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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이후 1년, 연극은 달라졌는가? #4

제작극장 실무자 좌담회

참석_강다혜, 김철순, 정재은 / 정리_강보름

제159호

2019.05.15

웹진 연극in은 ‘미투 이후 1년, 연극은 달라졌는가?’를 주제로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네 번째로 연극계 미투 이후 제작극장에서 체감하는 연극계와 창작자의 변화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았습니다. - 웹진 연극in 편집부

일시: 2019. 5. 7. 화. 오후 4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2층 아카데미룸

진행: 정진세(본지 총괄에디터)

참석: 강다혜(예술의전당), 김철순(국립극단), 정재은(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강보름(본지 편집위원)

#제작극장의변화 #계약서추가조항
김철순
진세
이번 자리는 미투 이후 1년, 극장의 변화에 대해 실무를 담당하는 제작피디, 극장 담당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그동안 국립극단의 사정은 외부에서 공유가 많이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예술의 전당이나 아르코예술극장의 경우도 독자분들이 궁금해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철순
국립극단은 계약서가 수정이 됐어요. 성폭력 예방과 관련된 내용이 업그레이드되고  새롭게 생겼습니다. 창작자를 포함 프로덕션에 참여하는 분들은 계약 건마다 필수로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을 들어야 하고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9조 기본권 보장 및 상호존중”입니다 이전에 있던 조항인데 성폭력 예방과 관련된 항목 디테일이 추가됐어요. ‘국립극단과 (OOO)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가진다.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갖는다. 1) 국립극단과 (OOO)은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지위 때문에 차별받지 아니함을 인지한다. 2) 공연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공연과 상관없는 각 개인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생활 등에 타인의 간섭, 또는 외압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3) 국립극단과 (OOO)은 공연 진행과 관련한 모든 협의 과정에 있어 서로 존중하며, 명예훼손, 모독, 인격모독, 성폭력 등 상대자의 인격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근절한다. 4) 국립극단과 (OOO)은 건강한 작업 환경 조성을 위해 첨부된 ‘성폭력 예방 및 대처를 위한 행동지침’을 숙지하고 준수할 것을 동의한다. 상기 행동지침은 계약서의 일부로 간주되어 계약서와 같은 효력을 지닌다.’ 이러한 내용입니다. ‘성폭력 예방 및 대처를 위한 행동지침’ 은 계약서 맨 뒷장에 있는데요. 관련된 내용을 연극인 대상 공청회를 거치고, 전문가와 변호사 자문을 받아서 최종 완성되었습니다. 보통 프로덕션 시작하고 모두 한자리에 모일 때, 교육 외에도 안내문을 만들어서 대처방법 등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바로 연락하실 수 있는 핫라인 소개 카드를 만들어서 나눠드립니다. 성폭력 예방교육 같은 경우는 시즌단원 배우들은 따로 시간을 내서 심화과정을 교육하고 있어요. 올해는 아역 배우들이 출연하는 프로덕션이 꽤 있어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예방교육 전문가 선생님을 모셔서 별도의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재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은 문체부에 게시된 표준계약서를 준용하고 있는데 저희가 임의로 계약서 한 줄을 추가하는 게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체부에서 공공기관은 이렇게 하라는 가이드를 배포하면 좋을 텐데 개별적으로 움직여야 되는 부분이 아쉬웠어요. 그리고 창작자 분들이 공연 준비로 바쁜 상황에서 안전 교육에 성희롱 예방교육까지 들어야 하니까, 그 시간을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아요. 극장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부분은 계약서에 조항을 명시하고, 성폭력 예방교육을 듣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게 최선의 노력이라는 생각이에요. 극장에서 작품의 소재나 내용에 대해 사전검열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면서 예방은 할 수 있도록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다혜
