었다.

플라마리옹의 그림이 나타내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겨우 몇 백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류는 이제 그림 속 신학자와는 달리 ‘하늘의 밖’에 무엇이 있는 지 안다. 이제 우주에 대한 의문은 풀린 걸까.

그렇지 않다.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우주가 태어나 커지고 있다는 것은 크기가 있다는 뜻이고, ‘경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 것도 없는 무의 공간일까. 영어로 우주를 나타내는 ‘유니버스(universe)’라는 말을 살펴보자. 접두사인 ‘유니(uni)’는 하나를 의미하는 단어다. 우리 우주가 유일한 우주이며 전체라는 생각을 담고 있다. 그런데 만약 우주에 끝이 있다면 ‘우주의 밖’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혹시 우주 밖에 또 다른 우주가 있는 것은 아닐까[‘여러 개의 우주’라는 뜻에서 ‘다중우주(multiverse)’라고 부른다].

하늘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하늘은 넓어져갔다. 마치 산 너머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한 사람이 마침내 산을 올라가 더 넓은 세상을 보려고 시도하듯, 이제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머리를 우주 밖으로 내밀고 있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자, 당신은 우주를 여행하는 티켓을 손에 들고 있다. 이제 하늘의 끝으로 머리를 내밀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신학자의 심정으로 은하철도에 몸을 싣는다. 낯선 우주가 눈앞에 펼쳐지려는 참이다.

〈차장의 안내방송〉 다중우주 여행에 앞서 명심할 내용들

“다중우주로 여행하는 은하철도에 탑승하신 승객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안내할 차장입니다. 여행에 앞서 먼저 밝혀야 할 사실이 두 가지 있습니다. 우선 다중우주 이론은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순수한 이론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 우주조차도 제대로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 우주 밖을 탐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죠. 이 한계는 단순히 기술이나 지식의 한계가 아닙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빠른 관찰 수단(빛 등 전자기파)조차도 도달할 수 없는 곳이 있기 때문에 오는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이 말은 다중우주를 영원히 ‘검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과학에서 검증은 무척 중요한 요소입니다. 검증을 통해 사실로 밝혀지거나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과학은 발전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이런 과학을 무엇하러 연구하는가 하는 비판에 부딪힐 수 있겠죠. 그러다 보니 미국 뉴욕 시립대 마시모 피글리우치 교수는 저서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에서 다중우주를 과학이 아니라 ‘거의 과학’으로 분류하고 있어요. 사이비 과학을 의미하는 ‘유사과학’은 아니지만, 온전한 과학으로 인정하기는 좀 힘들다는 뜻이지요. 물론 이 이론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요.

더구나 검증이 안 되다 보니 일단 이론이 만들어지면 그 이론이 여러 사람에 의해 계승,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화석처럼 남는다는 단점도 있어요. 다시 말하면 이론이 발전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런 어려운 이론을 연구하는 연구자 자체도 적지만 말이에요.

또 다른 문제는 상상의 한계에서 오는 한계예요. 인류는 선천적으로 우리 우주 밖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4차원 시공간(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 속에 사는 인류는 이보다 높은 차원의 세상을 머릿속에 그려낼 수 없죠. 경험해본 적이 없거든요. 따라서 만약 아무리 읽어도 머릿속에 다중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정상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이 글에서는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차원으로 비유해 그린 그림이 등장하는데, 어디까지나 비유임에 유의해 주세요.”

〈출발〉 테그마크 교수의 4단계 다중우주

이제 열차가 출발했다. 본격적으로 다중우주의 세계를 탐색하자. 이 분야 연구를 가장 잘 정리한 최근 문헌은 물리학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브라이언 그린 교수가 쓴 『멀티 유니버스(원제는 ‘숨겨진 실체’)』다. 여기에는 모두 9가지 다중우주 이론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서 다중우주 논의에 불을 댕긴 과학자가 있다. 바로 미국 MIT 물리학과 막스 테그마크 교수다. 테그마크 교수는 2003년 ‘평행우주’라는 논문에서(평행우주는 다중우주와 같은 뜻으로 많이 쓰이는 용어다) 4단계 다중우주를 상세히 소개하고 제안한 바 있다. 비교적 체계적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지금도 가끔 소개되고 있다. 물론 모든 학자가 이 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린 교수는 4단계로 다중우주를 분류하지 않았지만, 순서에는 비슷한 면이 있다.

