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에 대한 M&A를 추진 중인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에 반발하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등 기존의 밸류업 기조와 모순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소수주주 보호제도로 권장되는 집중투표제 도입 시 소주주주 목소리가 커지면서 투자금 회수 등이 어려울 수 있는 점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내달 열릴 임시 주총 안건을 확정했고 이 가운데 하나로 고려아연 주주인 유미개발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안'이 주목받았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꼽힌다. 기존의 단순 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면 과반 주식을 소유한 대주주 의사에 따라 모든 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집중투표 방식을 이용하면 소수주주 의결권을 집중해 이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 모든 이사가 대주주 의사대로 선임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정부는 집중투표제가 기업 지배구조를 나타내는 핵심 정보라고 판단,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들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상장사들이 지배구조 정보를 주주 등 관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데, 해당 보고서에 명시해야 하는 15개 핵심 지표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MBK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이를 두고 고려아연에 집중투표제가 적용될 경우 MBK의 적대적 인수와 투자금 회수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이 이유로 지목됐다. 지분이 적을 때는 집중투표제가 사모펀드에 유리한 제도이지만, 반대로 사모펀드가 1대 주주로 지분을 보유할 경우 되레 불편한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단체나 시민단체는 물론 금융당국과 정치권 등에서 소수주주를 위한 제도로 적극 권장돼 왔다. 이 때문에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등을 내세웠던 MBK가 이를 반대하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고려아연 내 소수주주 목소리가 높아지면 투자금 회수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MBK 측은 집중투표제 취지와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이번엔 안된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며 "유미개발의 주주제안에 따른 집중투표제 도입 청구 절차는 법적, 실무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일단 불만부터 제기하고 보자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공교롭게 MBK는 집행임원제와 이사회 장악을 위해 추천한 14명의 이사 선임의 건 외에 주주가치 제고나 소액주주를 위한 안건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고려아연의 현 이사회가 다양한 주주친화정책을 내놓은 것과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집중투표제 도입과 관련해 이미 다수의 선례가 존재하고 대표적인 소수주주 보호제도로 적극 권장돼 온 만큼 반대 목소리에 힘이 실리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MBK 외 주주들은 집중투표제 도입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MBK 역시 국내 대기업 전반에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워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 만큼 집중투표제 자체를 반대하진 않겠지만 고려아연 인수 건처럼 MBK가 직접 대주주가 돼서 향후 매각을 계획할 경우 오히려 소수주주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MBK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우면서 지배구조가 부실한 것으로 평가되는 영풍과 손을 잡았다는 점도 명분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집중투표제 반대까지 하면 결국 MBK가 바라는 것이 지배구조 개선이 아닌 투자금 회수라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