예술의전당도 표준계약서를 쓰고 있는데, 미투 이후, 2018년부터 새롭게 한 줄을 추가하려고 했지만 못 넣었어요. (문체부 산하라서) 지침이 있기 전에 개별행동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희가 시도했던 부분은 저희 내부 직원에 한하여 문제를 처리하는 감사실이 있어요. 이러한 고충의 부분까지 같이 통솔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하려고 했는데, 감사실 분들도 내부직원이기에, 과연 창작자 분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시즌 작업의 개념이 아니라 프로덕션이 시작할 때마다 만나게 되는 새로운 분들이어서, 극장의 직원들이 그분들에게는 ‘갑’ 의 존재가 될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러한 방식은 잠시 보류해놓고, 감사실과 외부(제3의 기관)가 같이 움직일 수 있는 방향으로 검토 중입니다.
재은
국립극단에서는 시행하고 있는 핫라인 소개 카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철순
국립극단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고충상담자가 남/녀 1명씩 지정되어 있지만 외부에서 참여하는 창작진, 스태프는 선뜻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 국립극단의 프로듀서 두 명을 선정, 별도의 성폭력 고충상담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두 명의 여성과 남성 프로듀서 담당자의 연락처를 표기했고, 핫라인 전용 이메일 계정도 만들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나 서울 해바라기센터 등 외부 채널까지 모두 명시해두었어요.
#미투직후의 분위기 #제작극장의 어려움 #성폭력예방교육 #사각지대
정재은
재은
미투 직후에 가해자로 지목된 연출가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담당 부서에서 내·부 행정처리를 거치는 중에 많은 관객들께서 ‘저희는 성범죄 연출가의 공연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게시판에 글을 올려주셨고, 공연은 취소되었습니다. 미투 이후에는 우후죽순처럼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잖아요. 그때는 모두가 우울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이후 제작진 사이에서도 본인들의 행위가 성희롱이 될 수 있구나, 라는 인식이 생겨났던 것 같고요. 작년에는 대학로에서 여러 차례 집회가 열렸고 아르코예술극장에서는 그들의 뜨거운 분노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어요. 공식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여러 심의 과정에서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철순
직후에는 국립극단도 매우 혼란스러웠고 특히 직원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미투 이후 1년 동안 프로덕션 배우, 스탭들의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국립극단 내의 감수성이 정말 많이 달라진 게 체감이 되고요. 저희는 연극을 많이 제작하는 편인데 고전 작품을 살펴보면 지금의 성인지 감수성과는 많이 어긋나는 작품들이 있잖아요. 항상 고민입니다. 극단에서는 어느 정도 사전에 이를 인지하고 작품을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관객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고요. 계속 나아지고는 있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것만큼 우리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재은
덧붙이면 공연의 내용 중에 여성의 노출이나 강압적인 부분이 줄어든 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제작 과정에서 연출이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것 등 위계문화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 연극계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혜
미투 이후에 각성이 된 상태여서 암묵적으로는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개인마다 기준치가 달라서인지 여전히 제작현장에서는 2차가해가 벌어집니다. 본인이 성차별적인 발언을 해놓고 이를 희화화한다거나, 상황을 조롱하며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이가 있는 기성세대 남성에 국한된 게 아니라, 위계가 높은 위치의 여성도 그런 경우가 있었고요.
진세
제작극장에서는 창작자와 극장관계자, 관객과 시민 등 여러 주체들을 상대하다 보니 어려운 상황도 있었을 것 같아요.
철순
사실 업무가 더 생긴 거죠. 기존에 하지 않던 성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해야 하니까 요. 강사 선생님을 섭외해야 하고, 더 좋은 선생님을 모시고 싶은데 어떤 분이 괜찮은지 알기 위해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들으러 다니기도 하고요.
진세
성폭력 예방교육은 잘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실상, 배우들과 스탭들 모두가 한데 모이는 일정을 조율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철순
