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장학회

인촌장학생들 인촌장학생들

인촌장학회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의 초석을 놓기 위해 중앙학교(현 중앙고)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를 운영하며 민족교육운동을 전개한 인촌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인촌기념회에서 중고생과 대학생, 대학원생에 중점을 두고 전개하는 장학사업이다.

1967년 봄 대학생 20명과 중고생 5명 등 25명을 장학생으로 선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인촌장학회는 지금까지 모두 4천여명의 학생들에게 69억여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2023년 2월 기준)

인촌장학금을 받은 졸업생 선후배들은 1981년6월 인촌장학생 동문 모임인 '인촌동문회'를 조직하고, '청람(靑藍)'이라는 소식지를 발행하며, 매년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또 인촌장학금을 받는 재학생들은 1982년 '인촌학생회' 를 따로 조직해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장학금 취지문

인촌기념회는 각급 학교에 보내는 인촌장학금취지문을 통해 우수학생들이 인촌장학생으로 뽑힐 수 있도록 공고를 해왔다. 그 취지문은 다음과 같다.

인촌 김성수선생(1891~1955)은 다 아시다시피 조국이 외적에 점탈당한 뒤로 항상 민족의 부흥을 흉중에 획책하시면서 대학졸업 직후의 약관시절부터 중앙학교를 경영하여 민족주의 교육에 첫발을 내디디시고 이어 경성방직주식회사를 창설하여 민족산업 발전에 모범을 보이시고 3.1운동에는 동지들과 함께 그 기본조직형성에 진력하여 이 운동배후의 큰 원동력의 하나를 이루시었으며 그 운동의 정신을 전개 선양키 위해 동아일보를 창간함으로써 민족을 대변하는 진정한 언론을 육성하시었습니다. 이 선각적인 교육 산업 언론은 곧 선생의 항일투쟁의 세가지 구체적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 뒤에는 또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당시로서는 우리민족의 손으로 운영되는 거의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을 가꾸는데 전념하시다가 이 학교를 기초로 고려대학교를 창립하시었으며 해방후로는 정계에 투신하시어 좌우의 분열대립 가운데 의연히 민족주의 세력을 규합하고 이를 지도함으로써 반공 민주 입국의 큰 초석이 되시었으며 정부수립후로는 한동안 부통령직에 계시다가 당시 대통령의 독재적 경향에 항거하여 분연히 그 직을 사임하신지 3년만에 별세하시었습니다.

인촌 선생 가신뒤 선생의 높은 유덕을 흠모하는 유지인사들은 인촌기념회를 조직하고 선생이 평생 심혈을 기울이신 조국의 문화발전, 민주주의 교육의 향상, 산업진흥 등의 유지를 길이 계승하는 몇가지 사업을 구상 실시하는데 노력하여 오던바 금번 그 사업의 일환으로 선생의 유지를 이어 국가장래에 有爲할 후진인재를 배출시키는데 일조가 되기 위하여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등 각급학생 가운데서 소정기준에 적합한 학도들을 선발하여 이들에게 장학금을 급여하는 일을 실천에 옮기기로 하였습니다.

각 학교 당국자께서는 부디 이와같은 본 기념회의 취지를 이해 찬동하시어 이 사업이 그 본래의 목적을 따라 견실하고도 활발하게 진행되도록 적극 협조 있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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