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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싼 그

클로드 모네

다른 표기 언어 Claude M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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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40년
사망 1926년
클로드 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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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상파의 창시자. 인상파라는 명칭이 그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비롯되었다. 빛은 곧 색이라는 인상파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켰다. 같은 주제를 시간과 날을 달리하여 반복해서 그리며 무수한 시리즈를 만들었다. 이런 그의 집요한 노력은 말년으로 갈수록 추상화의 형태와 비슷해졌다. 빛과 컬러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 특유의 작업 방식 등은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가족들과 함께 노르망디 부근의 해변 도시 르아브르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식료품 잡화상으로 그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어 했지만 그림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모네는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르아브르 지역에서 미술을 배웠고 초상화를 그려 팔았다.

1856년 그 지역에서 이름이 제법 알려진 풍경화가와 알게 되면서 야외에서 직접 풍경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앙플레네르(En Plein Air)’ 기법을 처음 경험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인상파 화풍을 완성한 이후부터는 거의 모든 작품을 야외에서 그렸다.

1859년 파리로 이주하여 카미유 피사로 등 비주류 화가들이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던 ‘아카데미 쉬스’에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르누아르, 바지유, 쿠르베 등의 화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마네의 밝은 화풍에 끌려 빛의 묘사에 주력했다.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과 함께 새로운 화풍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1865년 모네가 스튜디오에서 그린 풍경화 2점이 국가가 공인하는 전시회인 살롱 전시 심사를 통과했다. 그는 그 다음 살롱 전시 때에는 야외에서 작업한 풍경화를 출품하려 했으나 아카데믹한 화풍이 아니라는 이유로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1870년 7월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모네는 전쟁을 피해 영국 런던으로 갔다. 그곳에서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의 거장 존 컨스터블과 터너의 그림을 연구했다. 모네는 자연을 직접 관찰하며 빛의 변화, 공기의 흐름 등에 주목해 색을 사용한 그들의 작품에 큰 영감을 얻었다.

1871년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에 자리를 잡고 7년을 살았다. 작은 배를 한 척 구입해 수상 화실로 만드는 등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려 약 백쉰 점의 작품을 남겼다.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에두아르 마네는 이 배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를 그리기도 했다.

1874년 파리에서 르누아르, 드가, 피사로 등 살롱 전시회에서 거절당한 동료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독립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기존의 풍경화와는 다른 형체가 불분명하고 개성이 강한 그의 작품에 대한 평은 최악이었다.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 대해 “참으로 인상적이다. 벽지 장식이 이 그림보다 완성도가 높다니···”라고 혹평했다. 이 이후 전시회에 참여한 화가들에게 인상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1870년대에는 이름이 알려지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성공을 이뤘으나 씀씀이가 헤퍼 늘 빠듯하게 살았다. 1879년 아내의 죽음 이후 그의 그림에서 자기성찰적인 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880년대 중반 이후 모네는 인상파의 화풍을 고수했으나 인상파 운동은 점차 활기를 잃어갔다. 급진적인 신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등장하면서 그의 명성도 차츰 힘을 잃었다. 이후 10여 년 동안 런던과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풍경을 그렸다.

1883년 파리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지베르니라는 시골 마을에 농장을 구입해 연못이 있는 정원을 꾸며 놓고 여생을 보냈다. 말년에는 백내장으로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죽는 날까지 시시각각 달라지는 연못과 연꽃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모네는 1926년 폐암으로 사망했으며 이때 그의 나이 여든여섯 살이었다. 사망 후 지베르니에 있는 성당에 묻혔다. 그의 아들은 집을 프랑스 예술 아카데미에 기증했고, 현재는 모네 기념관이 되어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는 “물체가 지닌 고유한 색은 없다. 색은 빛에 따라서 변화할 뿐이다”라는 인상파의 기본 원칙을 세우고 죽을 때까지 충실히 따랐다. 같은 주제를 시점과 시간을 달리하며 반복해서 그림으로써 빛과 색의 변화를 철저히 탐구했다.