보통 연습일정 중에 진행되어서 해당 프로덕션의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협조적입니다. 반면에 스탭들은 작업을 많이 하니까, 국립극단이 아닌 다른 데서도 듣고 오는데, 여기서 또 들어야 하고... 다른 쪽에서 이미 들었음을 어필하면서 가볍게 여기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경우도 있고요. (계약 의무 사항이기 때문에 결국 모두 들으시긴 했어요.) 그래서 고민이 되는 부분은, 이번 작품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한번 들었는데, 다음번 작품에서도 스탭으로 참여하게 되었을 때, 또 성폭력 예방교육을 듣는 게 맞을까, 하는 점입니다. 올해부터 1년 중, 최초 1회는 국립극단에서 교육받고, 그 다음부터는 외부에서 교육받았다는 증빙 가능한 서류를 갖고 오면 대체 가능하다고 안내를 드립니다. 추가적으로는 좋은 선생님을 어떻게 섭외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국립극단은 작년에 4월 이후로 매달 1번 이상 교육을 해요. 근데 모시는 선생님에 따라 교육의 분위기가 너무 다르더라고요. 수강생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지고요.
재은
지원사업의 경우에는 사업부서에서 전문 강사를 섭외해서 선정 단체를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방지 내용을 담은 협약도 별도로 체결하고 있고요. 제작공연 같은 경우에는 계약조항에는 넣었는데 별도로 극장에서 교육을 진행하지는 못했습니다.
다혜
프로덕션이 (예술의전당에) 들어오고 계약 체결할 때 모든 분들을 1:1로 만나거든요. 그럴 때 언질을 드리고 있고요, 따로 교육을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계약을 함에 있어서 말씀을 드리면 다들 공감하고 있다고 답해주세요. 직원들은 내부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지만, 그 외에 참여하는 예술가분들을 위해 따로 예방교육을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진세
국립극단의 성폭력 예방교육을 들어보니 내용 자체의 퀄리티는 높았습니다. 다만 연극계가 특수한 일터이다 보니, 이를 듣는 수강자들에게 맞춤형 교육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이 생기더라고요. 강의에 대한 연극인들의 묘한 눈높이와 기대치가 있기도 하고요.
보름
요즘은 공연예술인들이 직접 성희롱성폭력 강사교육을 받고 강사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재단이나 제작극장에서 당사자이면서 교육자의 입장에 있는 분들이 진행하는 예방교육을 들으면 훨씬 더 피부에 와 닿고 좋을 것 같아요.
강다혜
다혜
연출가나 배우들은 이런 이슈에 많이 노출이 돼서 어느 정도는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채널이 생겼다고 보여요. 그런데 크루분들이나 오퍼분들은 여전히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프리랜서 형태로 선택을 받는 입장이다 보니까, 말할 데가 없겠더라고요. ‘내가 (피해의 사실을) 말했다가 다음에 우리 팀, 혹은 내가 이 극장에 못 들어오면 어쩌지? 다른 데에도 소문이 나서 나를 불러주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느낌을 감지해요. 피해자이지만, 추가적으로 당할 수 있는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 등 담당자로서 케어해줄 수 없는 부분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런 분들에게 제3의 어떤 기관을 연결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철순
국립극단은 크루분들도 계약을 따로 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교육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디자이너와 함께하는 어시스턴트 분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분들도 크루분들 못지않게 극장에 많이 오시거든요. 극단과 계약한 당사자가 아닌 분들께 성폭력예방교육에 대한 제안은 드리고 있지만 의무는 아닌 상황입니다.
#극장의 딜레마 #관객을 의식하기 #술자리문화의 변화 #KTS
진세
아르코극장이나 예술의전당의 경우에는 연극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의 단체들도 대관을 하고, 기성 예술가들이 많이 속해있는 협회의 대관공연들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더더욱 개입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작극장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나름의 난감한 사정이 있음이 느껴지고요. 만약에 그런 식으로 공연이 취소되면 계약관계나 그에 따른 배·보상 문제도 복잡할 것 같습니다.
재은
논란이 되었지만 법적으로 유무죄가 아직 판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예술가를 섭외할 때, 이 사람이 관련된 내용은 없는지 검증하는 작업이 추가되는 것 같고요. 관객들께서 먼저 그러한 가해 내용이나 관련된 사항에 대해 훨씬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작업의 진행과정이나 내용에 대해 저희가 적극적으로 개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작업이 진행 중인 예술가에 대한 직접적 조치는 어려워요.
다혜