지금부터 은하철도를 타고 대표적인 다중우주를 한 군데씩 방문해 보도록 하자. 먼저 테그마크 교수의 4단계 다중우주를 찾고, 이어서 최신 끈이론이 예측하는 다중우주 두 곳을 방문한다.

〈제1정거장〉 비슷한 우주가 반복되는 ‘누벼이은 다중우주’

‘우리 우주와 똑같다. 은하가 있고 별이 빛나고 있다. 별 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어디엔가 지구나 태양과 비슷한 별이 있을 것만 같다.’

‘누벼이은 다중우주’에 가면 아마 이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우리 우주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는 다중우주기 때문이다.

누벼이은 다중우주라는 말은 물리학 전문 번역가이며 대진대학교 물리학과 초빙교수인 박병철 박사가 『멀티 유니버스』에서 쓴 번역어를 땄다. 영어로는 ‘패치(옷 등의 조각) 다중우주’라고 부르며, ‘허블볼륨 다중우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허블볼륨은 우주 팽창으로 별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작은 지역을 의미하는데, 보통은 관측 가능한 우주를 의미한다(하지만 테그마크 교수 등이 쓴 『우주와 궁극의 실체』라는 책에 따르면, 실제로는 관측 가능한 우주는 허블볼륨보다 크다. 따라서 이는 잘못된 용어다).

관측 가능한 우주 범위 밖에서 우주가 멈춘다는 증거는 없다. 이런 우주가 하나하나의 우주를 구성한다고 보면 전체가 다중우주를 이룬다.

ⓒ 동아사이언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누벼 이었다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이 우주는 여러 개의 천을 기워 옷을 만들 듯, 또는 모자이크처럼 색과 도형을 조각조각 맞춘 듯 끊임없이 이어진 우주를 의미한다. 현재 인류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범위는 400억~420억 광년이다. 빛도 속도가 있기 때문에 이 이상은 인류가 아무리 기술을 발전시켜도 확인할 수 없다. 그 어떤 외계생명체도 마찬가지다. 물리적인 한계다. 그런데 420억 광년 뒤에 우주가 끝난다는 증거는 없다.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이형목 교수는 “지평선(관측 가능한 우주의 끝) 부근에 있는 우주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 너머의 우주도 우리 우주와 물리적인 조건은 같다는 것이 현재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우주는 그 밖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물리적으로 확인 가능한 420억 광년 거리 안쪽 우주를 우리 우주로 본다면, 그 밖에는 또 다른 우주가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 이해가 갔다면 우주는 무한히 확장된다. 우리 우주 끝에 놓인 또 다른 우주 역시 반지름이 420억 광년인 하나의 우주라고 볼 수 있다. 그 우주 끝에는 또 다른 우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끝도 없이 우주가 이어져 있다면? 이 모두가 하나의 독립된 다중우주가 된다!

그런데 만약 이런 우주가 무한히 늘어선다면 대단히 재밌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나와 똑같은 사람, 즉 ‘도플갱어’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테그마크 교수가 2003년 계산해본 결과를 보면, 지금 우리 우주에는 전자, 광자, 쿼크 등의 ‘입자’가 10118개 있다. 입자 하나를 2진 부호로 계산해 보면 우주에 존재하는 배열의 경우의 수는 210118개다. 만약 이 경우의 수에 맞는 우주를 하나씩 모은다고 생각해 보자. 공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테그마크 교수는 1010118m면 다 모을 수 있다고 봤다(테그마크 교수는 2006년에도 같은 계산을 했는데, 이때는 1010115m였다. 브라이언 그린 교수는 다른 방식으로 계산해 1010122m라는 결과를 얻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아무튼 엄청나게 크다!).

이 말은, 만약 우주 전체 크기가 무한하다면, 평균 1010118m마다 한 번씩은 우리 우주와 똑같은 우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인류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경우의 수지만,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누벼이은 다중우주 어딘가에서 지금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 커피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2정거장〉 지구 최후의 날 볼 지 모를, ‘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

논리적으로 명쾌한 누벼이은 다중우주는 여러 물리학자나 천문학자들이 존재할 것이라 보는 다중우주다. 하지만 지금부터 등장하는 다중우주는 논란이 많다.

