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과 과장, 누굴 위한 원전투자 가이드인가 [추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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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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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KB운용 원전 투자가이드 허점
"투자 정보 제공 목적"이라지만
원전 장점만 과하게 포장하고
단점 뺀 채 왜곡된 정보도 가득
정부 정책 홍보하려 했나 의문
윤석열 정부가 원자력발전 산업 활성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곧 발표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신규 원전 건설을 담은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KB자산운용이 15일 '원자력발전 투자가이드'를 발간했다. "원전 산업이 뜨고 있으니 국내 유일의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이 투자가이드에 왜곡과 과장이 숱하다는 점이다. 

KB자산운용이 정확하지 않은 원전 정보를 담은 투자가이드를 발간했다.[사진=뉴시스]


지난 13일, KB자산운용이 '원자력발전 투자가이드'를 발간했다. 말 그대로 예비 원전투자자들을 위한 리포트다.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인공지능(AI) 산업이 성장하려면 전기가 많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원전이 주목받고 있다.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경제성과 친환경성을 모두 챙길 수 있어서다. 선진국들도 원전 확대로 방향을 틀었다. 장점 가득한 소형모듈원전(SMR)까지 등장했다. 원전 산업의 미래는 밝고, 투자처로서의 가치도 있다. KB자산운용은 국내 유일의 글로벌 원전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하고 있다. 2022년에 만들었고, 지금까지 수익률도 좋다. 이 ETF는 원전에 투자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투자가이드 형식을 빌렸지만 KB자산운용의 상품소개서와 다를 바 없다. 실제로 해당 상품(KBSTAR 글로벌원자력Select)의 수익률은 꽤 높다. 2022년 10월 출시 이후 ETF 가격은 2배로 뛰었다. KB자산운용 관계자는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할 목적으로 만든 자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KB자산운용의 투자가이드는 심각한 문제들을 갖고 있다. 자신들의 투자 상품을 권유하기 위해 원전 정보들을 정확히 제공하지 않고, 취사 선택하거나 심지어 틀린 정보까지 담았기 때문이다. '정보 전달'이라던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건데, 그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 봤다. 

■ 문제➊ 왜 원전의 장점만 담았나 = 먼저 KB자산운용은 원전 투자가이드에 원전의 긍정적인 내용만 담았다. 객관성을 담보한 가이드라면 부정적 이슈도 함께 담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증권사들이 주가 부양을 위해 매수 리포트만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방식의 투자 권유는 '투자자보호 소홀'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을 받은 지 오래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금융사들은 장밋빛 전망만 담은 보고서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선 '투자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는 문구 하나만으로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면서 "이런 행태를 바로잡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만 현실에선 요원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리포트에 긍정적 내용만을 담는 게 일종의 '불완전판매'로 볼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건 불완전판매나 마찬가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문제➋ 원전 값싼 에너지원 맞나 = 원전의 장점만을 부각하다 보니 KB자산운용의 원전 가이드라인엔 일부 사실을 과하게 포장하거나 의도적으로 축소한 내용이 숱하다. 일례로 원전 투자가이드는 원전을 '경제성과 친환경성을 충족할 에너지원'이라 설명했다.

선진국들이 친원전 정책을 추진 중이라는 내용도 있다. 소형모듈원전(SMR)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중대사고 리스크가 낮고, ▲초기 비용이 저렴하며, ▲안전성이 높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내용들은 원전을 옹호하는 일부의 주장일 뿐이다. 사례를 통해 보자. 투자가이드에는 미국 원자력위원회로부터 가장 먼저 SMR 설계 인증을 받은 원전 기업인 뉴스케일파워를 'SMR 기술 선도 기업'으로 소개했다.