기획공연은 아직 그런 경우가 없었고 대관공연에서 있었어요. 공연이 중반 이상 진행된 상태에서 어떤 배우가 문제를 일으켰는데, 관객들은 극장에서 올라가는 공연이 기획인지 대관인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극장에서 하는 공연에 그런 사람을 출연시킬 수 있냐고 말씀하시는데, 저희가 대관한 기획사에게 당장 공연을 취소해라, 그 배우를 출연시키지 마라, 하는 건 월권입니다. 대관 계약상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처리한다는 식의 이런 조항이 추가된 것이 있기는 하지만, 대관공연의 경우에는 그 조치가 쉽지 않습니다.
철순
공연 내용과 관련해서는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성별 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어서, 저 같은 경우는 리허설을 보고 동료(여성)직원들에게 물어봐요. 혹은 홍보마케팅 담당자에게, 나는 이 장면을 이렇게 느꼈는데 (관객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의견을 모아서 정말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연출가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최종결정은 연출가에게 맡기는 거죠. 그리고 공연이 매회 끝날 때마다, SNS를 모니터링하면서 관객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게 있을 때는 연출가에게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다혜
연극은 시파티, 쫑파티를 제작과정의 일부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근데 고충이 생기는 게 이 지점이거든요. 연습, 회의 등은 배우, 스탭만 있는 게 아니라 외부 스탭들에게도 항상 오픈되어 있어요. 그런 뒷이야기들이 나오는 통로는 저희가 주관하지 않는 시파티, 쫑파티, 개인적인 모임들이에요. 예전에는 1, 2, 3차까지 쫑파티를 가졌는데 요즘은 1차 두 시간동안에 밥 먹고 깔끔하게 끝나요. 서운해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이게 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런 지점이 가장 크게 변화되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에요.
재은
팀별 성향에 따라 연습 내내 술을 먹는 팀도 있긴 하지만 회식 문화는 눈에 띄게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철순
국립극단은 사실 시파티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으려고 해요. 공연 첫날, 캔맥주 정도와 간단한 안주거리 등, 장소도 근처 회의실이나 극장 로비 등에서 간소하게 ‘시연 간담회’ 라는 이름으로 진행합니다. 그게 정착이 됐어요. 물론 그 이면에는 업무추진비 항목의 예산이 줄어들었다는 사정도 있고요. (웃음)
진세
연극계 안에서 단체들이 만들어져 제작문화들을 바꾸자는 논의도 있었고, KTS(코리안씨어터스탠다드) 같은 것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극장에서도 이러한 자치규약 혹은 지침 등이 운영에 자연스럽게 반영되는 것들이 가능할까요?
재은
공연장 운영 규정 내에 이런 내용들이 포함될 수 있으면 가장 이상적일 것 같아요. 공공기관이고 특히나 문서가 중요하니까 이런 걸 만들어서 명문화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철순
공동으로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서 준용할 수 있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아까 나왔던 제3의 무엇이 KTS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혜
극장 내에서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제한적이니까 공통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일들을 제 3의 중재기관에서 하면 가장 좋지 않을까요.
#가해자의 공연상연 #소통창구마련 #합평회
진세
피해자분들은 극장에서 가해자의 공연이 올라가면, 트라우마 상태가 돼서 극장 담당자한테 강력하게 항의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어려움만 더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긴급하든 그렇지 않든, 현장의 변화를 위해서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어디로 뻗어가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극장이 제대로 변화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연극의 현장이 최종적으로 극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맞지만, 일이 터질 때마다 그 담당자한테 항의전화 한다고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 되는 것도 아닐 것 같아요.
다혜
실제로 피해 당사자 분들은 담당자에게도 말씀을 안해요. 담당자가 섭외를 한 사람이니까 더 얘기를 안 하는 점도 있습니다. 저도 제가 직접 들은 케이스는 없고 그들 간에 나눈 이야기를 나중에 돌아서 들을 뿐이에요. 제가 같은 성별이더라도 말을 못하더라고요. 그리고 조치를 하려면 공유되고 처리가 되어야하니까 알려지는 게 싫을 수도 있죠. 저 사람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는지, 감수성이 있는지 또한 의심스러우니까 고충 처리 담당자가 있더라도 말을 안 하게 되는 거죠.