말년에는 새로운 아방가르드 미술이 등장함에 따라 예전의 명성을 잃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 30여년이 지난 1950년대에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등이 그가 말년에 그린 초대형 작품에 영향을 받으며 재평가 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세계 순회 회고전을 계기로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위 순위권 내 작품(2014년 기준)

• 21위. 〈수련 연못〉
• 81위. 〈수련〉
• 92위. 〈아르장퇴유의 철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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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 집필자 소개

미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미술 시장에 대한 현장 경험을 동시에 갖춘 미술 전문가. 《조선일보》 미술 담당 기자를 거쳐 아트 마케팅 회사인 이앤아트를 설립하여 미술 전시 기획과 홍보, 아트 마케..펼쳐보기

출처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 저자이규현 | cp명알프레드 도서 소개

미술품 거래 역사상 가장 비싼 그림들을 정리하고 각 작품의 예술사적 가치와 비싸게 거래된 이유들을 소개한다.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한 내용과 각 작..펼쳐보기

전체목차
1.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위부터 100위까지! (2014년 기준) 1위.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2위. 파블로 피카소, 〈꿈〉 3위. 프랜시스 베이컨, 〈루치안 프로이트 초상 습작 삼부작〉 4위. 잭슨 폴록, 〈넘버 5〉 5위. 윌렘 드 쿠닝, 〈여인 3〉 6위.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 7위. 에드바르 뭉크, 〈절규〉 8위. 재스퍼 존스, 〈깃발〉 9위. 파블로 피카소, 〈누드와 푸른 잎사귀와 흉상〉 10위. 앤디 워홀, 〈실버 카 크래시(이중 참사)〉 11위. 파블로 피카소, 〈파이프를 든 소년〉 12위. 알베르토 자코메티, 〈걷는 남자 I〉 13위. 앤디 워홀, 〈여덟 개의 엘비스〉 14위. 파블로 피카소, 〈고양이와 있는 도라 마르〉 15위.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I〉 16위. 마크 로스코, 〈오렌지, 레드, 옐로〉 17위. 프랜시스 베이컨, 〈삼부작〉 18위. 바넷 뉴먼, 〈블랙 파이어 I〉 19위. 빈센트 반 고흐, 〈가셰 의사의 초상〉 20위. 프랜시스 베이컨, 〈존 에드워즈 초상 습작 삼부작〉 21위. 클로드 모네, 〈수련 연못〉 22위. 재스퍼 존스, 〈부정 출발〉 23위. 앤디 워홀, 〈청록색 매릴린〉 24위. 파블로 피카소, 〈비둘기를 안고 있는 아이〉 25위. 티치아노 베첼리오, 〈디아나와 악타이온〉 26위.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 27위. 페테르 파울 루벤스, 〈유아 대학살〉 28위. 마크 로스코, 〈넘버 1(로열 레드와 블루)〉 29위. 마크 로스코, 〈화이트 센터〉 30위. 앤디 워홀, 〈그린 카 크래시(녹색의 불타는 자동차 I)〉 31위. 한스 홀바인, 〈다름슈타트의 성모(마이어 가족과 함께 있는 성모)〉 32위. 빈센트 반 고흐, 〈턱수염이 없는 자화상〉 33위. 티치아노 베첼리오, 〈디아나와 칼리스토〉 34위. 티치아노 베첼리오, 〈알폰소 다발로스 후작의 초상〉 35위. 치바이스, 〈송백고립도 전서사언련〉 36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침대 의자에 앉아 있는 누드(아름다운 로마의 여인)〉 37위. 토머스 에이킨스, 〈그로스 박사의 임상 수업〉 38위. 마크 로스코, 〈무제〉 39위. 왕몽, 〈치천이거도〉 40위. 프랜시스 베이컨,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 41위. 