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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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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2년 |
종교화의 양식인 삼면화와 유럽의 고전 회화를 재해석해 인간의 모습을 기괴하게 뒤틀린 형상으로 묘사한 그림이 특징이다. 원초적인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 줌으로써 현대 인간의 폭력성, 불안감, 공포 등을 표현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추상적인 모습을 띠며 유리나 철제 구조물 안에 갇혀 있는 형태로 묘사된다. 그는 대상을 혐오스럽게 묘사하여 활동 초기에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세계 대전 이후 피폐해진 인간성을 효과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영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1909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군인으로 전쟁의 후유증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어린 시절 베이컨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폭력에 대한 불안에 시달렸다. 열여섯 살 때 동성애자임이 알려지자 아버지는 집에서 그를 쫓아냈고, 학교도 그만두게 했다. 그 이후로 베이컨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런던과 베를린, 파리 등을 떠돌며 지냈다. 베이컨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폭력 혹은 고립감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20년대 후반 런던에 정착했고, 인테리어 설계, 가구 디자인을 하며 지냈다. 이때 알게 된 호주 출신의 무명 화가 로이 드 메스트르는 베이컨의 재능을 알아보고, 작품 활동을 하도록 권유했고, 피카소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공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33년에 베이컨은 신체의 왜곡된 표현, 고통, 두려움 등을 표현한 〈십자가 발치에 있는 인물〉을 선보였다. 베이컨은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었지만 미술계는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낙담한 베이컨은 그림에 흥미를 잃었고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작품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1944년까지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 1943년에는 스스로 대부분의 작품을 파괴해 버려서 현재 1944년 이전에 그린 작품 중 남아 있는 작품은 15점 밖에 되지 않는다. 천식을 앓고 있어 후방에서 근무했던 베이컨은 전생의 참상에서 느낀 공포감과 고통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45년 전시회에서 〈십자가 발치에 있는 인물에 관한 삼부작 습작〉을 선보였다. 기다란 목, 튀어나온 입, 공포감과 고통에 사로잡힌 뒤틀린 몸을 본 사람들은 그 노골적인 표현에 경악했지만, 세계 대전 이후 파괴된 인간성과 전쟁에 대한 공포 등을 예리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주목을 끌었다.
이후 여러 전시회에서 연달아 호평을 받았고 1949년에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여기서 베이컨은 두 가지 중요한 테마를 선보였다. 첫 번째는 ‘머리’시리즈로 머리를 관통당한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베이컨은 기존에 표현했던 공포심을 발전시켜 밀실 공포증을 표현했다.
두 번째는 고전을 현대적이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한 것이다. 스페인의 궁정 화가로 활약한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재해석해서 위엄 있고 기품 있는 교황의 모습 대신 인간적 고뇌로 가득 찬 교황으로 묘사했다. 이후 고전의 재해석은 베이컨의 주요 테마가 되었으며, 〈이노센트 10세 습작〉도 그중 하나이다.
1940년대 후반 런던의 ‘더 콜로니 클럽’이라는 영국 화가들의 사교 모임에 나가면서 루치안 프로이트, 프랑크 아우어바흐, 패트릭 스위프트, 마이클 앤드류스 등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베이컨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고 그들의 초상화를 즐겨 그렸다. 〈루치안 프로이트 초상 습작 삼부작〉도 그 중 하나이다. 그는 말년까지 주변 사람들을 모티브로 초상화를 즐겨 그렸다.
1964년 이전까지 베이컨은 주관이 뚜렷한 나이든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강렬한 느낌의 작품을 그렸는데, 조지 다이어를 만나면서 작품의 성격이 변하게 된다. 조지 다이어는 베이컨의 동성 애인이었다. 조지 다이어는 베이컨의 집에 물건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베이컨을 만나게 됐고 이후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당시 쉰네 살이던 베이컨은 다이어의 섬세한 성격과 스물아홉 살의 다이어에게서 느껴지는 활력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그렸다. 〈조지 다이어의 초상〉를 보면 뒤틀린 형상은 이전 작품들에서도 보이는 요소이지만, 육체적인 면을 강조하고, 전체적인 붉은 톤으로 온화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에서 다르다. 1971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다이어는 죽은 이후에까지 베이컨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71년 다이어가 죽은 후 베이컨은 큰 충격을 받았다. 1973년 영국 현대 화가로는 최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할 정도로 성공했으나, 1977년까지 다이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았다. 다이어가 죽은 뒤 그의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화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 실린 〈삼부작〉과 같이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준다. 1974년 술집 매니저였던 존 에드워즈를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존 에드워즈 초상 습작 삼부작〉에서 보이듯이 어두운 색을 사용하는 대신 밝은 톤으로 따스한 느낌의 작품을 그렸다. 이런 변화는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992년 마드리드에서 여든한 살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베이컨의 작품에는 아버지로부터 느낀 폭력성,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겪었던 핍박과 전쟁의 과정에서 본 인간의 야만성, 현대인의 공포와 혼란 등의 다양한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는 동물의 사체를 조각내서 유리 상장에 넣고 전시하는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선보인 데이미언 허스트와 같은 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위 순위권 내 작품(2014년 기준)
• 3위. 〈루치안 프로이트 초상 습작 삼부작〉
• 17위. 〈삼부작〉
• 20위. 〈존 에드워즈 초상 습작 삼부작〉
• 40위.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
• 57위. 〈이노센트 10세 습작〉
• 58위. 〈삼부작〉
• 73위. 〈투우 습작 1번 두 번째 버전〉
• 77위. 〈거울에 비친 글 쓰는 형상〉
• 85위.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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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거래 역사상 가장 비싼 그림들을 정리하고 각 작품의 예술사적 가치와 비싸게 거래된 이유들을 소개한다.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한 내용과 각 작..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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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프랜시스 베이컨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이규현, 알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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