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구려제국
이제 이 나라는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이 나라는 없습니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렇지만, 한때 나라를 이끌어갔던 이들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
큰 고구마 제국은 현재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일부, 듕귁의 일부를 지배하고 있던 고대 왕국이다. 그런데 어떤 자의 입장에서는 니뽕이나 몽골, 로씨야의 땅까지 지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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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世界統一 | |||||
국가: 주몽의 후예들이여! 세력을 넓히리라! | |||||
공용어 | 고구마어 | ||||
수도 | 맨날 바뀌는지라 섣불리 판단하면 심각한 오류에 빠짐. | ||||
큰 도시 | 국내성 | ||||
정부 | 군주제 | ||||
초대 원수 | 추모성왕 | ||||
현재 원수 | 보장왕 | ||||
현재 부원수 | 대막리지, 연 '개소문' | ||||
중요 인물 | 주몽황제, 담덕이, (장)수왕이, 포장왕 | ||||
설립 | 옛날옛적 | ||||
종교 | 불교를 비롯, 샤머니즘 혹은 애니미즘, 소수의 정교회 | ||||
인구 | 진짜 많음 |
특징편집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고 찬란한 왕조라 여겨지는 고구마는 오랫동안 대한민국 사람들의 로망이었다. 그들 역사에서 고구려와 비슷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왕조는 백제와 발해 뿐이라 보면 되겠다. 가끔씩 고려도 자주적이었다는 이유로 포함되곤 하지만 후에 심각하게 병맛이 되므로 대부분의 경우엔 포함시키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또한 신라같은 듣보잡 국가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의 통일을 이루었어야 한다며 신라를 좀 심하게 까면서 씹는데, 이것은 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번 맞는 말이다!.
역사편집
초기편집
주몽?이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고구려는 건국되자마자 빠르게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대고구려제국의 6대왕인 태조왕은 한나라의 침공을 막고 옥저를 공격하여 영토를 크게 넒혔다.
중기편집
대고구려제국의 9대 왕인 고국천왕은 국사 교과서에서 고구려제국의 실질적 기반을 다진 왕 중 하나로 여겨진다. 고국천왕은 진대법을 실행했는데 이 제도는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10월에 다시 곡식을 갚는방법이다 카더라. 아무튼 알 게 뭐야. 넘어가도록 하자.
10대 산상왕에 이어 11대 동천왕이 즉위했을 때 듕귁은 혼란 그 자체였다. 조조, 유비, 손권이 우왕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마구 달려든 시기였기 때문이다. 듕귁은 이렇게 위, 촉, 오/로 뉘어져 있었는데 이 중 위나라의 관구검이라는 장군이 고구려를 짓밟고 패전을 안겨 주었다. 이것은 고구려 역사에서 다시 찾기 힘든 패전이었으며 굴욕이었다. 그런데 관구검이라는 장군은 코에이 삼국지 게임에선 어디에도 못 써먹을 정도로 능력치가 아주 듣보잡 그 자체이다. 이런 녀석한테 대고구려제국이 발렸다니 믿기 힘든 바이지만 패전은 패전이니 인정하도록 하자.
그 뒤 중천왕 때에는 다시 쳐들어 온 위나라를 격퇴하였으며, 서천왕 때에는 백제와 처음으로 전투를 벌였다.? 서천왕의 뒤를 이은 봉상왕은 조선의 연산군에 버금가는 폭군이 였는데, 국상이라는 벼슬에 있던 창조리라는 신하가 쿠데타를 일으켜 봉상왕을 쫓아내고 미천왕을 왕으로 옹립하였다. 미천왕은 왕이 되자마자 선비족의 선비?들을 공격하여서 영토를 크게 넓혔다. 하지만 미천왕 때문에 선비들이 많이 죽어 유교가 고려시대 때 더 늦게 들어오게 되었다.