누벼이은 다중우주는 우리 우주 너머에 존재할 뿐 우리 우주의 연장과도 같기 때문에 모든 물리법칙이 동일하다. 하지만 다중우주가 꼭 그럴 이유는 없다. 테그마크 교수가 2단계로 분류한 다중우주는 물리법칙이 완전히 다른 우주다. 다시 말해 우주의 기본법칙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물리 상수가 다르다. 중력가속도가 다르고 우주상수가 다르고 입자의 질량이 다르다. 그 결과는? 빛도 물질도 힘도, 우리 우주와는 전혀 다른 우주다.

어떻게 이런 우주가 나타날 수 있을까? 테그마크 교수가 꼽은 2단계 우주의 예는 ‘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물리학과 안드레이 린데 교수가 제안했다. 앞서 우주가 대폭발로 태어나 짧은 시간 안에 급팽창한 시기가 있다고 했다. 잘 알려진 ‘인플레이션 우주론’이다. 그런데 린데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물리학에서 인플레이션은 ‘인플라톤’이라는 입자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는데, 이 입자가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질 때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입자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요동을 보일 수 있다. 그 결과 우주 여기저기에 인플라톤의 에너지가 일정하지 않게 된다. 이 말은 인플라톤이 간혹 예상치 못했던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예상치 못했던 행동의 결과는 인플레이션이 부분적으로 또 일어나는 일이다. 다른 곳보다 인플라톤 에너지가 큰 지역에서 갑자기 급팽창이 일어나며 새끼 우주가 생긴다. 이 우주는 계속 팽창하며 하나의 새로운 우주를 이룬다. 인플레이션이 새로 일어났으니 모든 물리법칙이 다르다. 그리고 전체 우주는, 굳이 묘사하자면 나뭇가지처럼 갈라져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새끼 우주가 달린 모습이 된다(린데 교수가 초창기에 묘사한 모습). 또는 마치 빵 또는 스위스 치즈 속 기포처럼, 우주 안에 작은 우주가 가득 들어 있는 모습이 될 수도 있다(그린 교수가 묘사한 모습).

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는 두 가지 형태로 묘사된다. 첫 번째는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을 처음 제시한 안드레이 린데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가 묘사한 포도송이 모양이다. 오늘날에는 테그마크 교수가 ‘빵 속 기포’라고 묘사한 형태로도 많이 표현된다.

ⓒ 동아사이언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런 추가 인플레이션은 우주에서 한 번 일어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갑자기 일어날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눈앞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눈앞에 새로운 우주가 생겨나 순식간에 커져서 새로운 우주가 된다?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2010년, 이런 현상을 ‘지구 최후의 날’ 시나리오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지구가 멸망할지는 알 수 없다. 앞에서 말했듯 다중우주가 어떤 모습이며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제3정거장〉 당신의 선택이 우주를 가르는 ‘양자 다세계 해석’

세 번째 우주는 양자역학의 해석이 만든 신기한 다중우주다.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 당신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은 언제든 이 여행을 그만둘 수 있다. 티켓을 환불하고 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에 눌러앉아 살 수도 있고, 아니면 그리운 지구를 향해 귀환 열차를 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때마다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당신이 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에 눌러앉은 우주’와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가 각각 벌어진다. ‘여행을 계속하는 우주’ 역시 생긴다. 세 우주에 각각 당신이 산다. 그리고 갈라진 우주는 그대로 각자의 운명을 끝까지 이어간다.

만화같이 기괴한 이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현대 물리학의 근간인 양자역학에서 시작된다. 양자역학에서는 양자(입자)의 상태나 정보가 하나로 고정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함수 형태로 표현된다. 이 말은 위치 등 양자의 성질이 똑부러지게 정해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양자의 ‘위치’ 조차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양자는 당신 손바닥 위에 있을 수도 있고 아주 작은 확률이겠지만 달나라에 있을 수도 있다.

