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한지 14년째 되던 해인 1868년, 공화당은 그로부터 15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히는 수정헌법 14조를 공표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헌법 개정조항의 중요한 해석을 일방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공언한다.
트럼프는 개정조항의 해석이 “터무니없다”고 주장한다. 일부 지식인들과 이 문제에 식견을 갖고 있는 인사들도 의문을 제기한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틀렸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출생시민권제도(birthright citizenship)다. 수정안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귀화한 모든 사람은 미국의 관할권에 속하며, 미합중국 및 그들이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 문제는 출생시민권이 헌법적 권리인지 아니면 한 세기 이상 지속된 관례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단순한 정책에 불과한 것인지 여부다. 정답은 헌법에 명시된 권리다.
논쟁은 “(미국의) 관할권에 속하며”라는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일부 저명한 학자들은 다섯 단어로 구성된 수정조항의 이 문구를 “불투명”하고 “모호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개정안의 입법사를 살펴보면 이 구절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수정안은 1898년에 이르러 연방대법원이 “미국의 영토 안에서 출생한 사람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근본적인 규칙”인 속지주의 원칙을 지지했다.
이는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수정헌법의 시민권 조항은 1857년 연방대법원이 내린 최악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해 드레드 스캇 대 스탠포드 건을 심리한 연방대법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미합중국의 시민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조항은 혈통과 부족주의라는 전근대 정치를 거부하는 미국의 전제라는 맥락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 전제는 아래와 같다:
권리를 지닌 개인은 사회의 분자 단위다. 개인의 자연권은 정부에 우선한다. 정부란 독립선언문의 선언대로 그같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설립됐다. 개인은 출생지에 관계없이 저마다 자연권을 인정받을 권리가 주어진다. 미국 땅에서 출생한다는 것은 미국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권 조항의 “관할권에 속한다”는 문구는 외국인 외교관 자녀와 (의회가 1924년 시민권을 부여한) 인디언 원주민 부족 등 소수의 범주에 속한 사람들만을 제외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1868년, 의회는 이 문구를 적용해 불법 이민자들의 자녀를 제외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1875년 이전까지 미국에는 이민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불법 이민자들은 입국에 관한 법률 이외에 다른 법까지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다. 이곳에 불법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미국의 관할권에 종속”된다. (여기서 “관할권”은 “권한”과 동의어다.) 연방 상원 법사위원회 위원장인 일리노이주의 라이언 트럼블 의원은 미국의 관할권에 종속되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충성을 받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에 대한 충성심은 (종종 힘들고 위험한) 여행을 통해 출신국가에 대한 충성을 포기한 이민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충성은 요점을 벗어났다: 요점은 관할권이다.
지난 2015년, 현재 제 5차 연방순회항소법원 판사인 제임스 C. 호는 시민권 조항에 관한 상원의 논의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은 수정 조항이 과연 지혜로운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 누구도 외국인 자녀에 관한 수정안의 의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2016 대선에서 트럼프 진영은 출생시민권에 반대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해당 조항을 재해석하는 행정명령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이민법을 다시 쓴 버락 오바마의 “내겐 펜도 있고 전화도 있다”는 단독행동 이론과 조 바이든이 의회의 승인 없이 일방적인 학자금 대출 탕감으로 4,00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하려한 일방적인 시도를 모방한 것이다.
오바마-바이든-트럼프 논리는 의회가 대통령이 원하는 시기와 방식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은 긴급하다고 간주하는 사안에 대해 독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이념적으로, 트럼프는 기회주의적으로, 미덕을 추구하는 대통령의 고압적인 자세가 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피터 H. 슈먹 예일대학 교수와 로저스 M. 스미스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2018년 내셔널 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이민문호를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며 생득시민권은 의회가 해결해야 할 “적법하고 정치적인 정책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 문제는 시민권 조항의 입법 역사와 정부의 3개 부서 모두가 한 세기 넘게 사용해온 관례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확립된 해석이다.
의회는 토착주의적 적대감에 대한 예방조치로 이를 성문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확정된 해석이 모호하다는 점을 잘못 암시하는 것이다. 의회는 귀화정책을 통제하지만 헌법은 시민권 조항에 의한 출생 시민권을 정치의 변덕보다 우선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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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F.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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