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는 국가전략기동부대입니다. 육군 10개 사단이 맡는 DMZ와 맞먹는 길이의 김포·강화도의 전선, 그리고 한반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서북도서를 지킵니다. 육사는 호국의 간성을 배출하는 부대입니다. 대한민국 안보를 좌우하는 육군의 뿌리입니다.
이토록 중요한 부대가 정치적으로 흔들리고 있으면 국방부가 몸 던져 지켜야 합니다. 해병대와 육사를 온전히 보전할 수만 있다면 국방부가 대신 욕먹고 공격받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 국방부는 다릅니다. 국방부만 무탈하면 된다는 듯 해병대와 육사에 거리 두기를 하고 있습니다.
15시간 동안 사령관 부재…시작에 불과하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지난 4일 오전 10시부터 공수처에서 수사 외압 사건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는 15시간 동안 이어져 다음날 새벽 1시쯤 끝났습니다. 해병대 사령관은 서북도서방위사령관을 겸합니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등 서해 NLL 코 앞 서북도서를 지키는 해병대는 15시간 동안 지휘관을 잃었습니다.
김계환 사령관은 공수처 조사를 또 받습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과 군사법원에서 법정 다툼도 벌이는 중입니다. 야당은 순직 해병 특검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사령관은 올해 내내 법정과 수사기관을 전전할 판입니다. 15시간 사령관 부재는 시작일 뿐입니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지난 2월 김계환 사령관 교체 여부에 대해 "성실하게 지휘하고 있다",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지난달 상반기 장성 인사에서 사령관 교체는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김계환 사령관이 지휘서신에 쓴 것처럼 해병대는 정쟁의 회오리에 휘말렸습니다.
사령관 교체하면 김계환 중장은 예비역이 돼서 해병대는 정치의 짐과 사령관 부재의 멍에를 내려놓을 텐데 국방부는 요지부동입니다. "사령관 교체는 국방부가 박정훈 전 수사단장에게 패하는 꼴"이라는 말이 국방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국방부에 생기는 흠집, 정치에 빠진 해병대 중 어느 쪽을 구제해야 하는지 자명하지만 실상은 이렇습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재배치 결정은 육사의 몫?
지난달 30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는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은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다", "육사가 어떤 결정을 하든 정치적 비판을 받기 때문에 국방부가 결정해서 육사에 하달하는 방식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질의했습니다. 예하 부대랄 수 있는 육사의 정치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국방부가 역할을 해달라는 일종의 부탁이었습니다.
국방부 부대변인은 "그 전제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질문의 전제가 무엇인지 질문을 한 기자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국방부가 결정해서 하달하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같습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육사가 결정하면 존중하겠다"고 했습니다. 육사가 독자적으로 정치의 늪을 헤쳐 나가라는 지시로 풀이됩니다.
한 유력 보수 매체는 "상명하복의 군 속성상 이 문제를 육사 자체적으로 기획했다고 보기 어렵다", "육사를 향해 흉상 이전 속도가 왜 늦어지냐는 '상부'의 재촉이 있었다는 얘기도 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치에 휘둘리면 안 되는 장교 양성 전문기관을 정치의 늪에 빠뜨린 근원으로 국방부 등 상부를 지목한 것입니다.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결정은 최고의 군정권자인 국방부가 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에 따르는 책임도 국방부의 몫입니다. 누가 처음 공적 자리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입에 올렸는지 따져보면 결자해지의 이치로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