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팔 사람만 있지 살 사람이 없다…석화·배터리 사업 재편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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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5.29. 오전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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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훈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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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가 사겠어요, 산업은행이나 사려나…"

최근 중국발(發) 공급과잉과 고금리 등에 따라 불황에 직면한 석유화학·배터리 업계 관계자들의 푸념이다. 석유화학·배터리 사업이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잡은 SK·LG·롯데 그룹 등은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일부 사업의 매각을 시도하고 있지만 팔 사람만 있지 살 사람이 없다. 매각 대상이 된 사업들의 몸값은 조(兆) 단위를 넘나들 것으로 보이는데 이정도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 사업 재편의 단기 해법인 매각은 기업들의 선택지에서 사라지고 있다.

배터리와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부정적 전망은 판매자와 구매자의 입장 차를 키웠다. 전기차 캐즘(성장산업의 일시적 정체)에 따라 배터리 소재 사업의 실적은 악화일로다. 국내 배터리 소재 사업은 경쟁력을 갖췄지만 수주 산업 특성상 전방 고객사의 전략·시장 지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힘들다. 우리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의 석유화학 자급율이 높아지며 설 곳을 잃고 있고 이제는 원료를 쥐고 있는 석유 생산국의 기업과도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럼에도 석유화학과 배터리는 여전히 우리 산업의 중심 축이다. 반도체·자동차에 이어 수출액이 가장 높은 제품들이다. 산업 공급망의 전(全) 과정을 잠식하려는 중국의 거센 위협에 흔들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국가 기간 산업이다. 이같은 중간재 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전방 산업 마저 흔들 수 있다. 우리 경제의 체질은 더욱 약해진다.

그렇기에 이들 사업을 급하다고 '헐값'에 팔 수는 없다. 자금 수혈과 재무구조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하는 매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침체의 기간과 깊이 등을 잘못 판단해 핵심 사업을 팔았는데 짧은 시간만에 다시 활황을 맞아 땅을 치고 후회하는 회사들을 우리는 수도 없이 목격했다. 최근 미중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 것도 두 산업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공급망이 분화되며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우리 제품 수요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사업의 경우 금리 인하 국면에서는 전방 수요가 개선되며 시장이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산업계가 사업 재편의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섣부른 사업 정리보다 장기적으로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산업IT부 정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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