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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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듕귁어: 申重铉)은 대한민국의 락커이자 악마이다. 흔히 대한민국 락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악마 신해철의 아버지로 잘못 알려져 있다. 얼마 전부터 펜더 커스텀 스트라토캐스터라는 초 레어급 무기를 소유하고 있다.

신중현 반동활동의 역사[편집]

50~60년대[편집]

1955년부터 쌀팔군? 연예단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도중 환멸을 느끼고 세상을 파괴하기로 결심한다. 1963년 대한민국 최초의 롹밴드인 Add4를 만들었다. 이때 <빗속의 여인>이라는 곡을 작곡하여 많은 여인들을 빗속에서 감기에 걸리게 했다. 이때문에 Add4는 대중의 극렬한 비난을 받게 되고 해체된다.

1960년대, 박정희베트남에 대한민국 밀덕후들을 파병시킨다. 평소에 박정희를 싫어하던 신중현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는 곡을 작곡, 김추자에게 부르게 함으로써 베트남에 파병한 밀덕후들이 모두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김상사'는 가장 흔한 성씨인 김씨와, 그럴 듯한 지위인 상사를 합친 절묘한 표현이다. 이렇게 하여 월남 파병은 실패하게 되고 이때부터 박정희는 신중현을 미워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70년대[편집]

신중현의 반동활동은 전성기를 맞게 된다. 1974년, 베이시스트 이남이(?), 드러머 권용철과 함께 신중현과 엽전들이라는 그룹을 창시한다. 이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엄청난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가장 성공적으로 사회를 뒤흔들었던 곡은 <미인>이다. 미인 이외에도 독재정권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 알 게 뭐냐는 반문을 담은 <나는 몰라>도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신중현의 반동 활동으로 인해 박정희는 흔들리게 되었고, 신중현이 발표하는 곡들을 전부 금지곡으로 지정하여 신중현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신중현은 끈질기게 저항했고, 음악이 독재와 탄압을 이길 수 있다는 뜻을 담아 '신중현과 뮤직파워'를 결성하기도 했다.

미인[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백괴인용집:미인입니다.

원곡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아름다운 그 모습을 자꾸만 보고 싶네 그 누구의 애인인가 정말로 궁금하네”

신중현

사회의 해악이 된 예

“한 번 쏘고 두 번 쏘고 자꾸만 쏘고 싶네”

대한민국 밀덕후

이 때문에 총알이 부족해졌고 대한민국의 국방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고 한다.

“한 번 먹고 두 번 먹고 자꾸만 먹고 싶네”

먹는 인간

이 때문에 대한민국 인구의 99.29222%는 비만이 되었다고 한다.

“한 번 풀고 두 번 풀고 자꾸만 풀고 싶네”

수덕후

이재율을 소환하는 주문으로 알려져 있다.

등,,

도보시오[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