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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유전학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환경은 유전을 보완하는 필터

아침에 유치원 차량에 올라타며 이따 보자고 손을 흔들었던 엄마를 그날 오후 돌아온 아이는 영영 볼 수 없게 됐다. 소개팅을 한다며 들떠서 나갔던 딸은 의식불명의 상태로 돌아왔다가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고, 겨우 일곱 살 된 여자아이는 집에서 잠자던 사이 납치돼 끔찍한 경험을 했다. 아이들은 엄마를 잃었고, 부모는 딸을 잃었으며, 어린 여자아이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모두 잔인한 성범죄가 일으킨 안타까운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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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면수심의 범죄들이 줄을 잇자 시민들의 공분은 하늘을 찔렀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재발 방지를 위해 강력하고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화학적 거세까지 거론되고 있다. 화학적 거세란 성적 충동을 일으키는 남성호르몬의 생성 혹은 흡수를 억제하는 약물을 강제해 성욕을 감퇴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시상하부에서 방출되는 GnRH에 의해 분비된 생식샘자극호르몬(gonadotropin)은 다시 고환의 간세포(라이디히 세포)를 자극해 흔히 남성호르몬으로 불리는 테스토스테론을 분비시킨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생식기를 발달시키고 남성으로서의 2차 성징을 발현시키며, 성적 충동을 일으키는 호르몬이다. 따라서 테스토스테론을 억제하는 약물을 이용해 성적 충동을 저하시킨다는 것이 화학적 거세의 골자다.

화학적 거세가 실제로 가능하게 된 것은 테스토스테론 억제 기능을 가진 약물들이 만들어지면서부터지만, 이것이 실시된 배경 뒤에는 인간의 행동을 교화나 교정 같은 심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약물과 같은 물리적 처치로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인간의 행동에는 실재적인 원인이 있음을 인정하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의 변형된 형태인 것이다.

아동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으면서 시민단체 연합회원들이 아동과 여성의 안전을 촉구하는 시민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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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개인의 행동이 선천적인 유전자 탓이냐, 후천적인 양육 방식 탓이냐에 대한 논란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극명해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의 ‘행동’이라는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현상 뒤에 ‘유전자’라는 실질적인 존재가 버티고 있느냐, 아니면 무형의 존재인 ‘교육’이 자리 잡고 있느냐로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무형적 존재인 ‘행동’을 촉발하는 것은 유형적 존재인 유전자일까, 역시 무형의 존재인 ‘교육’일까?

사실 개인의 행동이 훈육된 결과가 아니라 타고난 본성 탓이라는 생각은 낯선 것이 아니다. 유전자의 존재를 짐작조차 못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타고난 품성이나 고귀한 혹은 저급한 태생적 특질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 본의 아니게 버려진 고귀한 태생의 아이가 비범한 자질과 능력을 발휘해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그토록 많은 것은 ‘타고난 무엇’에 대한 심리적 동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행동유전학(行動遺傳學, behaviour genetics)이란 바로 유전자의 발현과 개체의 행동 사이의 연관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를 말한다. 인간 행동의 기원을 유전자에서 찾으려는 시도의 역사적 계보는 우생학 연구로부터 파생됐다.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이란 말 그대로 ‘우수한 생물 종을 찾아내는 연구’라는 뜻으로, 인간이라는 종의 개량을 목적으로 개인을 특성에 따라 선별해 육종하려는 의미를 지닌 학문이다. 사실 출신 성분에 따라 대우를 달리 해야 한다는 우생학적 개념 자체는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를 학문적으로 구체화시킨 인물은 19세기 말 영국의 인류학자였던 프랜시스 골턴(Sir Francis Galton)이었다.

골턴은 인간의 특성이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양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골턴은 수년에 걸쳐 당시 영국 사회의 저명인사들의 가계도를 조사각주1) 한 뒤, 그 결과를 『유전적 천재(Hereditary Genius)』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에서 골턴은 이들 대부분이 혈연관계로 연결돼 있으며, 기존의 유명 인사들과 혈연관계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몇 년 후 그 스스로가 유명 인사가 될 확률이 높다고 서술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것처럼 명가(名家)에서 인재(人才)가 난다는 사실은 골턴에게 유전적 특징은 신체적 형질과 함께 개인의 지능과 자질과 성격과 행동에까지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이에 따라 골턴은 천재란 교육이 아니라 선천적 자질이 더욱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간이 우수한 종으로써의 생존과 번성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뛰어난 자질을 지닌 이들을 골라서 아이를 낳게 해야 한다고 주장각주2) 하기도 했다.