손바닥 위와 달나라 중 어디 있는지 알려면 측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측정해 양자의 상태를 결정하는 과정이 양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함수(‘파동함수’)에는 없다. 다시 말해 양자의 상태를 결정하는 함수로는 눈으로 확인한 양자의 상태를 정작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양자역학 해석이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가 많은 과학자가 따르는 ‘코펜하겐 해석’이다. 이에 따르면, 양자 파동함수는 관측과 동시에 무너진다(‘붕괴한다’고 표현한다). 그 순간에는 함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양자가 달나라에 있는지 손바닥 위에 있는지 비로소 결정된다. 아주 이상한 설명이지만, 사실 이렇게 놓고 양자의 성질을 확률과 통계로 풀면 실제 현상과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따라서 이 해석은 오늘날까지 널리 받아들여져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현상을 다르게 해석한 과학자가 있다. 미국의 휴 에버렛 3세라는 물리학자다. 에버렛 3세가 만든 이론에 따르면, 관측 순간 파동함수는 붕괴하지 않는다. 양자는 다만 달나라와 손바닥 위 모두에 동시에 존재한다. 말이 안 된다고? 맞다. 하지만 이 다음이 백미다. 우주는 관측 순간 양자가 손바닥에 존재하는 우주와 달나라에 존재하는 우주로 나뉜다. 파동함수는 붕괴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지만, 대신 우주가 두 개로 나뉘게 됐다. 그리고 두 곳은 이 양자의 상태만 서로 다를 뿐 다른 모든 조건이 똑같다.

이런 해석은 ‘양자 다세계 해석’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르면, 우주는 매순간 무수히 많은 다중우주로 갈라지고 있다. SF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브라이언 그린 교수는 오히려 이쪽이 코펜하겐 해석보다 과학적으로 모순이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우주는 양자의 파동함수에 따라 끊임없이 갈라진다. 하나하나의 우주가 다중우주를 구성한다.

ⓒ 동아사이언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해석의 최대 난점은 검증이다. 갈라진 우주에서는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없다. 이제 곧 제4정거장으로 향할 당신이, 지구로 귀환하는 다른 우주의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낼 방법은 전혀 없다.

〈제4정거장〉 수학적 매트릭스 세상,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이제 테그마크 교수가 제안한 4단계 다중우주 중 마지막 단계를 여행할 차례다. 이 우주 역시 대단히 황당하다. 하지만 역시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를 기억하는가. 우리가 보는 세계 이면의 실체가 드러날 때, 우리는 깜짝 놀라게 된다. 4단계 다중우주는 우리의 실체를 그에 맞먹게 충격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수학으로 이뤄진 세상’이다.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는 수학이 곧 물리적 우주와 같다고 본다.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우주라도 만들 수 있다.

ⓒ 동아사이언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는 실제 우주와 수학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황당해 보이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바로 직전의 양자 다세계 해석에서 양자의 위치를 설명하는 것이 파동함수라고 했다. 이 말은 양자의 성질이 모두 함수 형태로 설명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그 해석에 따라서 우주가 갈라지기도 했다.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수학이 동원된 것인지, 아니면 수학이 있었기에 우주가 생겨난 것인지 차이를 밝힐 수 있을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궤변 같지만, 이런 문제에서 새로운 다중우주가 탄생한다. “그렇다면 아예 수학적으로 우주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컴퓨터로 수학적 우주를 만든다고 해보자. 여러 가지 물리법칙을 가진 우주를 꼼꼼히 시뮬레이션해서 그 안에서 우주가 탄생하고 진화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들 하나하나는 물리적 실체를 가진 우주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학적 우주를 만들 수 있으니 무궁무진하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 우주도 이런 우주 중 하나는 아닐까. 그래서인지, 테그마크 교수는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를 ‘궁극적 다중우주’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간 기착지 안내방송〉 이제 끈이론 다중우주의 세계로

“안녕하세요. 첫 번째 여행지인 테그마크 교수의 4단계 다중우주를 여행하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그럴 듯한 곳도 있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곳도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다중우주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지금부터는 최신 끈이론이 예측하는 다중우주로 안내합니다. 끈이론은 우주가 ‘끈’이라고 부르는 2차원 구성성분, 또는 ‘브레인’이라고 부르는 다차원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론입니다. 끈이론은 우주가 10~11차원으로 돼 있다고 보기 때문에 4차원에 사는 우리의 머리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2, 3차원으로 대강 묘사할 수 있을 뿐이에요. 조금 머리가 아프겠지만, 요즘 가장 유명한 2개의 이론이니 한번 방문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출발합니다.”

