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아이 시체 발견하고도 "가출"이라던 경찰…부모는 30년을 기다렸다[뉴스속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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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7. 오전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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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유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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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1989년 7월 7일, 경기도 화성에 살던 당시 8세 김현정양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됐다. 갑작스레 사라진 현정양은 30년이 지난 뒤에서야 실종이 아닌 사망으로 밝혀졌다.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현정양 실종 사건은 1980년대~1990년대 초반 발생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의 뒤늦은 자백으로 진실이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현정양 시체를 발견하고도 이 사실을 숨겼다. 심지어 살인 사건을 실종 사건으로 바꾸기 위해 보고서와 진술서까지 조작했고, 현장에서 발견된 유류품은 유가족 몰래 버린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수사 요청에도 단순 실종사건 종결


기사 내용과 무관한 참고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정양은 1989년 7월 7일 오후 12시 30분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됐다. 부모는 2번이나 수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가출로 봤다. 하지만 현정양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사건은 그렇게 종결됐다.

가족은 현정양이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30년 동안 집 전화번호도 바꾸지 않았으나 끝내 돌아온 것은 현정양이 당시 강간당한 후 살해됐다는 끔찍한 진실이었다.

현정양이 실종되고 약 1년 후 화성 9차 사건이 일어났다. 현정양이 실종됐던 해 12월 현정양 소지품이 발견됐는데 발견 위치는 화성 9차 사건 현장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지점이었다.


이춘재 "현정양 성폭행 후 살해…시체·소지품 함께 놔뒀다"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사건 진상은 2019년 10월 15일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진범 이춘재 자백으로 드러났다. 이춘재는 세간에 알려진 범행 외에 4건의 추가 범행에 대해서도 시인했다. 그 중 한 건이 바로 현정양 실종 사건이었다.

이춘재는 "현정양을 성폭행 후 살해해 시체를 소지품과 함께 놔두었다"며 "그냥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서 죽으려고 산에 갔다가 마주친 현정양이 나를 보고 도망치자 그동안 저질렀던 사건들이 탄로 나는 것이 두려워져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후 그는 "제가 자백함으로써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드러났다.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2019년 12월 수사본부가 발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현정양이 실종되고 약 5개월 후인 1989년 12월 21일 인근 지역 주민들로부터 "야산에서 줄넘기에 결박된 양손 뼈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이춘재 진술과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경찰, 시신·유류품 은닉→진술조서 조작까지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경찰은 현정양 관련 신고를 유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시신과 유류품을 은닉했다.

형사계장이 현정양 제사를 지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화성경찰서에서 근무하던 형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제사를 지내는 걸 직접 보진 못했지만, 들어서 알고 있다. 쉬쉬하면서 공공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이뿐만 아니라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은 유류품 발견 4일 후 현정양 아버지와 사촌언니를 조사했다. 그러나 이는 조작이었다. 현정양 아버지는 해당 일자에 경찰 조사를 받지 않았으며 진술조서에 찍힌 도장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경찰은 현정양 실종 사건을 1990년 8월 단순 가출 사건으로 종결했다.


사건 은폐, 대체 왜? 처벌도 안 받았다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경찰은 왜 현정양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 것일까. 구체적인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당시 발생했던 화성 연쇄 살인 사건 범인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살인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자 심적 부담을 느낀 것 아니겠냐는 추측이 나온다.

현정양 유족은 2020년 1월 당시 형사계장 등 2명을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범인도피, 특정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특수직무유기) 등 혐의로 고발했다. 같은 해 3월에는 국가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 이정도 변호사는 "직무유기죄는 계속범(繼續犯)으로 범죄행위가 종료된 이후부터 성립되는데, 이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들이 수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까지, 또 퇴임 전까지 공소시효의 효력이 있지 않을까 판단한다. 그들이 재직 중에도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공소시효에 대한 부분을 유연히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21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불기소 결정이 나 당시 형사계장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넘어갔다.


손배소 제기 후 사망한 현정양 부모…"2억2000만원 지급해야"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2022년 11월, 수원지법 민사15부(부장판사 이춘근)는 현정양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부모에게 각 1억원, 오빠 김현민씨에게 2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현정양 실종사건 수사에 관여했던 경찰들의 진술, 당시 추가 수사를 지휘하지 않은 점 등을 보면 이는 현정양 살해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이를 단순 가출 사건으로 종결해 사건을 은폐, 조작했다고 본다"며 "이는 현정양 사인에 대한 알권리 등 인격적 법익이 침해됐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현정양 유족은 그 사망을 확인하지 못한 채 장기간 고통받았고 사체를 수습하지도 못했는데 그러한 피해는 어떠한 방식으로 회복되기 어려운 점, 수사기관이 직무를 태만한 것을 넘어 조직적 증거를 은닉한 행위로 국가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훼손됐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현정양 부모는 소송을 제기한 후 사망해 이 결과를 보진 못했다. 모친은 소송을 제기한 직후 숨졌으며 부친 김용복씨는 2022년 9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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