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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19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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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 $87,936,000(922억 6000만 원)각주1) |
작가 |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
“나에 관해 알고 싶다면 내 그림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안에서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알아내면 될 것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과 함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조카딸인 마리아 알트만이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 소송에서 승소해 받아 낸 그림 다섯 점 중 하나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은 개인 거래로 팔렸지만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I〉를 비롯한 나머지 그림들은 모두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팔렸다. 마리아 알트만이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힘겹게 송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크리스티 측이 적극적으로 마리아 알트만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나중에 이 그림들의 경매를 크리스티가 진행할 수 있었다. 크리스티로서는 횡재였다.
이 그림은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보다 5년 뒤에 그려졌다. 시기의 차이가 있는 만큼 그림 스타일도 다르다. 금빛이 없어진 대신 전체적으로 더 차가운 톤이 되었고,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표정은 더 미묘하고 슬퍼 보인다. 하지만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과 달리 서 있는 모습을 그려서인지 더 강인해 보인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화가였지만 구태의연하게 과거 방식으로 그리지 않고 모델의 내면과 화가 자신의 느낌이 강하게 들어가게끔 아주 개성 있게 그렸다. 그가 그린 여인은 강해 보이기 때문에 외모에서 일단 전통적인 여인 초상화와 매우 다르다. 특히 이 초상화에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는 옷을 길게 늘어뜨리고 서 있는데, 이는 당시 일본 그림을 수집하던 클림트가 일본 그림, 특히 게이샤 초상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006년 당시 마리아 알트만을 비롯한 블로흐-바우어 자손들이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돌려받은 클림트의 걸작 다섯 점을 팔아 큰돈을 벌자 이들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게다가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는 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클림트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빈의 미술관으로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연 이 그림들을 빈의 상징적인 벨베데르 궁전 국립 미술관에서 뜯어내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조카들에게 돌려주는 게 옳았느냐는 논란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아델레 블로흐-바우어가 자신의 초상화를 오스트리아 정부에 남기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는 훗날 자신의 가족을 비롯한 유대인들에게 닥칠 끔찍한 비극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기였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는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기 훨씬 전인 1925년에 마흔셋의 나이로 죽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기자이던 앤-마리 오코너는 이 재판을 다루며 핵심 당사자들을 여러 번 인터뷰했다. 그때 마리아 알트만이 했던 말을 들어 보면 이 자손들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숙모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가 그림을 오스트리아에 남기고 싶다고 말한 것은 그녀가 클림트의 예술을 좋아했듯이 고국인 오스트리아와 빈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만일 살아서 계속 오스트리아에 있었다면 당연히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갔을 것이다. 이 그림을 (삼촌인)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에게서 빼앗은 이들은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을 학살하고 재산을 빼앗은 사람들이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가 만일 자신이 죽은 뒤 오스트리아 정부가 자신의 가족과 친구에게 저지르는 만행을 보았다면 과연 그 정부에게 자신의 그림을 기증하겠다고 했을까?”
마리아 알트만은 오스트리아 정부에게서 되찾은 그 그림들이 자유의 나라인 미국이나 캐나다의 미술관으로 가는 것을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이런 속사정을 알고 나면 이 그림들을 오스트리아 국립 미술관에서 뜯어낸 마리아 알트만의 손을 들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마리아 알트만 자신도 유대인 학살을 피해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온 사람이다. 그녀의 변호사 또한 유대인 후손이었고, 그 변호사의 아내도 유대인이었다. 변호사의 아내는 할머니에게서 가족들이 끔찍하게 학살당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자랐다. 마리아 알트만과 변호인 측은 이 재판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후손 대 오스트리아 정부’가 아니라 ‘유대인 대 오스트리아 정부’의 대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더욱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이런 점 때문에 이 소송에 관련된 그림의 가치가 더욱 올라갈 수 있었다.
경매 회사의 그림 판매 담당인 스페셜리스트들이 비싼 그림을 위탁 받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림의 소장 기록, 전시 경력 등 과거 기록을 찾는 것이다. 그러다가 화제가 될 만한 이야깃거리가 나오면 그걸 앞세워 홍보한다. 그림과 얽힌 극적인 사연이나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 그림의 가치가 크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 실린 클림트의 그림들은 ‘유대인 대 오스트리아 정부’ 대결이라는 극적인 사건과 얽혀 있어서 가치가 더욱 올라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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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원화 환산 환율은 외환은행에서 제공하는 2014년 1월 1일~6월 30일의 평균환율(고시 회차 최종, 매매 기준 환율)을 따랐습니다.
참고문헌
- ・ Bailey. Colin B., ‘Prolegomena:A Klimt for the Twenty First Century’, Modernism in the Making, Harry N. Abrams, New York, 2001, pp.12-17
- ・ Christie’s New York, 인상파와 근대 미술 이브닝 세일 도록, 2006년 11월 8일
- ・ Anne-Marie O’Connor, The Lady in Gold:The Extraordinary Tale of Gustav Klimt’s Masterpiece,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Knopf, New York, 2012, pp.242-246
글
출처
미술품 거래 역사상 가장 비싼 그림들을 정리하고 각 작품의 예술사적 가치와 비싸게 거래된 이유들을 소개한다.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한 내용과 각 작..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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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I –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이규현, 알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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