〈제5정거장〉 시간에 따라 나타나는 ‘주기적 다중우주’

주기적 다중우주(cyclic multiverse)는 천문학자 사이에서도 꽤 널리 알려진 다중우주다. 유명한 천체물리학자가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 다중우주 역시 발상의 전환을 해야 이해가 간다.

혹시 이사한 경험이 있다면 옛날에 살던 동네에 가 보자.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어려서 다녔던 목욕탕 건물이 세탁소로 변해 있고 문구점이 중국집으로 변해 있다. 그러면 문득 당신이 살던 옛날의 동네와 지금 새로운 동네가 전혀 별개의 세상으로 느껴질 것이다. 만약 우주가 이런 식으로 완전히 변해 버린다면, 전혀 새로운 우주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간적으로 나란히 늘어선 우주가 아닌, 시간적으로 늘어선 우주 말이다. 물리학에서 시간과 공간은 다 같은 ‘차원’의 일종이다. 전깃줄에 참새가 줄지어 앉아 있다고 해보자. 1차원 공간(선)에 동시에 여러 개의 다중우주가 존재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만약 전깃줄을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 비유하면? 시간에 따라 여러 개가 존재하는 다중우주가 된다.

그런데 ‘느낌’에 불과할 것 같은 이런 생각이 실제로 최신 다중우주의 아이디어와 일치한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물리학과 폴 스타인하르트 교수가 제안한 ‘주기적 다중우주’다. 다만 조건이 있다. 우주가 완전히 끝났다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우주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우주가 끝났다면 그건 말 그대로 우주가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다. 둘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없다.

스타인하르트 교수는 이런 아이디어를 끈이론을 통해 자세히 설명했다. 최신 끈이론인 ‘M이론’에서는 1차원의 끈부터 CD 모양의 2차원 끈, 튜브 모양의 3차원 끈 등 9차원까지 다양한 차원의 끈이 있다고 본다. 이들을 통틀어 ‘브레인’이라고 부른다. 이런 끈이 11차원(‘초’끈이론은 10차원) 공간 속을 둥둥 떠다니며 움직인다고 본다. 주기적 다중우주에 따르면, 우리 우주도 이런 브레인 중 하나다. 이런 브레인이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브레인(우리 우주) 근처에도 또 다른 브레인이 하나 더 있어서 어느 순간 충돌하는데, 스타인하르트 교수는 그것이 바로 대폭발(빅뱅)이라고 봤다. 일단 대폭발이 일어나면 브레인은 서로 천천히 멀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브레인(우주)은 팽창한다. 우리가 지금 보는 우주가 이런 상태다.

이후 브레인이 서로 멀어지는 속도는 천천히 느려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속도가 역전되며 다시 서로 가까워진다. 그 결과는? 다시 대폭발이 일어나며 우주는 ‘다시 태어난다’.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주기적 다중우주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에 따른 다중우주로,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다. 이 이론이 갖는 또 하나의 발상의 전환은, 시간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는 점이다. 기존 대폭발 우주론에서는 우주가 태어나기 전의 시간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주기적 다중우주에서는 대폭발 이전의 시간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주 이전에도 시간은 있었고 우주 이후에도 시간은 있다. 아까 비유한 전깃줄 위의 참새처럼, 시간이라는 이어진 차원 위에 우주가 참새처럼 연달아 앉아 있을 뿐이다.

시간과 영원

만약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았다 무너뜨리길 반복한다면, 각각의 모래성은 그 시공간마다 하나씩 존재했던 독립된 성이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 istockphoto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브레인 충돌 다중우주

우리 우주가 끈이론의 고차원 시공간을 떠다니는 3차원 공간(브레인)이라고 보고, 근처에 있는 다른 브레인(평행한 다중우주)과 주기적으로 충돌을 일으킨다고 보는 가설이다. 이 그림에서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공간(3차원)에서 묘사하기 위해 브레인을 2차원 평면으로 묘사했다.

빅뱅
① 충돌이 일어난다.

브레인 충돌 다중우주 ① 빅뱅

ⓒ 동아사이언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분리
② 우주는 팽창하며 물질 밀도는 낮아진다.