실제로 이 기업이 2022년 미국 아이다호 인근에 미국 최초의 SMR을 이용한 발전시스템을 구축하는 '무탄소 전력 프로젝트(CFPP)'를 진행하긴 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이 프로젝트는 전면 중단됐다.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뉴스케일파워는 2021년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SMR 설비가 2029년 가동하면 ㎿h당 58달러에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추정했는데, 지난해에 다시 계산해보니 비용이 89달러로 늘어났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0년 에너지균등화비용(LCOE) 기준에 따른 미국의 에너지원별 전력생산 단가를 보면 육상풍력은 39달러, 태양광은 44달러다. 기존 원전조차 71.3달러로 89달러보다는 낮다. 원전이, 특히 SMR이 경제성이 좋다는 건 허상이라는 방증이다. 

■ 문제➌ 방폐장 비용 고려했나 = 발전단가의 경제성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방폐물 처리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현재 고준위 방폐장인 '사용 후 핵연료봉 영구 저장소'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핀란드가 2025년부터 세계 최초의 '사용 후 핵연료봉 영구 저장소'를 운영할 예정인 게 그나마 가장 근접한 플랜이다. 

핀란드는 지하 450m에 저장소를 만들었는데, 이 저장소는 동굴이라는 뜻을 가진 '온칼로(Onkalo)'로 불린다. 이 온칼로를 건설하는 데만 10억 유로가 투입됐다. 한화로 1조4000억원이다. 핀란드는 총 4394㎿ 규모, 우리나라는 총 2만5825㎿ 규모의 원전을 가동 중이다. 

선진국들이 친원전 정책을 펴고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단순히 계산해도 '사용 후 핵연료봉 영구 저장소'를 짓는 데만 8조1200억원이 필요하다. 그 외에 저준위 방폐장 건설비용 등은 일체 고려하지 않은 비용이다. 물론 이 온칼로가 완벽한 '사용 후 핵연료봉 영구 저장소'라는 증거도 없다. 그래서 핀란드 내에선 지금도 안전성을 둘러싼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문제➍ SMR 안전성 입증됐나 = SMR이 안전하다는 근거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최근 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SMR을 발전원으로 포함할 거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학계에서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박종운 동국대 에너지ㆍ전기공학과 교수는 "대형 원전이 지난 80여년간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지속한 것과 달리, SMR은 아직 상용화조차 되지 않아 안전성이 있다고 예단하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원전 건설 비용과 폐기 비용, 안전성 등이 여전히 논란거리임에도 원전 투자가이드는 원전을 '값싸고 안전한' 에너지원으로 소개한 셈이다. 

■ 문제➎ 선진국들 친원전 정책 펴고 있나 = 선진국들이 친원전 정책을 펴고 있다는 설명도 사실과 다르다. 원전 투자가이드는 '유럽연합(EU)이 2050년까지 원전을 3배 확대하기로 했다'고 적시했다. 내용만 보면 EU가 원전 확대를 위해 똘똘 뭉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EU 회원국들의 입장은 상당히 분열돼 있다.

원전 강국인 프랑스를 비롯해 불가리아ㆍ이탈리아ㆍ크로아티아ㆍ핀란드ㆍ헝가리ㆍ폴란드는 원전 확대에 찬성하지만, 스위스ㆍ스페인ㆍ벨기에ㆍ독일 등은 단계적 폐지를 진행 중이다. 2050년까지 원전을 3배 확대하기로 한 것도 EU가 아니라, 한ㆍ미ㆍ일과 EU 내 프랑스 등 일부 국가다. 



호주 역시 SMR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반대 목소리가 만만찮다. ▲재생에너지보다 비싼 발전단가, ▲원전의 안전한 운영을 위한 강력한 안전 규정과 집행기관 신설의 필요(세금 증가), ▲원전 폐기물 비용과 해체 비용,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발달로 인한 재생에너지 대체성 증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선진국들이 친원전 정책을 펴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오히려 원전 확대는 러시아와 중국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아직 고준위 방폐장을 만들 법적 근거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KB자산운용의 원전 투자가이드는 원전 산업의 미래지향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보를 왜곡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공교롭게도 원전 투자가이드의 내용들은 친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현 정부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전 투자가이드는 누굴 겨냥한 걸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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