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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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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뉴욕 네오 다다 운동을 이끌며 추상 표현주의와 팝 아트의 연결 고리가 되어 준 화가. 추상 표현주의가 지나치게 주관적인 방향으로 흐를 때 알파벳, 숫자, 성조기, 지도 등 대중에게 익숙한 소재를 혁신적인 재료와 기법으로 표현하여 예술과 일상생활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다.
현대 미술의 두 축이었던 재현이나 추상을 넘어 익숙한 이미지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그의 작품들은 이후 팝 아트와 개념미술 등에 영향을 주었다.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여러 차례 경신하는 등 1950년대 이후부터 미국 최고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1930년 미국 남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갓난아기였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여 아홉 살 때까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어렸을 때 예술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 예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대학교 입학 이후다.
1947년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 입학했고 다음 해에 뉴욕으로 건너가 파슨스 디자인 스쿨로 학교를 옮겼다. 하지만 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아 한 학기만 다니고 그만두었다. 1951년 한국 전쟁 기간 중 입대하여 미국과 일본에서 2년간 복무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1954년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인 팝 아트 예술가 로버트 라우션버그를 만났다. 존스의 롤모델이었던 라우션버그는 당시 혁명적인 ‘콤바인 회화’로 뉴욕 미술계에서 ‘이단아’ 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콤바인 회화는 인형, 만화, 양말, 그림, 사진 등 다양한 사물을 캔버스에 붙이고 그 위에 물감과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두 사람은 1961년까지 함께 살며 서로의 작품을 평가하고 새로운 기법과 아이디어 대해 의견을 공유하는 등 예술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주고받았다. 라우션버그는 존스를 역사적인 딜러 레오 카스텔리를 비롯해 예술계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등 존스가 예술가로서 인정을 받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1958년 레오 카스텔리의 도움으로 첫 개인전을 열어 그가 즐겨 그렸던 주제인 ‘깃발’ 시리즈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일부 보수단체들이 국기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으나 익숙한 이미지에 풍부한 상징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미술계의 극찬을 받으며 추상 표현주의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당시 뉴욕 현대 미술관(MoMA) 관장 알프레드 바는 존스의 작품을 세 점이나 구입했다. 첫 전시회를 연 무명작가에게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1958년 존스와 라우션버그는 레디메이드 예술의 창시자이자 유럽 다다이즘의 리더 마르셀 뒤샹의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듬해 마르셀 뒤샹은 존스의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하여 의견을 나눴고 유럽 아방가르드 미술계와의 교류를 주선해 주었다. 이후 존스는 유럽 다다이즘을 수용하면서 예술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게 되었다.
1961년 라우션버그와 결별은 존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줄었고 소수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은둔자적인 생활을 했다. 그의 그림 스타일도 어둡게 변해서 흑백, 회색 톤의 작품을 주로 그렸다.
작품의 스타일 변화와 함께 영국의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과 서른세 살에 요절한 미국의 천재 시인 하트 크레인의 시에 매료되기도 했다. 석판화를 제작하고, 캔버스 위에서 몸으로 구르며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1967년에 미국 현대 무용의 거장 머스 커닝엄 무용단에서 아트 디렉터를 맡아 13년 동안 일했다.
1970년대에는 선을 서로 다른 각도로 겹쳐지게 해 음영 효과를 주는 망상선(cross-hatching) 기법을 사용하여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런 스타일이 1980년대 초까지 이어지다가 점차 자신의 인생과 내면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늘 새로운 주제와 스타일, 소재와 기법을 실험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온 그는 1984년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1990년에는 미국 예술 훈장을 받았으며, 2011년에는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상했다. 미국에서 화가가 이 훈장을 받은 것은 1977년 움직이는 조각 ‘모빌’의 창시자로 유명한 알렉산더 콜더가 수상한 이후 처음이었다.
생존 작가 미술작품 최고가 기록도 여러 번 경신했다. 1980년 〈세 개의 깃발〉이 100만 달러(약 11억 원)로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웠고, 2006년 〈부정 출발〉이 8000만 달러(약 840억 원), 2010년 〈깃발〉이 1억 1000만 달러(약 1150 억 원)에 각각 개인 거래로 판매되며 역시 생존 작가 작품 최고가를 경신했다.
1958년 첫 개인전 이후 미국 미술계 최전선에서 활동해 왔던 그는 라우션버그와 함께 네오 다다 운동을 이끌었다. 추상 표현주의가 대세였던 시절에 새로운 소재, 기법으로 미국 미술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의 끊임없는 실험과 변신은 이후 등장한 팝 아트, 개념 미술, 퍼포먼스 아트 등 미술 전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위 순위권 내 작품(2014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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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거래 역사상 가장 비싼 그림들을 정리하고 각 작품의 예술사적 가치와 비싸게 거래된 이유들을 소개한다.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한 내용과 각 작..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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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재스퍼 존스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이규현, 알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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