브레인 충돌 다중우주 ② 분리

ⓒ 동아사이언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팽창
③ 멀어지는 속도가 느려진다. 최종적으로 정지한 뒤 다시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브레인 충돌 다중우주 ③ 팽창

ⓒ 동아사이언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재접근
④ 점차 가까워져 충돌한다. 브레인(우주) 팽창 속도는 빨라진다.

브레인 충돌 다중우주 ④ 재접근

ⓒ 동아사이언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제6정거장〉 ‘풍경 다중우주’

마지막 다중우주는 끈이론 연구가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다중우주다. 우리나라 끈이론 연구가들도 관련 연구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 그 실체를 밝히기에는 갈 길이 멀다.

‘풍경 다중우주’라는 말은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이 분야의 석학이자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물리학과 레너드 서스킨트 교수의 책 『우주의 풍경』에서 따왔다. 영어로는 ‘랜드스케이프’로 쓰며, ‘경관’, ‘풍경’, 또는 그냥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라고 부른다.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의 모습은 제2우주(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 중 빵의 기포 모양을 한 우주와 비슷하다. 공간 안에 우주상수가 다른 또다른 새끼 우주가 생기며, 이 과정이 반복되며 다중우주가 된다.

ⓒ 동아사이언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풍경 다중우주를 이해하려면 먼저 우주상수에 대해 알아야 한다. 현재 우주는 점점 더 빨리 팽창하고 있다. 이를 ‘가속 팽창’이라고 한다. 가속 팽창하는 우주를 발견한 학자들은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우주를 이렇게 점점 가속시키는 에너지는 무엇일까. 아직 밝혀진 사실이 없어서 ‘암흑에너지’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우주상수’가 유력한 후보 중 하나다. 우주상수는 우주를 ‘밀어내기 위해’ 아인슈타인이 방정식에 도입한 항이다.

우주상수 그래프

ⓒ 동아사이언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우주상수는 밀어내는 힘을 가진 항이므로 양수여야 한다. 음수가 나오면 우주는 팽창하지 않고 쪼그라들어 사라진다. 양수라도 너무 크면 우주가 흩어질 것이다. 우리 우주의 관측 결과와 일치하려면 0을 간신히 넘는 아주 작은 값이어야 한다. 우리 우주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론이 옳다면 우리 우주의 우주상수 값만큼은 계산을 통해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다중우주는 둘째 치고라도 말이다.

끈이론 연구가들은 이런 우주상수를 끈이론을 통해 확인하려 노력해 왔다. 문제는 아직까지 그 값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연구를 했던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이필진 교수는 “음수인 우주상수는 무수히 많이(101000개) 구했지만, 양수인 해는 현재까지 한 가지 종류만 알려져 있다”며 “끈이론 내부에서도 수학적으로 다중우주가 있느냐에 대해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필 우리 우주와 ‘딱 맞는’ 우주상수를 어떻게 얻어낼 수 있을까. ‘후보’가 많으면 된다. 이를 위해 끈이론에 대해 조금 알아보자. 최신 끈이론인 M이론에서는 우주가 11차원(초끈이론은 10차원)이라고 본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우주는 시간까지 4차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어디 있을까. M이론에서는 나머지가 아주 작은 공간에 꼬인 채 숨어 있다고 본다. 이를 ‘여분차원’이라고 본다. 길이가 10-33cm 크기로 아주 작아 관찰은 불가능하다.

여분차원은 끈이 몇 개가 꼬인 형태로 묘사되는데 꼬인 형태와 수, 에너지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조합이 나온다. 무려 10500개다. 여분 차원 하나하나는 나름의 우주상수를 지닐 수 있다. 우주 아주 작은 곳에 무수히 깔려 있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여분차원 중 양의 우주상수를 지닌 곳은 언제든 팽창해 새 우주가 될 수 있다. 마치 제2정거장에서 만난 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와 비슷하다. 포도송이 또는 빵 속 기포 모양으로 우주가 계속 생겨난다. 이렇게 다양한 우주상수를 지닌 우주 전체 목록을 서스킨트 교수는 ‘풍경’이라고 불렀고, 이런 우주 하나하나가 다중우주라고 보는 것이 풍경 다중우주다. 우리 우주는 이런 풍경 우주 가운데 하나다.

