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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책방 정경[관계의 재발견/고수리]

    가을 책방 정경[관계의 재발견/고수리]

    가을비 내리더니 바람이 순해졌다. 한결 산뜻해진 거리를 걷는데 손바닥처럼 등을 쓸어주는 바람이 설레서 사부작사부작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았다. 오래된 주택가를 지나 시끌벅적한 시장을 가로질러서 한적한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눈에 익은 풍경이 보였다. 여길 오고 싶었던 거구나. 익숙한 발…

    • 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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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두고 온 것은[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우리가 두고 온 것은[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스무 살, 상경해서 처음으로 얻었던 방은 월세 18만 원짜리 남녀 공용 고시원 방이었다. 창문 없는 길쭉한 방. 방문을 걸어 잠그고 웅크려 누우면 어둡고 눅눅한 관 속에 눕는 기분이었다. 얇은 합판을 덧대어 가른 방은 방음이 되지 않았고, 어둠 속에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에 다들 나란…

    • 202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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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관계의 재발견/고수리]

    행복해지고 싶다. 아침 병원에서 간절하게 행복하길 바란 적 있다. 세상에서 행복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는 병원 아닐까. 여기에만 오면 온갖 걱정과 근심, 불행들이 뭉게뭉게 피어나 행복이란 아주 멀고 감상적인 사치처럼 느껴지니까. 나는 수술 중인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째 아이가 …

    • 20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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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함의 적정 온도[관계의 재발견/고수리]

    따뜻함의 적정 온도[관계의 재발견/고수리]

    한여름 카페에서 뜨거운 물 한 잔을 부탁했다. 호흡기가 민감해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편인데 때마침 감기까지 걸려 목이 꽉 부은 탓이었다. 한여름에 뜨거운 물을 청하는 손님에게 카페 주인은 차분하게 얘기했다. “조심하세요. 너무 뜨거우면 다쳐요.” 그러곤 뜨거운 물에 얼음 세…

    • 20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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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아래에서 읽은 편지[관계의 재발견/고수리]

    나무 아래에서 읽은 편지[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어느 책방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둘러앉아 편지를 썼다. 필명을 정해 정성껏 편지를 쓰고 나눠 가지는 우연한 편지 쓰기 모임. 누가 누구의 편지를 갖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때론 모르는 사람에게나 털어놓을 수 있는 속내가 있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만 전할…

    •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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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 같은 스승이 된다는 것[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친구 같은 스승이 된다는 것[관계의 재발견/고수리]

    한 사이버대에서 3년째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만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온라인에서 만난다. 처음 화상수업으로 학우들을 만났을 때 자세부터 바르게 고쳐 앉았다. 정작 교수가 가장 어렸다. 부모뻘인 초로의 학우들은 뜨겁게 공부했다. 배움의 열정 따라 가르침의 열정도 벅차…

    • 20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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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뜻밖의 집밥, 잘 먹었습니다”[관계의 재발견/고수리]

    “뜻밖의 집밥, 잘 먹었습니다”[관계의 재발견/고수리]

    한바탕 감기를 앓았다. 집밥이 그리운데 밥 지을 기운은 없고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배달 앱에서 ‘할머니보리밥’을 찾았다. 보리밥과 청국장을 파는 나의 랜선 단골집. 여기 음식은 어릴 적 할머니가 지어준 밥처럼 정성스러운 손맛이 느껴졌다. 먹고 나면 속도 편안해서 할머니가 손바닥…

    • 202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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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에게서 배웠습니다[관계의 재발견/고수리]

    당신에게서 배웠습니다[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어느 황제의 일기 첫 문장. ‘내 할아버지 베루스에게서는 선량하다는 것과 온유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2000년 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에서 10년간 일기를 썼다. 그의 일기 ‘명상록’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황제가 …

    • 202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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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꽃이 피었습니다[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사람 꽃이 피었습니다[관계의 재발견/고수리]

    누군가의 뒷모습으로부터 봄을 알아챈다. 앙상했던 가지 끝에 피어난 꽃을 알아보는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길가 빈터에 꿋꿋하게 피어난 꽃을 알아보는 사람은 바닥을 내려다본다. 함부로 만지지도 꺾지도 않고 가만히 바라보다가 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 작은 예쁨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발견할…

    •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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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 같은 사람 멀리하기[관계의 재발견/고수리]

    독 같은 사람 멀리하기[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일부러 멀어진 사람이 있다. 만나면 내내 제 얘기만 하던 사람이었다. 다소 민감한 타인들 화제도 곧잘 꺼냈는데 거의 부정적인 험담에 가까웠다. 그 앞에서 내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귀담아듣지도 않을 테지만 언제라도 내 얘길 소문낼 사람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 매사…

    •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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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볕뉘’와 ‘만끽’[관계의 재발견/고수리]

    ‘볕뉘’와 ‘만끽’[관계의 재발견/고수리]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지나자 거짓말처럼 날이 따뜻해졌다. 한낮, 동료와 국밥을 먹고 거리를 걸었다. 속도 따뜻했는데 볕도 참 따뜻했다. “해를 등지고 걷는 게 좋아요. 등이 따뜻해서 햇볕이 안아주는 것 같거든요.” 그의 말에 고갤 끄덕이며 햇볕에 몸을 내맡겼다. 크게 숨…

    • 202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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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관계의 재발견/고수리]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첫 회사는 강남 빌딩숲에 있었다. 회사원들로 붐비는 거리, 사원증을 목에 걸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소속감이 어찌나 뿌듯했는지 인천에서 강남까지 왕복 네 시간인 출퇴근길도 견딜 만했다. 하지만 늘 발이 아팠다. 지하상가에서 헐값에 사 신던 구두는 금세 굽이 닳거나 떨어지곤 했다. 지방에서…

    •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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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살던 고향은[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우리가 살던 고향은[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오래된 동네 미용실이 문을 닫았다. 사계절 돌아가던 사인볼(회전 간판)이 멈췄다. 굳게 내린 셔터가 겨울바람에 달카당 운다. 바닥에 빨래집게 하나 동그마니 남았다. 여기 미용실 할머니는 걸음이 불편했지만 안팎으로 바지런한 사람이었다. 덕분에 작은 뒷마당엔 계절마다 꽃이랑 열매들이 울긋…

    • 20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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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 복 짓기[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새해 복 짓기[관계의 재발견/고수리]

    새해 첫날, 새 양말을 신었다. 평소와 달리 알록달록한 패턴 양말을 골라두었다. 새 양말 하나 신었을 뿐인데 폴짝폴짝 걸음이 가벼워 자꾸만 걷고 싶었다. 365일이 오늘처럼 폴짝폴짝 즐거울 것 같아서 시작하는 마음이 알록달록 물들었다. 작은 의식 하나에 흡족해진 이런 마음이야말로 내가…

    • 202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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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번은 없다[관계의 재발견/고수리]

    두 번은 없다[관계의 재발견/고수리]

    ‘5년 일기장’을 쓴다. 일기장에는 1년 전, 2년 전 오늘이 한 페이지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이를테면 12월 13일의 일기. 2020년에는 첫눈을 보았다. 2022년에는 함박눈을 맞았다. 2021년에는 우연히 발견한 문장을 눈에 담아 와 옮겨 두었다. ‘노인 하나의 죽음은 도서관…

    •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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