미천왕의 뒤를 이은 고국원왕은 선비족의 화난 선비들의 침략을 받아 영토를 많이 빼앗기게 된다. 고국원왕은 결국 남쪽 영토?로 눈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백제에는 근초고왕이라는 짱 훌륭한 왕이 있어서 고구려의 남진은 저지되고 오히려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전성기편집
고국원왕의 뒤를 이은 소수림왕은 쇠약해진 고구마를 다시 내정에 힘쓰게 했다. 그는 태학?을 설립하고 불교를 받아들이는 등 나름대로 성군다운 정치를 펼쳤다. 그의 뒤를 이은 고국양왕은 선비족의 선비들을 쥐어패고 밟아버려 고국원왕의 원수를 갚았다.
그리고.....
19대 왕으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께서 즉위하시어 수많은 바퀴벌레들과 침입자, 백제를 격파하고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시니 그 위용을 천하에 떨치고 온 초목과 온 금수가 가히 떨 만 하리라. 또 그의 아들 장수왕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백제와 꼴보기 싫은 신라를 격파하고 남쪽으로 영토를 넓혔다.
21대 문자왕은 그다지 한 일은 없지만, 앞의 두 왕의 위대하고 빛나는 업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후기편집
고구려는 후기에 와서 귀족들과의 싸움으로 국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그러나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이라는 훌륭한 장군이 나타나 상황을 역전시켰다. 을지문덕은 댐을 터트려 듕귁의 300만 대군을 모두 물고기 사료로 만들었다. 30년 후 당나라의 이세민이 연개소문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며 쳐들어와서 연개소문의 지지파와 영류왕을 지지했던 친왕파의 분열로 수나라의 300만 대군을 물리쳤던 철용성 요동성을 시작으로 요동 지역 대부분의 성을 장악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그후 주필산에서 고구려 정예 15만중 선봉군 5만을 괴멸시키는데는 성공하였으나 남은 10만 대군에 벌벌 떨다가 겨우 빠져나온다. 그리고 안시성을 포위해서 공격했으나 안시성의 10만 군사의 철통방어를 뚫지못하고 쌓은 토산마저 병신같이 트리거 스킬로 뺏겨 겨울이 오자 철군하나 다른 길이 다 고구려군에게 막혀 요택으로 들어가서 허우적거리며 모험을 하여 겨우 나온다. 당나라 정예 10만은 거의 다치지않고 무사히 빠져나왔고 당태종 역시 그러했다. 연개소문 덕분에 피폐해진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죽자마자 형제끼리 싸우지 말라는 연개소문의 유언을 져버린 불효자들 때문에 최수종에게 멸망당했다.
동북공정편집
동북공정은 대조선제국이 멸망한 원인중 하나에 속하며, 현재 듕귁에서 대대적인 계획을 여는 것이다. 또한 스탈린이 아주 쬐끔 개입했다. 또한 공정정책은 원래 대대적으로 비밀로 한 사건이다.
듕귁의 동북공정 정책의 경력편집
이미 서남공정, 서북공정을 시행하였으며, 서북공정은 매우 성공적으로 듕귁서북지역에 있던 위구르인이 만든 위구르 칸국이 대번에 없어졌고 서남공정은 듕귁인에 질린 친듕파 북한인이 짜증나서 너와에 꼬지르는 바람에 거의 성공적인 일이 실패로 돌아갔다.
동북공정 과정편집
듕귁의 동북공정 과정은 다음과 같다.
- 듕귁안에 있는 모든 오랑캐 역사서는 태운다.
- 듕귁 동북3성지방에 똥방귀를 뀌게 한다.
- 짝퉁제품을 더 많이 팔아 전세계가 짝퉁제품에 찌들게 하여 더 이상 자기를 적대하지 못하게 한다.
- 최고의 방법이자 핵심이다. 꼬지르는 인간을 삐좇밟아 버리고 세계앞에 빡빡 우긴다.
참으로 듕귁인들 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