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들어 ‘1경’이라는 숫자가 경제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상상조차 힘들 정도로 큰 이 숫자. 왜 갑자기 언급되는 걸까요?
7조 달러는 우리 돈으로 약 9400조원에 이르는 돈이에요. 실제로 ‘1경원’에 육박하는 금액이어서 일부 한국 언론은 올트먼의 행보를 ‘1경원 투자’로 불렀고요. 이 돈으로 AI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위탁 생산시설)를 만들고, 기존에 반도체를 만들던 업체에 생산을 맡기는 방식을 구상 중이라고 해요.
얼마 전 올트먼 CEO가 국내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방문해 ‘반도체 동맹’을 논의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요. 이렇게 세계적 기업들이나 재벌을 찾아다니며 논의한 사업 규모가 무려 7조 달러에 달했다는 뜻이겠죠.
사실 7조 달러는 챗GPT가 요즘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상상하기 힘든 금액이에요. 세계 시가총액(전체 주식 가치의 합) 기준 1·2위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를 동시에 사고도 남아요. 일본 주식시장을 아예 통째로 사버리거나, 한국 정도 규모의 주식시장을 4개쯤 살 수도 있죠. 삼성전자는 20개쯤 살 수 있고요.
올트먼이 너무 많은 금액을 모으려 한다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많아요.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전체 매출액을 합해봤자 5270억 달러쯤이었거든요.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면서 세계 시장 규모의 13배가 넘는 금액을 투자받으려 하고 있는 거예요.
손 회장은 올트먼 CEO가 추진 중인 반도체 사업에 협력하고 있지만, AI 반도체 시장에서 강자로 떠오르기 위해 자체적인 투자에도 나서겠다고 선언한 모양새예요. 프로젝트명은 일본에서 ‘창조와 생명의 신’을 뜻하는 ‘이자나기(Izanagi)’라고 지었대요.
투자 자금을 모으는 샘 올트먼 CEO와 손정의 회장의 전략은 비슷해요. 중동 산유국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거죠. 손 회장의 경우 300억 달러는 소프트뱅크가 내고, 나머지 700억 달러는 중동 국가를 중심으로 투자받겠다는 계획이에요. 올트먼 CEO도 AI 분야 투자에 적극적인 소프트뱅크 같은 기업들은 물론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 투자자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해요.
① AI용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엔비디아가 지배하고 있다
② AI 성능을 빠르게 발전시키기에는 반도체가 부족하다
③ 높은 수준의 AI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엄청난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AI 시장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 필요한 반도체 공급은 충분하지 않고, 엔비디아라는 특정 기업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거죠.
거기에 올트먼 CEO와 손 회장은 가장 먼저 AI 반도체에 베팅한 이유가 또 있어요. 올트먼 CEO의 오픈AI는 ‘챗GPT’라는 성공적 AI 서비스를 보유 중이고,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도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특히 ARM은 엔비디아가 인수를 노렸을 정도로 AI용 서버에 필요한 핵심 반도체 설계에 강점이 있대요.
AI가 산업에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영향은 정말 광범위한데요. 미래를 예상하기란 쉽지 않으니, 일단 가장 최근 공개된 오픈AI의 새로운 AI의 가능성을 한번 살펴볼게요. 지난주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는 글로 명령어를 입력하면 1분 길이의 고화질 영상을 만들어주는 생성형 AI ‘소라(Sora)’를 발표했어요. 아무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건 아니고, AI가 만들어 낸 결과물 중 일부를 홈페이지에 올렸어요.
미국의 한 정보기술(IT) 매체는 소라를 두고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는 괴물의 정교한 움직임과 질감을 표현하느라 여러 달 동안 작업해야 했지만, AI는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했다”고 평가했어요. 생성형 AI의 초기라고 할 수 있는 현재 시점에도 이미 ‘AI가 특정 산업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손정의 회장은 작년 10월 “AGI는 10년 안에 현실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AGI 지능은 인류의 모든 지능을 합한 것보다 10배 이상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이런 가능성 때문에 앞서 언급했던 손 회장의 AI 반도체 프로젝트 이자나기(Izanagi)에 ‘AGI’가 들어간 거라는 분석도 있죠.
결국 AGI 등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이 개발되면 미래 산업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을 가능성이 크고, 이런 미래로 가려면 AI용 반도체를 많이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반도체판 쩐의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거예요. 지금의 반도체 산업만을 보고 투자하는 게 아니다 보니, 상상하기 힘든 금액의 투자가 거론되기도 하는 거고요.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다가오는 ‘반도체 대격변’에 대응하려고 여러 전략을 짜고 있다고 해요.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시장 1위인 엔비디아에 공급하며 안정적인 협력 체계를 꾸렸어요. 일찌감치 HBM 개발에 투자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죠.
삼성전자의 경우 오픈AI 등과 협업을 논의하는 한편, 범용 인공지능(AGI) 전용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 마련에 착수했다고 해요. 기술 기업들이 집중된 미국 실리콘밸리에 최근 범용 인공지능(AGI)을 연구할 특별 조직인 ‘AGI컴퓨팅랩’을 만들고, 구글 등에서 전문가들을 데려왔대요.
AI 시대를 넘어 ‘AGI 시대’에 대비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니, 세상에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날 것만 같아요. 과연 AI 반도체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지 지켜볼 만하겠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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