영국의 인류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본성과 양육(Nature vs. Nurture)이란 대립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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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골턴은 사촌 형이었던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의 진화론에 깊이 감명 받았고, 이를 인간 사회에 적용시키려 했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지닌 종이 그렇지 않은 종에 비해 번식에서 우위를 누리기에 마치 자연이 이 개체를 선택한 것처럼 번성한다는 ‘자연선택설’을 내놓았다. 사촌 형의 이론에 깊이 감명 받은 골턴을 이를 인간에게까지 적용했는데, 그는 어떤 것이 유리한 형질인지 판단할 수 없어 무작위적인 변이를 통해 우연히 선택되는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지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것이 유리한 형질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스스로의 진화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말은 그의 이런 생각이 반영된 말이었다.

골턴의 우생학은 19세기 말, 영국의 국내외 정세, 즉 자본주의 발달로 인한 극심한 빈부격차와 빈민층의 증가로 인한 사회 불안감 해소의 필요성, 그리고 제국주의 확대로 인한 식민지 지배 이데올로기 확립 필요성에 따라 빠르게 받아들여졌다. 우생학은 소수의 자본가가 다수의 빈민층을 억압하고, 영국이 식민지 국가들을 수탈하기 위한 명분으로 매우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또 우수한 형질을 지닌 민족(혹은 개인)은 선택되고, 열등한 형질의 민족(혹은 개인)은 도태된다는 우생학의 논리는 어째서 사회적 불평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상태가 고착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멘델의 유전법칙이 재발견되고 형질의 유전 현상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서 우생학은 과학적 권위까지 등에 업게 됐고, 유럽과 미국 등 다른 서구 열강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미국의 독일에서는 우생학이 강력한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될 정도로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미국의 경우, 데븐포트(Charles Davenport)에 의해 뉴욕에 ‘우생학 기록보관소(Eugenics Record Office, ERO)’가 세워졌고, ERO의 후원에 의해 이민제한법각주3) , 강제불임법각주4) 등이 통과되면서 본격적인 우생학적 경로를 걷기 시작했다.

독일은 이보다 더욱 극단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이 된 독일 국민을 사로잡은 히틀러와 나치당은 ‘인종위생법(racial hygiene)’을 통과시키고 극단적 인종차별주의를 우생학에 접목시켜 사회적 부적응자로 분류된 이들에 대한 강제 불임 수술은 물론 안락사와 집단 학살까지도 자행했다. 결국 나치에 의한 우생학의 광기(狂氣)는 약 35만 명의 강제 불임 수술과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수만 명의 아이들에 대한 안락사, 그리고 600만 명의 유대 인의 목숨을 앗아간 집단 학살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게 됐다. 인류가 저지른 악행 중에 최악이라고 여겨지는 일련의 사건들 이후 우생학은 입에 담는 것조차 꺼려지는 끔찍하고 참혹한 단어가 돼 철저히 외면당하게 됐다. 하지만 인간의 근원적 특성을 생물학적 뿌리에서 찾으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생쥐를 무서워하는 아기 vs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생쥐

1930년대 이후 우생학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자 본성과 양육의 대립각에서 양육의 중요성에 대해 주장했던 이들의 목소리 역시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에도 양육의 중요성을 주장한 사람들은 있었다. 심지어 철저한 환경결정론자였던 존 왓슨(John B. Watson)은 “내게 열두 명의 아이를 주면 그 어떤 아기라도 재능, 기호, 경향, 능력, 소질, 조상들의 경력과 무관하게 내가 선택한 유형의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환경의 중요성을 주장한 이들의 배경은 17세기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의 ‘빈 서판’ 이론에서부터 시작됐다. ‘빈 서판(tabula rasa)’ 이론이란 인간은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와 같아서 출생 이후의 경험과 학습, 교육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근원적 추동력은 기질(본성)이 아니라 교육(환경)의 차이라는 개념이다.

