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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말 궁금한
우리 예절

상복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

흔히 보는 상복

망자를 관에 넣는 입관이 끝나면 망자의 가족들은 정식으로 상복을 입습니다. 평상복을 입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한 사람의 죽음을 처리할 때는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정리해야 하는 산 자들의 공경스러운 마음가짐과 행동이 중요했습니다. 옷 역시 겉으로 드러난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취직을 위한 면접에도 적당한 옷을 갖추어 입는데, 방금까지 친했던 가족이 죽었다면 다시 무얼 말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입는 상복을 살펴보지요. 평소 입는 정장을 남녀가 모두 입습니다. 대신 색깔에는 정해진 것이 있는데, 바로 검은색이나 흰색 같은 무채색입니다. 남자의 경우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넥타이까지 검은 것으로 합니다. 망자의 가족인 경우는 머리나 어깨, 무릎 아래에 삼베로 만든 상복을 간략하게 첨부합니다. 머리에 쓰는 것은 두건이라 하고, 어깨에는 완장을 찹니다. 두건도 표시를 합니다. 줄을 한 줄, 두 줄 긋기도 하고, 상주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라면 두건의 윗부분을 잘라서 표시하기도 합니다. 왼쪽에 완장을 차면 망자가 남자이고, 오른쪽에 차면 망자가 여자입니다. 그 이유는 음양에 따른 것입니다. '남좌여우'라는 원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남자는 물론 여자도 검은색 양장을 하거나 검은색 한복을 입습니다. 대신 두건이나 완장을 차지 않고, 머리에 흰색 핀을 꼽거나 가슴에 흰 꽃을 답니다.

흰색 옷을 입는 경우는 전통식 상복에 가깝습니다. 대신 많이 간소화되어서 남자는 흰 바지저고리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건을 씁니다. 여자라면 흰색의 치마저고리에 흰 버선과 고무신을 신습니다. 나머지는 검은색 양복과 비슷합니다.

흰색과 검은색

보통 우리나라의 전통에서는 흰색 소복을 상복으로 했습니다. 삼베로 만든 상복은 누런색이었지요. 본래 백의민족이라서 일상복도 흰색이 많았지만, 상복은 늘 흰색을 입어왔습니다. 그러다 서구의 문화와 접촉하고 나서부터 검은색 상복을 입기 시작했고, 지금은 흰색보다 검은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남자의 경우 검은색 양복 정장이 친숙하고, 여자들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요? 여자는 검은색 상복을 입어도 완전히 양복 정장을 입기보다는 한복 형식의 옷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활동이 불편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서양 문화에서 흰색은 결혼의 색입니다. 만일 우리식대로 그들의 장례식에 흰옷을 입고 문상 간다면 서양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마치 문상 가서 내는 부조금 봉투에 '축'이라고 쓰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대신 검은색은 장례식의 엄숙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이 분위기는 망자를 떠나보내는 정상적인 인간의 슬픔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만, 서양의 장례식에는 오직 슬픔만이 있기 때문에 무척 엄숙합니다. 그러나 우리 문화에서 장례식은 공공연히 축제라는 성격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는 잠시 뒤에 알아보겠습니다.

상복의 검은색과 흰색은 문화적 차이를 나타내줍니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가 활발히 교류되고 있기 때문에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다만 문화는 힘이 센 곳에서 약한 곳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서양식을 선호하는 추세가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원한을 품고 죽은 처녀귀신은 여전히 소복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는 뭔가 일관되지 않습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의 찌개처럼, 우리 문화는 이런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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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옷

본래 전통식 상복은 굴건제복(屈巾祭服)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지나친 허례허식이라고 해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지금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법이 생각하는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풍속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여전히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굴건제복을 착용하는가 마는가는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에 맡겨야 합니다. 주변에서 굴건제복을 입은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위 아래로 흰색도 아닌 누런 삼베옷을 입고, 머리와 허리에 새끼줄을 감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침울한 얼굴로 느리고 오래 끄는 곡을 합니다. 애고애고~. 왜 이런 모습일까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아들이 상주가 됩니다. 물론 큰아들이겠지요. 상주는 죄인입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한 죄인입니다. 그런 죄인이 평소와 같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포도청에 끌려간 죄인처럼 머리를 풀고 오랏줄에 묶이며 맨발에 가장 천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지금의 삼베는 천연섬유라서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사실 형편없는 옷으로, 겨우 몸을 가릴 정도의 옷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촉감이 가장 거칠고 물을 들이거나 치장하지도 않은 옷 같지도 않은 옷을 입는 것입니다.

