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때 만든 전원개발촉진법, 제2의 밀양 송전탑 사태 부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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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6.12. 오전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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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6월 8일 경남 밀양 영남루 둔치공원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에서 만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밀양=이경숙 기자 


"이제 전원개발촉진법을 없애야 한다. 박정희 때 만든 법이다. 이 법 때문에 국가가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11일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제2, 제3의 밀양 송전탑 사태를 막으려면 정부가 나서서 발전소, 전원을 설치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은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이 1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2014년 6월 11일 정부는 경찰 20개 중대 2천여명을 투입해 주민들의 농성장 4개를 강제철거했다. 소위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이었다.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이후에도 전국 여러 지역에서 고압 송전선로 건설 사업에 대한 주민의 반발은 이어지고 있다.

전북 정읍시에서 충남 계룡시를 잇는 345킬로볼트(kV) 고압 송전선로 건설 사업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이달 준공 예정인 '345㎸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당초 목표보다 준공이 11년 5개월, 동해안의 원전과 화력발전소와 수도권을 잇는 '500kV 초고압직류송전(HVDC)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5년2개월 늦어졌다. 

이 위원은 국가의 사유재산권 침해를 문제의 근본으로 봤다. 따라서 전원개발촉진법부터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원개발촉진법 폐지를 주장한 건 이 위원이 처음이 아니다. 제22대 국회의 우원식 국회의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던 2015년 3월 '전원개발촉진법 폐지법률안'을 대표발의한 적 있다.

당시 우 의원은 "전원개발사업자의 일방적인 사업진행을 가능케 하는 전원개발촉진법은 사회 갈등비용을 증가 시킨다"며 "전원개발촉진법을 폐지하는 대신 전원개발사업을 전기사업법에 따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기사업법에 전원개발사업 계획 수립추진단계에서 지역주민들과 지자체의 의견을 반영하는 내용을 담으면 된다는 것이다.  

1978년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르면 송전탑 건설을 비롯한 전원개발사업 인·허가 절차는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의 승인'으로 갈음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원개발사업이 진행될 때마다 관련 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사회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주민들이 받는 재산권 침해는 심각하다. 매매는 물론 땅을 담보로 한 대출마저 제한 받고 있다. 이 위원은 "송전로가 땅(사유지) 위로 지나가면 은행이 담보 설정을 해주지 않는다. 땅을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며 "전선을 중심으로 이 절반 갈라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해외 어느 국가든 자본주의 국가에는 사유재산권이 있다"며 "정부가 지도 위에 '선(송전로)'를 긋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송배전망을 설치하는 자본주의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송전선로는 영업권 침해도 일으킨다. 송전탑에서 발생하는 '코로나 소음' 탓이다. '코로나 소음'이란 고전압이 가해진 도체 표면에 어떤 결함이 생겨 방전이 계속되는 '코로나 현상'으로 발생하는 소음을 뜻한다. 

이 위원은 경북 울진군의 한울원자력발전소 인근 모텔의 사례를 들려줬다. 주변이 조용해지는 밤이면 창문을 닫아도 '지잉', '웅', '빠지직'하는 코로나 소음이 들려 모텔 투숙객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모텔 근처에는 345kv 송전선로가 있다.

이 위원은 "한전(한국전력공사)과 정부는 보상으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재산권 등 주민이 침해 받는 권리를 얼마나 인정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주민과 갈등으로 고압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 5~11년씩 늦어지는 일이 반복되면 전력공급뿐 아니라 산업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친다. 당장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 10기가와트(Gw)가 필요하다면서 서해안 전력 고속도로를 해저에 놓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여기에도 육상송전계획이 필요하다"고 이 위원은 분석했다. 

정부가 발전소 건설 계획만 내놓고 송전선로 계획을 구체화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HVDC(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사업) 이후 초고압송전선로 사업이 아예 잡힌 게 없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용인 클러스터 내부에서 전력을 생산하지 않는 한 전력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등 수도권으로 보내는 전력망 자체가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14일 시행되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용인 클러스터 등 전력수요지에서 전력을 직접 공급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 이 위원은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부산, 울산, 경북 등 이미 전력공급원 즉 원전이 있는 지역에 데이터센터 등 큰 시설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독일, 유럽 등 다른 국가처럼 한국 역시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전력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함께 개발해야 한다"며 "한국의 제11자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처럼 전력수요 증가 전제로 전력생산만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송전탑과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싼 사회 갈등은 물론이고 전력수급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후 청년환경센터 대표, 반핵국민행동 사무국장, 국가에너지위원회 사용후핵연료 TF 위원,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를 거친 환경·에너지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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