진화론과 생물학적 발견이 우생학과 유전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과학적 뒷받침이 되었다면, 20세기 초 제시된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이론’은 양육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과학적 기반을 제시해 줬다. 파블로프의 실험에 따르면 개는 벨 소리를 들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개에게 있어 벨 소리는 아무 의미없는 중성 자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에게 벨 소리를 들려주고 먹이를 주는 과정을 반복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개는 벨 소리에 침을 흘리고 먹이를 갈구하는 반응을 보여준다. 이는 개에게 벨 소리와 먹이와의 관계에 대해 학습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비단 벨 소리 외에도 어떤 종류의 신호든 먹이와 연결되면 개는 그 신호를 학습하고 침을 흘릴 수 있음이 후속 실험을 통해 밝혀지면서 행동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로 체득할 수 있음이 증명됐다. 학습과 양육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될 무렵 왓슨은 유명한 ‘꼬마 알버트 실험’을 통해 사람 역시도 조건 반사에 의해 학습될 수 있으며, 이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증거를 제시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와 조건반사 실험 모습

행동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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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의 실험 대상은 알버트란 이름을 가진 11개월 된 아기였다. 왓슨은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학습된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귀신은 무서운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왓슨의 말처럼 아직 세상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던 아기 알버트는 대개의 어른들이 무서워하는 불이나 쥐 등도 무서워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잡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에 왓슨은 알버트가 무서워하는 자극을 생쥐와 연결시켰다. 알버트는 망치로 쇠를 두들겨 큰 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며 울음을 터트리곤 했기에, 알버트에게 실험용 생쥐를 보여준 뒤 망치 소리를 들려줬다. 처음에 알버트는 망치 소리에만 반응했다. 하지만 이 실험을 단지 6번 반복하고 나자 알버트는 쥐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울음을 터뜨리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알버트는 파블로프의 개보다 더욱 광범위한 조건 형성을 보여줬는데, 애초에 조건 자극으로 설정했던 실험용 생쥐뿐만 아니라, 생쥐의 특징이었던 ‘움직이는 흰색 물체(흰색 토끼나 강아지, 흰 옷을 입은 사람, 펄럭이는 흰색 천 등)’ 모두를 공포에 대한 조건 자극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알버트의 실험은 비록 실험에 대한 윤리적 논란각주5) 을 가져왔지만, 인간에게 있어 행동의 많은 부분을 경험, 즉 양육 환경의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20세기 중반 이후 우생학이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와 맞물려 스스로 몰락하자 그에 대한 반대 급부로 양육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선천적인 본성에 대한 지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폭발적으로 발달한 생물학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유전의 중요성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됐다. 여기에 동물행동학의 발달은 유전적 요인에 의한 행동의 인과성에 대해 다시금 주목하게 만들었다.

생쥐는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다들 알고 있듯이 고양이는 생쥐의 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쥐의 고양이에 대한 공포심은 선천적인 것일까, 학습되는 것일까? 앞서 양육론이 우세할 때에는 공포심과 같은 정신적 특질은 환경에 따른 결과라는 의견이 많았다. 내가 개를 무서워한다면 언젠가 개에게 물렸다거나 혹은 위협을 당한 적이 있어서지, 원래부터 개를 무서워하도록 타고 태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를 처음 본 어린아이들은 -꼬마 알버트를 비롯해- 무서워하기는커녕 호기심의 대상으로 관심을 가지기에 이 의견은 그럴 듯하다.

그렇다면 생쥐는 어떨까?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고양이를 본 적이 없는 생쥐라도 고양이를 무서워할까? 실제로 실험해본 결과 생쥐는 경험에 상관없이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과학자들은 생쥐의 염색체에서 공포심과 연관된 유전자 알파1E(alpha 1E)를 찾아냈다. 이 알파1E 유전자를 제거한 유전자 제거 생쥐(knockout mouse)는 고양이털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관찰됨에 따라 어떤 종류의 공포심은 유전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고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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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변형쥐 만드는 법

유전자변형쥐는 만드는 법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수정란을 이용해 유전자를 넣는 ‘트랜스제닉 마우스(transgenic mouse)’와 배아줄기세포로 특정 유전자를 뺀 ‘녹아웃 마우스(knock-out mouse)’가 있다.

