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실화한 기후 인플레, 강 건너 불 아니다

by논설 위원
2024.06.17 05:00:00

농산물 값이 고공 행진하는 가운데 때 이르게 찾아온 불볕더위가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한다. 국내 농산물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에 전년 동기 대비 19%에 달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이 주원인이다. 과거 평균 기온이 21도 정도인 6월에 올해는 3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의 일면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런 상황은 최근 유럽에서 나온 기후 인플레이션 현실화 경고에 섬뜩함을 더한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PIK)와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공동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향후 10년간 기후변화로 인해 매년 식품 물가가 3%, 전체 물가는 0.3~1.2%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수 국가가 물가상승률 목표를 2%대로 설정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가볍게 볼 수준이 아니다. 기후 인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도래하는 양상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전근대적인 농산물 생산과 유통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 기후 인플레이션의 충격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기후 문제라면 여름철 폭염과 물난리, 겨울철 혹한 등 자연재해를 먼저 떠올렸다. 그러나 이제는 기후 문제가 일상의 경제적 삶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활물가 상승이 실질소득을 떨어뜨리고 가계지출을 위축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추세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 때문에 정부의 경제정책과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서 중요한 변수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배제하고 수립·운용하는 경제정책과 통화정책은 경제 현실과 어긋나면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 생태계와 인류문명 보호를 위한 전 세계적 탄소배출 감축 노력에 적극 동참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좀처럼 저지되지 않는 지구 온난화가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차단하거나 최소화하는 일이 보다 시급하다. 특히 더 불안해질 수 있는 농산물 수급을 구조적으로 안정화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갈수록 커지는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비한 재정·통화정책 전반의 재점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