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는 소식을 접했다. 유명 유튜버인 마크 맨슨이 올린 한국 여행기를 통해서다. 그는 영상에서 한국 사회가 극심한 경쟁 속에 승자만 우대하며 패자에게는 실패의 낙인을 찍는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공동체가 중시되는 유교 문화가 사회적 관계를 긍정적으로 이끌기보다 우울한 개인을 양산한다고 짚었다. 물질만능주의로 한국인은 늘 열패감(劣敗感)에 시달린다고도 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수긍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많은 사람은 우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반면 능력이 아닌 그 무언가가 개입돼 성취를 이룰 경우 그 사회는 정의롭지 않다고 간주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생존과 능력에 대한 욕망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부작용으로 분노와 낙인찍기가 횡행하고, 개인 간 신뢰가 약화됐다. 한국은행이 어제 “부모 잘 만날수록 대학을 더 잘 갔다”며 부의 대물림을 인정했다. 불공정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울분은 주로 이처럼 ‘사회는 공정해야 한다’는 기본 신념을 위협하거나 무너뜨리는 특정한 사건을 겪으며 촉발된다. 분노와 무기력감이 생기고 심할 경우 복수의 형태로 표출될 수도 있다. 의학용어로 외상후울분장애(PTED)라는 말로 불린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욱하는’ 화병과는 다른 개념이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급변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동독인들의 정신적 고통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소개됐다. 한국에서도 최근 관심사로 부상했다.
어제 국민의 절반가량이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놓여 있다(49.2%)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다. 비율은 젊은 층에서 더했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 국민을 울분에 차게 했을까. 끊어진 교육 사다리와 경제적 불균형, 양극화된 노동시장, 언론의 왜곡·편파 보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치권의 갈라치기와 팬덤 문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꼴찌였다. 자살률 1위의 오명도 안고 있다. 여기에 울분까지 한국인 일상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됐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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