트랜스제닉 마우스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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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제닉 마우스
① 재조합 DNA
② 수정란 속 정자의 핵에 재조합 DNA를 주입한다.
③ 수정란을 초기 배아단계까지 키운다.
④ 대리모 쥐에 배아를 이식한다.
⑤ 후손 중에 원하는 형질을 가진 유전자변형쥐를 고른다.

녹아웃 마우스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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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웃 마우스
① 특정 유전자를 없애기 위해 만든 ‘표적 벡터’.
②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해 벡터를 넣으면 특정 유전자가 빠진다.
③ 특정 유전자가 빠진 배아줄기세포만 골라 배양한다.
④ 배아줄기세포를 쥐의 배아에 넣는다.
⑤ 대리모 쥐에 배아를 이식한다.
⑥ 일부 세포의 유전자가 변한 새끼 키메라를 정상 쥐와 다시 교배시킨다.
⑦ 후손 중에 원하는 형질을 가진 유전자변형쥐를 고른다.

유전되는 공포심, 또 다른 의심의 시작

어떻게 공포심이라는 감정이 유전될 수 있을까?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는 이런 현상을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으로 설명한다. 이는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사하는 개체들 사이에서 A 전략이 다른 전략들에 비해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경우, 상대적으로 A 전략을 구사하는 개체는 생존과 번식에 우위를 누릴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는 A 전략을 구사하는 개체만이 살아남아 개체군 전체가 A 전략을 이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양이에 대해 본능적으로 공포심을 획득한 생쥐와 그렇지 못한 생쥐가 동시에 생존할 때, 이 두 개체 중 전자의 생존율은 월등히 높아지게 마련이다. 공포심이 없는 개체는 주변에서 풍기는 고양이 냄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은신처에서 나올 테니 그만큼 사냥당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몇 세대 지속되다 보면 공포심이 없는 개체는 모조리 고양이에게 잡아먹혀 결국 전멸되고, 선천적 공포심을 획득한 개체만이 살아남아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이처럼 우연히 나타난 선천적 공포심은 이것이 개체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우리 유전자 속에 각인되었을 확률이 크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동물들의 특정 행동과 연관된 유전자가 다수 발견됐고, 서로 다른 종임에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들도 발견됐다. 이와 동시에 적어도 화학 물질인 DNA 사이에서는 동물과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단세포생물과 다세포생물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현대의 생물학자들은 서로 다른 생물종들의 유전자를 자르고 이어붙이는 유전자 재조합을 일상적으로 수행한다. 만약 유전자를 구성하는 DNA 사이에 배타적 차이가 있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기에 우리는 곤충의 유전자를 넣은 옥수수를 만들고, 대장균에게 인간의 유전자를 넣어 인슐린을 만들게 한다. 이런 사실들은 인간 역시 동물의 일종이며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 행동의 근원이 유전자에 숨어 있음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다시 행동의 유전적 기원으로

인간 행동의 근본적 원인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다시 본성과 양육이라는 해묵은 주제로 돌아갔다. 행동유전학이라는 학문이 만들어진 것도 이 즈음이었다. 행동유전학이란 말 그대로 특정 행동을 나타나게 하는 유전자적 근원 혹은 진화적 근간을 찾는 학문이다. 행동유전학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연구방법은 쌍생아 연구와 입양아 연구다. 유전적 일치도가 다른 일란성 혹은 이란성 쌍둥이와 선천적 태생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입양아들을 대상으로 하여 유전과 환경 중 어느 쪽이 인간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먼저 쌍생아 연구를 살펴보자.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하나의 수정란이 갈라져 생겨나므로 이들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유전적 특질도 100% 일치한다. 하지만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 2개(혹은 그 이상)의 수정란에서 각각 발생하므로 태어나는 시기만 일치할 뿐 유전적 일치도는 보통의 형제자매와 마찬가지로 50%다. 만약 인간의 특성이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면 같은 가정에서 자라난 쌍둥이들은 유전적 일치도가 100%인 일란성 쌍둥이나 50%인 이란성 쌍둥이나 유사성의 차이가 없이 자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특성이 본성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면 유전적 일치도가 다른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가 보이는 유사성은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입양아 연구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도 같다. 입양아와 그들의 생물학적 부모, 친형제자매들은 서로 유전자는 공유하지만, 성장 환경은 분리되어 있어서 유전과 환경의 영향 중 어느 쪽을 크게 받는지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입양아와 그들의 생물학적 부모 혹은 형제 사이에 평균 이상을 넘어서는 행동의 유사성이 발견된다면 이는 유전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고, 그런 점이 없거나 혹은 전혀 다르다면 이는 성장 환경과 교육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된 쌍생아 연구와 입양아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살펴보면 지능과 성격, 특정 직업에 대한 흥미도 등 개인의 정신적 특질과 행동이 환경보다는 유전적 특성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심지어 출생 이후 서로 떨어져 입양되어 자라난 일란성 쌍둥이는 성인이 돼도 지능지수나 성향, 직업에 대한 선호도, 이성을 보는 관점 등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나 어린 시절에는 환경의 차이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지만, 성인이 되어갈수록 환경보다는 타고난 유전적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토대로 인간에게는 ‘타고난 특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쪽으로 다시 무게추가 쏠렸다.