상주가 걸치는 두루마기의 소매를 보면 희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팔은 옷을 걸쳤는데 한 팔은 일부러 옷 밖으로 빼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급하게 집을 나갈 때 미처 옷을 다 입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이상한 모양새는 부모님의 상을 당해서 정신이 다 나가 경황이 없다는 표현입니다. 남좌여우의 원칙에 따라 왼쪽 소매를 꿰지 않으면 아버지 상을 당한 것이고, 오른쪽 소매를 꿰지 않으면 어머니 상을 당한 것입니다. 머리와 허리에 차는 새끼줄도 그것은 사실 죄인을 묶을 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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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그렇지만 어찌 죄인이 변변한 음식을 목에 넘길 수 있나요? 그래서 실제로 곡기를 금합니다. 하지만 건강을 상할까 웃어른이 권유하면 거친 음식을 잠깐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어진 임금이었던 세종은 이런 예법이 자칫 그릇될까 해서, '3일을 굶지만 죽을 먹고, 3일 뒤에는 밥을 먹고, 한 달이 지나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왕명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간혹 볼 수 있지만 상을 당한 이웃집에 팥죽을 쑤어 갖다주는 풍습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지팡이는 왜 짚나?

예서에서는 상주가 지팡이를 짚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효성스러운 자가 부모를 잃으니 몸과 마음이 상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수없이 많고, 근심과 괴로움으로 3년상을 나니 몸은 병들고 메마르기 때문에 지팡이로 병든 몸을 부축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감히 지팡이를 짚지 못하니, 높은 어른이 있기 때문이다.

지팡이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때 사용합니다. 상을 당한 상주는 슬픔에 몸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을 지팡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왜 상주는 죄인일까요? 그것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나고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하지만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슬퍼지고, 살아 못다 모신 부모에 대한 사무친 정이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자신이 괴롭고, 점점 잘한 것보다는 못해드린 것에 가슴이 아픕니다. 이 마음을 잘 나타낸, 17세기쯤에 지어진 박인로의 시조 한 수를 들어보지요. 제가 풀어보았습니다.

소반에 놓인 홍시가 곱게도 보이는데
유자가 아니라도 품어 갈 마음이 있지마는
품어 가도 반기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서럽구나.

다른 나라에도 우리와 같은 홍시의 느낌이 있을까요? 늦가을 무렵이면 감나무 끝에는 서리 맞은 홍시가 서너 개 달려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까치밥이라고도 하지요. 홍시는 풍성한 가을의 후한 느낌을 주면서, 붉은 겉모습과 달콤하게 익은 부드러운 속살이 먹음직스럽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하는 과일입니다. 이승에서 먹어볼 수 있는 맛있는 음식 중의 하나입니다.

꼬집어 말하길 좋아하는 요즘 세태에서는 지팡이를 연출이나 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홍시를 두고 가슴이 찡해지는 우리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대나무와 오동나무

반함에 버드나무 숟가락을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지팡이가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애끊는 자식의 마음을 나타낸다면, 그 지팡이는 상징적인 도구입니다. 그래서 상주의 지팡이로는 대나무 지팡이와 오동나무 지팡이를 사용했습니다. 대나무는 아버지의 상을 당했을 때 사용하고, 오동나무는 어머니의 상에 사용합니다.