풍경 다중우주 이론은 강력한 생각의 전환을 불러온다. 과거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알렸다면, 이제는 우리 우주조차 주인공이 아님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10500개나 되는 우주상수가 가능하다고 했다(앞서 테그마크 교수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의 수를 모두 센 값이 10118개였던 점을 기억해 보라. 그 값을 네제곱을 한 값보다도 많은, 정말 어마어마한 수다). 따라서 이 안에 우리 우주와 일치하는 특성을 가진 우주상수가 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별을 만들고 은하를 구성하며 생명을 탄생시킨 ‘절묘한’ 우리 우주의 우주상수가 사실은 별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저 10500개나 되는 후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우리 우주는 사실은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셈이다.

〈차장의 귀환 방송〉 다중우주, 정말 존재할까

“이제 저희가 준비한 다중우주 여섯 가지를 모두 둘러봤습니다. 여행 초반에 말씀 드렸듯, 모두 이론으로만 존재하며 검증이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처음 소개한 누벼이은 다중우주는 간접적으로나마 ‘관측 가능한 우주 너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그 밖에 우주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죠. 하지만 다른 우주는 순전히 이론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주창자와 몇몇 동조자 외에는 이론을 계승, 발전시킬 수도 없다는 단점도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그밖에도 몇 가지 비판을 소개해 드릴게요. 영원한 인플레이션은 마치 포도송이처럼, 또는 빵 속 기포처럼 우주가 자란다고 했어요. 그 경우 우주가 공간적으로 서로 충돌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지가 무성해진 나무와 가지가 서로 엉키 듯이요. 그런 흔적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지만, 아직은 성공하지 못했답니다. 양자 다세계 해석 역시 검증에 문제가 있죠.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멀티 유니버스』의 번역자인 박병철 박사는 “무수히 갈라진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가 서로 만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라며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듣고 보니 당신과 제가 만난 것도 신기하네요. 어딘가에는 우리가 서로 모른 채 사는 세계도 분명 있을 텐데 말이죠.

끈이론 다중우주는 끈이론 자체가 아직 검증되지 못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끈이론은 검증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를 애태우고 있어요. 하지만 주기적 다중우주는 간접적인 근거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중력을 통한 시공간의 요동인 ‘중력파’를 검출해 우주 탄생 직후를 연구하는 방법이에요. 이형목 교수는 “주기적 다중우주 이론에서는 빅뱅 직후 중력파가 나오지 않는다고 보지만 보통 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는 중력파가 나온다”고 말했어요. 중력파는 지금도 계속 검출기를 업그레이드하며 검출을 시도하고 있으니 조만간 밝혀지겠죠? 마지막으로 풍경 다중우주는, 양수 우주상수 자체가 거의 나오지 않아 고전 중이랍니다.

자, 어떠신가요? 일부 과학자들은 여전히 다중우주가 연구할 가치가 없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우리 우주를 비롯해 연구할 분야가 매우 많은데 우주 바깥까지 연구해야 하느냐는 거죠. 더구나 검증하기 어려운 ‘거의 과학’인데 말이에요. 하지만, 이 글 처음에 보여 드렸던 목판화를 생각해 보세요. 하늘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했던 신학자가 하늘 밖의 ‘비밀의 영역’을 엿보듯, 우리가 우주 바깥을 탐구하려는 건 어쩌면 우주의 비밀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은하철도 여행이 여러분의 소원을 이루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시 구절을 한 편 소개하면서 마칠까 합니다.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를 생각하는 과학자 또는 당신의 심정이 바로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이를테면 시간을 거슬러 가서
아무것도 만나지 못하던 일,
평행의 우주를 단 한 번도 확인할 수 없던 일

- 허수경,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중에서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윤신영 집필자 소개

과학전문지 '과학동아' 기자 및 현 편집장. 과학 이야기 하는 게 좋고 과학책이나 잡지 보는 게 낙인 자칭 과학 애호가다. 세상과 사회을 보는 눈으로서의 과학을 중시한다. &#..펼쳐보기

출처

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2
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2 | 저자강석기 외 | cp명과학동아북스 도서 소개

과학기술의 성과와 중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과학매체의 편집장들과 과학전문기자, 과학칼럼니스트, 연구자들이 모여 집필하였다. 진화론 논쟁부터 애니..펼쳐보기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다중우주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2, 강석기 외, 과학동아북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