인간에게 타고난 특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은 매우 많은 의미를 지닌다. 이는 자칫 인간의 행동 수정이 지극히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돼 부정적 행동을 보였던 이들에 대한 계도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범죄자의 범죄 성향을 그가 타고난 반사회적 기질 탓으로 여긴다면, 그는 교화가 불가능한 대상이 되고 이는 결국 범죄자들을 교화시키려고 노력하기에 앞서 그들을 단죄하고 사회에서 격리해버리는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지속된다면 결국 이미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뿐 아니라,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어도 유전적 특성상 반사회적 성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들에 대한 차별을 가져와 우생학의 부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유전-환경의 되먹임 고리에 대한 이해

오랜 대립의 결과, 유전과 환경 즉 인간 행동의 전제가 되는 이 두 가지 기둥의 역할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둘 중 어느 한쪽을 결정적인 원인으로 바라보는 흑백 논리의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상호 보완적인 요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따라서 유전과 환경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존재로 인해 다른 하나의 존재의 특성이 달라지는 되먹임 고리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많은 특성을 이미 태어날 때 지니고 태어난다. 하지만 그 특성이 어떤 형식으로 발현되는지는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에 극단적인 유전자 환원주의나 극단적인 환경결정론은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런 생각에 결정적 인상을 심어준 데에는 한 소녀의 비극이 있었다.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한 소녀가 구출됐다. 학자들이 지니(Genie)란 이름을 붙여 준 이 소녀는 끔찍한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던 지니의 아버지는 아이가 갓 돌이 된 이후부터 골방에 가두고 방치했고, 시각장애자였던 어머니는 지니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이러한 처참한 환경 속에서 지니는 무려 12년 동안이나 골방에 갇혀 타인과의 접촉을 차단당한 채 살아왔다. 처음 구출됐을 때 지니는 13살이었지만, 심각한 영양실조로 7세 정도로 보였고 말도 거의 하지 못했다. 지니의 성대를 비롯한 발성기관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기에 지니는 말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에 학자들은 낙관했다. 비록 그녀에게 일어난 사건은 끔찍했지만, 이제라도 따뜻하게 돌봐주고 적절하게 교육하면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는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지니는 이후 4년간에 걸친 언어치료를 받았지만, 결코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기억력에는 문제가 없었으므로 시간이 지나자 지니가 외울 수 있는 단어의 수는 늘어났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니는 이들을 적절히 조합해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언어를 이용한 의사소통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이 불행한 사건은 인간의 특성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줬다. 즉, 인간은 누구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지만, 출생 이후 적절한 언어 자극을 받지 못한다면 언어를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불행한 사건 속에는 ‘우리 인간의 특성은 환경이라는 필터를 거쳐 발현된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화학적 거세, 과연 성범죄의 대안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는 인식의 변화와 과학적 뒷받침이 가능해지면서 시작됐다. 즉, 성범죄자는 성적 충동을 자제하는 못하는 생물학적 특징을 가진 존재들로 규정하고, 성적 충동을 억제하는 약물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화학적 거세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약물은 데포-프로베라와 루프론 데포가 있다. 데포-프로베라는 원래 여성용 경구피임약으로 개발된 호르몬제인데, 남성에게 주사하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억제 성충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음이 알려져 화학적 거세에 쓰이고 있다. 루프론 데포 역시 화학적 거세 목적이 아니라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억제해 전립선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개발된 약물이다. 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의 감소는 전립선에 생긴 암세포뿐만 아니라 성적 충동 역시 억제하기 때문에 루프론 데포로 치료받은 환자들의 상당수가 성욕 감퇴를 호소하자, 이를 성범죄자들에게 적용시키자는 생각이 나타났다.