대나무와 오동나무에는 이런저런 예식들에서 살펴보았듯이 음양론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음과 양은 단순한 부호나 상징을 넘어서 있습니다. 곧 양은 물리적인 의미를 지나서 인간의 정감이 어린 가치가 깊게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양의 가장 큰 것인 하늘은 아버지이고, 음의 가장 큰 것인 땅은 어머니입니다. 하늘과 땅은 천지라고 쓰지만 다른 말로 건곤(乾坤)이라고도 합니다. 태극기의 '건곤감리' 할 때 건곤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물을 낳아준 것이 하늘과 땅이듯, 자식인 내게 부모님은 하늘과 땅입니다. 그래서 대나무는 하늘을 나타내고 오동나무는 땅을 나타냅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납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하늘과 땅의 상징적인 형태를 본떠서, 대나무의 둥근 모양으로 아버지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오동나무는 따로 네모나게 깎아 다듬습니다. 다듬을 수 있으므로, 오동나무가 없으면 버드나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상징이 좀 더 친근해지자, 대나무는 집의 바깥쪽에 심는 담이고 버드나무는 집 안쪽의 담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기리면서 둘을 지팡이로 사용하였다고도 했습니다.

효의 의미

상복과 지팡이에 담긴 뜻은 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충효가 유교의 본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충은 나라에 대한 헌신과 봉사라는 뜻보다는 먼저 자신의 진정성에 대한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다하는 것이 충의 본래 뜻입니다. 일제시대에 천황을 절대화시키는 그릇된 국가주의가 충을 맹목적인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개인의 자유가 사라진 전체에 대한 복속 등으로 삐뚤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어릴 때나 젊었을 때 그런 가치를 암암리에 받아들인 해방 후 우리나라의 엘리트들이 그것을 반성 없이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충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습니다.

효 역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효는 억제할 수 없는 자식의 자연스러운 인간적 충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권위는 자식들의 삶에 짐이 됩니다.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야망을 가진 자식들에게 부모의 가치와 인생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가야 할 길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나 효는 그런 것으로만 해석될 수 없습니다.

효는 유교의 전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유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이 낯설게 들리실 줄 압니다만, 실제로 공자 이래 유교의 가르침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과 확신에 따라 이 세상을 살라'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자각을 인(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수신(修身)이라고 합니다. 수신을 통해 인을 넓혀나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불의에 대해서 불의한 자를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사는 우리 자신들은 이러한 고상한 생각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낯선 곳이고 마음 둘 곳 없는 타향처럼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상처가 있습니다. '버림받은 존재'니까요. 그러나 유교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이유 없이'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고 가르쳐줍니다. 그 이유를 대단한 이론이나 심오한 철학을 들어 설명해주지 않고, 너무도 단순하게 말해줍니다. 이 세상에 있는 이유는 부모로 해서 그런 것입니다.

내던져진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상, 아무것도 그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허무주의가 생겨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있는 이상, 그로부터 하나씩 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워나갑니다. 부모와 내가 있는 이곳은 가정입니다. 가정은 세상에 내던져진 것처럼 생각되는 내 자신이 좌절과 실망을 맛보는 곳이고, 동시에 희망과 행복을 느끼는 곳입니다. 인간의 내밀한 경험을 살펴보는 정신분석은 인간의 행복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효는 나를 낳아준 부모에 대한 은혜를 갚는 것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허무한 인간의 삶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들과 유대하면서 고독을 견디고, 아픈 상처를 치유해가면서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그런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면서 삶이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는 낙천의 경지에 이르도록 해주는 것이 유학과 효에 담긴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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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일 집필자 소개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소강절의 선천역학과 상관적 사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동양학)의 귀한 자원을 보편적 학문으로 만들고 인..펼쳐보기

출처

정말 궁금한 우리 예절
정말 궁금한 우리 예절 | 저자이창일 | cp명예담 도서 소개

그동안 뜻도 모르고 따라했던 관혼상제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예절의 행위나 절차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지, 전통 예절 중에서 가례에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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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상복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정말 궁금한 우리 예절, 이창일,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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