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제작시기 | 1889년 |
---|---|
가격 | $58,000,000(608억 5000만 원각주1) ) |
작가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
“나는 내 안에 끌어내야 할 힘,
도저히 끌 수 없어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할 큰 불길이 있음을 느껴.
그것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결말이 암울하다 해도 별로 놀라지는 않을 거야.”
-빈센트 반 고흐
엄밀히 말하면 이 그림은 표시된 가격인 5800만 달러(608억 5000만 원)보다 훨씬 비싸게 팔렸다. 뉴욕 현대 미술관이 1989년에 스위스의 토마스 암만 갤러리를 통해 이 그림을 살 때 현금 5800만 달러(608억 5000만 원)에 추가로 다른 그림 일곱 점을 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림 일곱 점의 가격을 정확히 책정할 수 없어 지급한 5800만 달러(608억 5000만 원)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겼다.
빈센트 반 고흐는 서른다섯 살이던 1888년에 파리를 떠나 남부 소도시인 아를 지역으로 가서 약 1년 3개월 동안 살았다. 그는 파리에서 인상파 화가들과 친분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과 너무 달라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던 차에 파리를 떠나 남부 시골로 가 버렸는데, 그의 예술적 천재성은 아를 지역에서 비로소 꽃피었다고 볼 수 있다.
조제프 룰랭은 반 고흐가 아를 지역에 살 때 가까이 지내던 동네 우체부다. 반 고흐는 이웃이자 친구이던 조제프 룰랭뿐 아니라 그의 아내와 세 아이까지 모두 즐겨 그렸다. 반 고흐는 아를에서 때로는 고독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데, 조제프 룰랭과 그의 가족은 그런 그에게 위안이 되어 준 친구들이었다. 반 고흐가 고갱과 다투고 왼쪽 귀를 잘라 버린 유명한 사건이 있었을 때 조제프 룰랭은 반 고흐가 정신적인 안정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그림의 모델은 제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그의 직업이 우체부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뒷배경에 있는 화려한 꽃문양을 보면 인상파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아 화려하고 장식적인 꽃문양 같은 배경을 그림 속에 넣곤 했다. 반 고흐 역시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았다.
아를 시절에 그린 반 고흐의 그림에서는 고갱에게서 받은 영향도 볼 수 있다. 고갱은 당시 반 고흐를 따라 아를로 와서 9주 정도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 고갱은 특히 초상화를 그릴 때 겉모습보다는 그 사람에게서 받은 영감을 그리는 것을 중시했는데, 이는 반 고흐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조제프 룰랭의 초상〉에서 조제프 룰랭의 굳건한 눈빛과 표정, 나선형으로 소용돌이치는 수염과 뒷배경을 보면 반 고흐 역시 고갱처럼 사람의 내면 표현을 중시하는 현대적인 초상화를 그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
・ · 원화 환산 환율은 외환은행에서 제공하는 2014년 1월 1일~6월 30일의 평균환율(고시 회차 최종, 매매 기준 환율)을 따랐습니다.
참고문헌
・ R. M. F. ‘van Gogh in Arles’, Bulletin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Vol. 20, No. 7, 1926년 10월, pp.92-94
글
출처
미술품 거래 역사상 가장 비싼 그림들을 정리하고 각 작품의 예술사적 가치와 비싸게 거래된 이유들을 소개한다.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한 내용과 각 작..펼쳐보기
전체목차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조제프 룰랭의 초상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이규현, 알프레드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