진세
제가 속한 극단에서도 CTS(시카고씨어터스탠다드)에서 참고한 NED(비공식 소통채널: 프로덕션 내부 신뢰자에게 피해자가 알릴 수 있는 제도)를 실행해봤는데, 프로덕션이 작다 보니까 실효성이 크지는 않더라고요. 극단 내부에 소통채널이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그 포지션이 과연 연출가와 충분한 거리를 취할 수 있을지, 극단 내부에서 취약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가 정말 그 채널 담당자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 것인지 등등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신뢰’의 문제와도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보름
그래도 누군가와 문제를 공유한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제 경험으로는 해결이 된 적은 없지만 훨씬 마음이 편해졌어요. 프로덕션 내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사람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재은
그런 의미에서 국립극단에서 소통을 위한 핫라인이 마련되어 있는 것은 진짜 혁신적인 일인 것 같아요.
철순
미투 이후 국립극단의 변화 중에 하나는 매 공연마다 합평회를 더욱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연 하나 올리고 끝나면 합평회를 해서 개선점들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거든요. 프로덕션의 성격에 따라서 배우들과 스탭들이 다 참여할 수 있고, 작가 따로, 연출 따로 이렇게 진행하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데, 구체적인 내용이 나올 때도 있고 나오지 않을 때도 있어요. 프로덕션에는 너무나 다른 역할을 하는 분들이 모여 있다 보니, 합평회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이 확연히 다릅니다.
#창작에 대한 동력 #제작극장에게 바란다 #제작극장이 바란다
진세
미투로 인한 변화가 창작에 대한 동력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작년의 사건이 제작극장들을 각성시킨 부분이 있었나요?
재은
페미니즘 연극제도 생겼고,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연극이 꾸준히 나오고 있어서요. 분명한 각성이 있었고 작지만 꾸준한 변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순
영향은 확실히 미친다고 생각하는데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건 크지는 않습니다. 과정을 생각했을 땐 (변화가) 있는데, 결과를 중심으로 봤을 땐 아직은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혜
확실히 체감이 될 만큼은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진세
검증된 공연을 올리는 제작극장의 입장에서는, 미투로 인한 변화에서 비롯된 창작물들을 만나는 데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철순
국립극단에서도 실험을 하고, 젊은 창작자들이 참여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려고 해요. 다만, 국립극단은 제대로 만든 좋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고, 관객의 욕구들도 다양하다보니 기성 예술가분들과 신진 예술가분들의 균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재은
적은 인원으로 여러 편의 제작공연을 올리는 것 자체가 큰 미션이었기 때문에 작년에는 성폭력 예방교육까지 챙기지 못했는데, 올해부터는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폭력예방교육 강사 풀을 공유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다혜
개별적인 운동이 아니라 문체부에서 적극적으로 조치를 해주면 공공극장뿐만 아니라 민간극장들도 따라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잘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요. 문체부 산하의 공공기관에서 그러한 조치를 체계적으로 마련할 수도 있고요.
진세
지금까지 제작극장의 속내와 고민을 들을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현장의 창작자들도 동료의식을 가지고 제작하는 극장의 고충을 이해하고, 극장도 창작자들의 어려움을 풀어내는 방식들을 더욱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김지성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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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름

강보름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연출가
연출작으로 <레디메이드 인생>, <우리가 고아였을 때>,<모던걸타임즈>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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