데포-프로베라는 원래 여성용 경구피임약으로 개발된 호르몬제다. 남성에게 주사하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억제해 성충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화학적 거세에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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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성범죄자들에 대해 강력한 대처를 외치던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서 1996년 처음으로 성범죄 재범자들에 대한 화학적 거세를 도입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지의 여러 국가에서로 퍼져나갔다. 실제로 화학적 거세법은 성범죄 감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화학적 거세법을 도입한 이후 약 27%에 달하던 성범죄 재발률이 8%로 떨어졌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변화가 보고되었다. 이에 국내에서도 2010년 처음 이 제도를 도입했고, 2012년 9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7회 국무회의에서는 ‘성충동 약물치료(일명 화학적 거세)’를 받는 성범죄자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에 따라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성적 충동은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이 호르몬의 수치를 저하시키면 분명히 성적 충동은 감소될 것이기에 범죄 발생 하락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화학적 거세를 최근 잇따라 일어나는 끔찍한 성범죄의 근본적인 치유법이라고 받아들여서는 곤란할 듯싶다. 인간은 분명 선천적 기질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의 원인을 기질 탓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역사적으로 알고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올바르게 성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범죄와 악행의 근원을 열악한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도 부당하다. 인간은 기질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태어나지만, 환경에 따라 기질은 다르게 발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는 것이 그 사람이 유난히 기질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되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이 순간적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의지와 충동을 다른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는 완충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나 근래 들어 성범죄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현대인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유난히 더 높아서라기보다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기질들은 더욱더 신속하고 급박한 것들인데 반해 사회는 더욱더 각박하고 메말라지니 순간적 충동을 다스리지 못하는 탓이 크다. 인간성을 스스로 포기한 범죄자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통한 사회질서 유지는 분명 필요하겠지만, 범죄의 근본적 원인을 생물학적인 것으로 단정 짓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해 전자팔찌나 전자발찌를 이용해 감시하고 있지만, 범죄를 100%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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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인간은 저마다 다른 모양과 다른 크기의 가능성의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 따라서 환경의 차이로 개인이 지닌 가능성의 모양과 최대 용량을 변화시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크기와 모양의 가능성의 그릇을 완전히 채워 개인이 가지고 태어난 역량을 십분 발휘하게 하거나 혹은 그릇에 아무 것도 담지 못하게 하여 개인의 역량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은 전적으로 환경의 몫이다.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들이고 생물이라면 다양성과 변이를 기본 특징으로 가지기에 개인마다 선천적인 차이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의 선천적 특징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라는 필터를 거쳐서 나타나기에 적절한 필터를 이용한다면 개인의 긍정적 특성을 최대로 발휘시키고, 부정적 특성은 최소로 감소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개인이 타고난 선천적 특질은 손쓸 방도가 없지만, 개인을 둘러싼 환경의 질적 수준은 얼마든지 개선이 가능하지 않은가.

자꾸만 늘어나는 강력 범죄가 걱정된다면, 개인의 유전자나 호르몬 수준, 반사회적 성향을 파악하여 기준치 이상의 사람들을 제재하는 방법을 취하기보다는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풀어낼 수 있는 사회적 완충망의 개선과 범죄에 대한 철저하고 엄격한 처벌 등의 환경적 필터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할 수 있는 시설을 확대하는 것이 강력 범죄를 줄이는 데 적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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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집필자 소개

이은희는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신경생리학을 전공하고 졸업후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했다. 대학원 시절부터 취미생활로 다음카카오에 '가타카에서 살아갈 날들을 위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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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2
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2 | 저자강석기 외 | cp명과학동아북스 도서 소개

과학기술의 성과와 중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과학매체의 편집장들과 과학전문기자, 과학칼럼니스트, 연구자들이 모여 집필하였다. 진화론 논쟁부터 애니..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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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행동유전학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2, 강석기 외, 과학동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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