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시니어 이야기
지난 16일, 서울에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Asia-Europe Meeting·아셈) 노인인권 현실과 대안 포럼’이 열렸다.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외국인 참가자 비율이 높았고, 열기는 뜨거웠다. 행사 장소인 명동길에는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지난 17일에는 서울시가 처음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이용가정’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영어가 유창하고 한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한 필리핀 출신이라고 한다. 언제나 베트남 다낭은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넘친다고 한다. 올해 필자도 강원도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과 연계된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5개국 장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에서 유학생들은 중요하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알게 모르게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밀접하다. 그러나 우리는 동남아시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2022년 외교부 기준에 따르면, 동남아시아는 동티모르,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 지역이다. 인구는 약 6억7197만명이며, 1인당 평균 국내총생산(GDP)은 약 4000달러 정도다. 우리나라 국민의 최대 방문 지역이며, 공적개발원조(ODA) 최대 협력지역이기도 하다. 젊은 나라일 것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실상은 고령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아세안에 따르면, 2030년까지 동남아시아 인구의 약 15%에 해당하는 약 7200만명이 고령 인구로 분류돼 본격적인 고령화 단계에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고령화로 인한 고민은 한국이나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적이다. 유엔(UN) 인구국은 향후 30년 동안 65세 이상 인구가 2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개별 국가들이 홀로 돌파해야 하는 이슈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아셈 포럼은 의미 있었다. 국가별 상황과 사례들을 알아보고, 연대를 위한 길을 모색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노인인권과 시민사회’란 부제가 달린 포럼은 여러 세션이 의미가 있었지만, 크게 두 발표자가 인상적이었다. 먼저, 인도네시아 전문가의 균형 잡힌 관점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했다. 노인정책을 제안할 때,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그룹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그룹도 있기 마련인데, 한 방향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어떤 근거 자료를 활용하고 있는지 꼭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태국 전문가는 자신이 78세인데도 일을 한다면서, 노인에게도 노동시장에서 나이로 차별하지 말고 ‘일할 권리, 정당한 보상’을 줘야 한다고 했다. 또한 노인들 역시 ‘업스킬링(Upskilling·똑같은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하거나 더 복잡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술을 익히는 것)’과 ‘리스킬링(Reskilling·지금까지와 다른 직무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을 통해 노력해야 한단다. 이 외에도 태국에는 노인 전담 기금과 대출이 있고 건강권, 주거권, 일할 권리를 위해 단체들이 애쓰고 있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말레이시아 사례가 궁금했다. 실망스럽게도 정부가 안전판을 마련하지 않아 노후는 전적으로 개인이 저축해놓은 것에 의존해야 한단다. 인구의 60% 이상이 이슬람교도지만, 20%가 안 되는 불교 단체를 통해 고령자가 많은 지역에 돌봄 커뮤니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같은 맥락으로 유럽연합(EU) 대사가 물었다. 간병인이나 가사 관리사 등으로 해외에 가서 근무하며 본국으로 수십 년간 외화를 벌어 송금한 사람들에게는 귀국 후 노인으로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냐고 했다. 답변은 서글펐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노후를 위해 마련하는 지원은 없다고 한다. 글로벌 에이지 워치 인덱스(Global Age Watch Index)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건강하고 활력 있게 나이 드는 것을 준비하고 있는 나라 순위에서 10위권 안에 든 곳은 아시아 국가 중 일본만이 유일했다. 한국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하위권에 자리했다. 돌봄 인력 부족뿐만 아니라 인식 개선, 제도 정비 등 할 일이 잔뜩인 것이다.
한국은 변화에 능하다. 우리도 고령화 속도가 무섭도록 빠르지만 이런 배움과 사례 나눔, 실질적인 교류의 시간을 통해 어떻게든 대응책을 찾았으면 한다. 아시아에서 ‘안전하고 존엄하며 생산적인 삶’에 대해 좋은 방향과 대안이 될 수 있는 곳이 한국이기를 바란다. 아직 정답은 없다. 다만 국가를 넘어 모두에게 이로운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들이 더 다양하고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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