윌렘 드 쿠닝, 〈가제트 형사〉 42위. 앤디 워홀, 〈그녀의 남자들〉 43위. 앤디 워홀, 〈인종 폭동〉 44위. 클리퍼드 스틸, 〈1949-A-넘버 1(PH-89)〉 45위. 폴 세잔, 〈커튼, 주전자, 그리고 과일 그릇〉 46위. 카지미르 말레비치, 〈절대주의 구성 회화〉 47위. 제프 쿤스, 〈풍선 개(오렌지색)〉 48위. 잭슨 폴록, 〈넘버 19〉 49위. 빈센트 반 고흐, 〈조제프 룰랭의 초상〉 50위. 앤디 워홀, 〈코카콜라(3)〉 51위.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52위. 로이 리히텐슈타인, 〈꽃 모자를 쓴 여인〉 53위. 파블로 피카소, 〈팔짱을 끼고 있는 여인〉 54위. 빈센트 반 고흐, 〈붓꽃〉 55위. 알베르토 자코메티, 〈크고 좁은 두상〉 56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두상〉 57위. 프랜시스 베이컨, 〈이노센트 10세 습작〉 58위. 프랜시스 베이컨, 〈삼부작〉 59위. 파블로 피카소, 〈피에레트의 결혼〉 60위. 파블로 피카소, 〈앙헬 페르난데스 데 소토의 초상〉 61위. 마크 로스코, 〈넘버 15〉 62위. 파블로 피카소, 〈정원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 63위. 장-미셸 바스키아, 〈더스트헤즈〉 64위. 앙리 마티스, 〈후면 누드 4〉 65위. 라파엘로 산치오, 〈젊은 사도의 두상〉 66위. 파블로 피카소, 〈요, 피카소〉 67위. 빈센트 반 고흐, 〈밀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촌부〉 68위.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 레인, 〈양손을 허리에 대고 있는 남자〉 69위. 라파엘로 산치오, 〈뮤즈〉 70위. 마크 로스코, 〈넘버 11〉 71위. 리커란, 〈만산홍편〉 72위. 앙리 마티스, 〈뻐꾸기, 푸른색과 분홍색의 카펫〉 73위. 프랜시스 베이컨, 〈투우 습작 1번 두 번째 버전〉 74위.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근대 로마:캄포 바치노〉 75위. 파블로 피카소, 〈검은 팔걸이의자에 누워 있는 누드〉 76위. 로이 리히텐슈타인, 〈잠자는 여인〉 77위. 프랜시스 베이컨, 〈거울에 비친 글 쓰는 형상〉 78위. 파블로 피카소, 〈창가에 앉아 있는 여인〉 79위. 바넷 뉴먼, 〈원먼트 6〉 80위. 앤디 워홀, 〈1달러 지폐 200장〉 81위. 클로드 모네, 〈수련〉 82위. 앤디 워홀, 〈자유의 여신상〉 83위. 로이 리히텐슈타인, 〈방이 다 보이는데!···아무도 없어!〉 84위. 프란체스코 과르디, 〈베네치아:카르본 거리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리알토 다리〉 85위. 프랜시스 베이컨, 〈자화상〉 86위. 로이 리히텐슈타인, 〈아···알았어···〉 87위. 구스타프 클림트, 〈카소네의 교회(사이프러스가 있는 풍경)〉 88위. 쉬베이훙, 〈세상이 평화로워 농사가 즐겁다〉 89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90위. 폴 세잔, 〈사과〉 91위. 파블로 피카소, 〈튤립이 있는 정물화〉 92위.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철도교〉 93위. 앤디 워홀, 〈흰색 매릴린〉 94위. 파블로 피카소, 〈라팽 아질에서〉 95위. 파블로 피카소, 〈책 읽는 여인〉 96위. 빈센트 반 고흐,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 97위. 에드워드 호퍼, 〈위호켄의 동풍〉 98위. 구스타프 클림트, 〈아테제 호숫가의 리츨베르크〉 99위. 잭슨 폴록, 〈넘버 4〉 100위. 프란츠 클라인,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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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클로드 모네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이규현, 알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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